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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볼록하게 만든 게정말 착시현상 때문일까

1 부석사 무량수전의 추녀와 앙곡. 2 무량수전의 포작. 3 배흘림기둥과 이를 받치는 주초.
시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내리 달린 덕분에 아침보다 먼저 부석사 무량수전에 도착했다. 여전히 어둡고 기온은 영하 17도. 그 옛날 의상 대사에겐 불심이 있었고, 지금 나에겐 무거운 다운 점퍼가 있다. 산속 추위에 볼은 터져나갈 것 같고 이유 없는 눈물마저 흐른다. 겨우 도착한 법당 안에도 온기는 없다. 삼배를 올리고 앉아 아미타불을 바라본다. 춥다. 너무 춥다. 그런 추위에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 서현의 『배흘림기둥의 고백』(효형출판사) 때문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이야기를 어디 한두 번 들었던가.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김봉렬의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등등. 그런데 서현이 말하는 무량수전은 좀 달랐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엄동설한에 무량수전의 아미타불과 독대를 하게 된 이유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43> 서현의 『배흘림기둥의 고백』

현대건축가 입장에서 뒤집어보기
서현의 『배흘림기둥의 고백』은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가, 수정을 거쳐서 대중서적으로 다시 발간됐다. 새 제목은 ‘고백’이라는 도발적인 단어를 품고 있다. 누구의 ‘고백’인가? 배흘림기둥 자신이다. 거기에 기대어 감동한 사람들이 아니다. 책의 태도를 구호로 정리하면 이렇다. 구라 금지! 감상 금지!
“배경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우아한 용마루와 처마 곡선”을 “백자의 허리, 흰 버선코”에 비유하는 기존의 설명은 “메시지 없는 수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백자와 버선은 아무리 잘못 만들어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지만 “건물은 잘못 만들면 붕괴”해버리는 위험한 작업이다. 아름다움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얻게 된 우아한 결과물”일 뿐이지 집을 짓는 목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을 거라는 말이다.
전통 건축사가의 입장이 아니라 현대건축가인 저자는 기꺼이 목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는 ‘최적화’와 ‘양식화’라는 두 개념으로 전통건축의 발달사를 추적해 나간다. 숲 속의 나무가 건물이 되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하는 최적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하나의 형식이 완성된다. 완성된 형식이 “이유가 생략된 채 형태가 반복되어 전승하는” 과정이 양식화다.
저자가 주로 주목하는 것은 ‘최적화’ 과정이다. 양식화 과정을 겪으면서도 건물에 남아 있는 여러 ‘흔적기관’들에 대한 분석은 이런 진화론적 추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유물로 남아 있지 않은 진화의 과정을 추론하는 것은 “합리적 상상력, 선입견 없는 관찰의 경험”인데, 그 기초가 되는 것은 나무라는 재료에 대한 이해다. 민가의 단출한 구조는 대략 열 번 찍어 넘어간 목재의 굵기와 크기에 적응한 형식이지만 사찰이나 궁전처럼 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이 제한된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 창안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그의 논의가 본격화된다.
건물의 기본은 기둥과 지붕이다. 집안에 빗물이 새어서도 안 되고 밖에 노출된 나무 기둥이 빗물에 썩어서도 안 된다. 이게 지붕의 진화 방향을 결정짓는 기본이다. 빗물로부터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서 처마는 길어졌고, 햇빛이 드는 날에는 기둥이 빨리 건조될 수 있도록 그 끝은 들어올려 졌다. “흰 버선코” 같이 살짝 들어 올려진 우아한 처마 곡선은 이를 위해 최적화된 형태들이다. 더 긴 처마가 달린 지붕에 대한 요구는 지붕을 이고 있는 기둥과 기둥들을 연결하는 보(대들보)의 진화 방향을 결정했다.
마침내 고려시대에 “전통 건축사를 통틀어 최고의 발명”이라고 부를 만한 ‘포작’이 등장했다. 포작으로 기둥과 보는 보다 “합리적으로” 연결됐다. 무량수전의 길고 아름다운 처마선은 이런 포작의 탄생으로 가능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은 하나의 기둥 위에 하나의 포작을 얹는 초기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이다. 이후에는 여러 포작들을 일렬로 배치한 다포식 건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다포식 건물은 결국 건물의 생존을 위한 부단한 진화의 결과였다.
장식 없는 포작 아래 가운데 부분이 임산부처럼 볼록한 배흘림기둥이 나란히 서 있다. 그 모양에 관해 교과서는 “기둥 중간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보정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기를 들고 저자가 찾은 답은 주초다. 배흘림기둥은 조그만 동그라미 모양의 석재 주초 위에 올라서 있다. 기둥의 밑변이 작으면 작은 석재로도 충분하다. 건축을 지배하는 원리는 미의식이 이전에 합리적인 경제원리였다.

건물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물
문풍지가 희뿌염해지면서 동이 튼다. 법당 문을 나서서 처마 끝과 기둥 위의 포작의 모양을 유심히 본다. 주춧돌의 둥그런 생김새도 챙겨서 본다. 각 부분의 최적화가 빚어내는 밸런스가 최고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본다. 첩첩이 쌓인 소백산 산줄기가 여명 속에서 깨어나고 있다.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안목”에 감탄하던 최순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일출의 붉은 기가 동쪽 안산 위에 어려 있다. 무량수전과 안양루는 남향인 앞 건물군들과 달리 동쪽으로 30도 틀어져 있고, 그 안의 아미타불은 완전히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김봉렬은 이렇게 설명한다. 삼국통일 직후, 나누어졌던 세 나라의 백성들을 하나로 묶을 새로운 사회사상이 필요하던 시기에 “통일과 융합을 원리로 삼는 화엄사상을 수입함으로써 종교지도자로서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의 강렬한 자문역”을 하던 의상 대사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고. 양식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 및 건물의 역사적 유래가 ‘고백’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부석사의 실물을 보고나니 전통건축 전공자가 아닌 내 눈에는 모두 다 맞는 말들처럼 들렸다. 최순우에게서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법을, 김봉렬에게서는 건축물에 깃든 철학적인 사유를 읽어내는 법을, 서현에게서는 건물의 구조를 보는 법을 배웠다. 일주문을 내려가는 길이 이제 훤하다.
“제시된 대안보다 더 만족스러운 방식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누군가 때문에 세상은 조용할 새가 없다”는 서현의 말은 자신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 같다. 세상은 그래서 움직이고, 살아 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게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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