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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착한 남북 정상회담

이영종
정치부문 차장
김대중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3월 26일. 한 조간신문 가판 1면에 ‘현대, 북한에 4억 달러 비밀 제공’이란 톱기사가 워싱턴발로 실렸다. 정부당국과 언론이 발칵 뒤집혔지만 청와대 핵심 인사는 부인했다. “부시 행정부 매파들이 흘린 엉터리 정보”란 얘기였다. 기사 출처인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작성자인 래리 닉시 연구원은 졸지에 한국 정부의 기피인물로 찍혔다. 하지만 꼭 6개월 뒤인 국회 정무위 국감장에서 대북 송금의 구체적 정황이 폭로됐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송금 특검을 받아들였다. 송두환 특검팀은 4억5000만 달러로 드러난 송금이 정상회담과 관련이 있다고 결론을 냈다. ‘역사적 첫 남북 정상회담’은 뒷돈 거래라는 오명을 썼다.



 10년이 흐른 그제 정부 고위 인사가 청와대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여러 차례 북한과 정상회담 추진 접촉을 했다며 “쌀과 비료 등 총 5억~6억 달러어치 현물 지원을 북한이 요구했다”고 공개했다. 이를 들어주지 않자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도발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검은손이 드러나면서 정상회담 비밀 접촉의 퍼즐도 상당 부분 풀렸다. 재작년 6월 북한 국방위가 남측이 비밀접촉에서 돈봉투를 북에 주려 했다며 뒤집어씌우기에 급급했던 이유도 짐작이 간다.



 두 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DJ 정부의 대북 유화 노선은 퍼주기 논란을 불렀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표방한 MB 정부는 ‘남북관계를 망쳤다’는 비난을 샀다. 송금 특검이란 칼을 휘둘렀지만 노무현 정부는 DJ쪽에 가까웠다. 10·4 선언은 개성~신의주 철도 보수 등 천문학적 국민 세금이 들어갈 대북 인프라 지원을 담고 있다. 사실상의 수억 달러 현물 제공 약속이란 지적도 그 때문이다.



 공통점도 있다. 정상회담이란 달콤한 유혹을 외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9년 8월 서울에 온 북한 DJ 조문단의 정상회담 제안에 이명박 정부 실세가 싱가포르로 달려갔다. DJ는 송금 지연으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 날짜를 하루 늦추는 수모도 겪었다. 노무현 정부 때 핵심 관계자는 “대선 두 달을 남긴 막판 정상회담에 반대가 많았지만 ‘역사에 남는다’는 말에 노 대통령도 결국 넘어갔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당선인도 후보 시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겠다”고 말했다. 로켓 발사와 추가 핵실험 우려란 변수가 있지만 김정은과의 만남을 예견하는 듯하다. 첫 한국 여성 대통령이 32살 연하의 북한 지도자를 만나는 건 세계적 이벤트다. 남북 체제경쟁의 주역 박정희 대통령의 딸과 김일성의 손자가 상봉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그렇지만 대북 문제는 총론이나 상징보다 디테일로 승부해야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정상회담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비밀에 꽁꽁 묶인 정상회담 대화록을 꺼내 김대중·노무현·김정일 세 사람의 숨소리까지 읽었으면 한다. 거기서 교훈을 찾아 진짜 역사에 남을 ‘착한 남북 정상회담’ 청사진을 그리면 좋겠다. 결단은 박 당선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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