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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 같은 우리네 일상 섣불리 희망 말하지 말자

외환위기 세대의 쓸쓸한 풍경을 그려낸 장편 『체인지킹의 후예』을 쓴 소설가 이영훈. 그는 “세상이 너무 빨라지면서 남에 대한 세심한 배려나 사유가 사라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인간애”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각박한 세상, 여기저기서 위로를 요구한다. ‘힐링’이 거의 보통명사처럼 통용된다. 그런데 TV·영화·에세이 등에는 느슨한 친절과 격려가 넘친다. 우리는 그 가상의 공간을 진실이라 믿은 채 현실과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

이영훈 장편 『체인지킹의 후예』



 소설가 이영훈(35)은 장편 『체인지킹의 후예』에서 이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2012년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2008년 등단한 이씨는 지난해 단편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로 제3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걸그룹 소녀시대로 대변되는 우리 시대의 판타지를 꼬집었다.



 한국사회를 해부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이번에도 예리하다. 이야기는 보험회사 직원인 32세의 주인공 영호가 자궁암 투병 중인 연상의 채연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채연의 12살짜리 아들 샘이 미국에서 귀국하며 영호는 ‘아버지 되기’라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샘과 친해지고 싶은 영호는 아이가 관심을 갖는 특수촬영물(특촬물) 시리즈인 ‘변신왕 체인지킹’을 파고든다. 특수촬영물 마니아인 ‘민’을 만나고, 보험사정인 ‘안’과 함께 보험사기를 밝혀내는 과정이 작품의 폭을 넓힌다.



 20대에 외환위기를 겪은 작가는 “내일에 대한 믿음이 없는 우리 세대는 가난하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오늘은 거대담론이 없는 시대다. 믿을 것, 기댈 것이 사라진, 심지어 맞서 싸울 적(敵)도 없어진 세상을 작가는 ‘아버지가 없는 시대’라 칭한다.



 “우리 세대는 세상을 TV와 영화 등을 통해 배웠죠.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가혹하고 비루한 현실은 없어요. 언제나 답이 존재하죠. 그런데 현실은 가시밭길이고 지리멸렬하잖아요.”



 사실 부인할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대중문화·온라인 등에서 고단한 일상을 잊으려 한다. 그러니 현실문제를 둘러싼 소통에 서투르다. 샘의 마음을 열고픈 영호가 샘과 대화하기보다 특촬물 동호회를 찾아 나서는 것도 그렇다.



 “우리 세대는 위험을 무릅쓰거나 시험을 하지 않아요. 세상이 정한 방식대로, 프로그래밍한 대로 살아가는 거죠.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하지 않고. 지루한 모방과 반복만을 양산할 뿐이에요. 소통을 원하면서도 정작 남의 말은 듣지 않죠.”



 아들의 팔을 다치게 해 보험료를 타내려는 윤필을 배치한 것도 불안한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보험사기를 저지른 윤필은 영호의 거울과 같아요. 한 발만 삐끗하면 누구나 망가져 윤필처럼 될 수 있으니까.”



 살얼음 위를 걷는 위태로운 일상에서 저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 모든 노력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건 사랑이라 했다.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영호와 채연의 사랑도 의도한 바였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세상에도 삶을 흔들고 균열을 가져오는 것은 사랑일 수밖에 없어요. 강렬한 그 감정은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지만요.”



 영호의 사랑에도 채연은 죽음을 맞는다. 남은 의붓아버지 영호와 샘의 관계는 진전됐다. 어쩌면 그들은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작가는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영호는 “사는 데 자신은 없지만 이대로 비틀비틀 이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불행에는 판단이 없어요. 그러니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나쁘죠. 불운과 마주했을 때 절망을 견뎌내는 법을 가르쳐야 해요. 각자가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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