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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구조조정을 위한 변명

김영욱
논설위원
경제전문기자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요동을 치고 있는 와중에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기장은 비장한 음성으로 기상 이변으로 더 이상 운항할 수 없다며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깜짝 놀란 승객이 목사에게 “저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목사는 “희망이 없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희망 없음’을 기장은 엄숙하게 ‘하느님의 뜻’으로 돌려서 말했다는 일화다.



 신년 정초부터 웬 싱거운 얘기냐는 지청구를 들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얘기를 꺼내는 건 박근혜 당선인이 열흘 전 전경련을 찾아가 한 말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 회장들에게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근로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분담에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당선인은 ‘자제’를 얘기했지만, 나는 “올해 우리 경제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엊그제 “앞으로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실토(?)했다.



 내 생각도 이 대표와 같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로 확 낮춰 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내내 “상반기는 나빠도 하반기는 좋아질 것(上低下高)” “3분기가 바닥이니 추경은 필요 없다”고 낙관했다. “경기 급랭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해도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지난해 성장률은 당초 전망보다 1%포인트 이상 떨어진 2%대 중반으로 예상될 정도다. 사실 성장률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사람들의 삶이 팍팍하지 않다면 3년 연속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사상 초유의 참담한 실적도 큰 문제는 아닐 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가 나빠지면 당장 닥치는 문제가 실직이다. 일자리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사람 목숨이 달린 생존의 문제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도 실직은 극심한 고통인데, 생계조차 막연한 실직자의 좌절과 분노야 더 말해서 무엇할까. 당선인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자제를 요청한 심정이 이해되고도 남는 까닭이다. 그만큼 경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 10명 중 7명이 인력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마당이다. 게다가 올해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들의 ‘수난 시대’가 될 것이다. 허리 격인 58년 개띠 생들이 법정 정년(55세)을 맞고 막내인 1963년생들이 50세가 되는 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당선인이 구조조정을 자제해 달라고 언급한 건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당선인은 자제를 얘기했지만 받아들이는 측은 ‘강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조조정을 중단한다면? 그 결과는 더 심각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내외 경제상황이 단적인 증거다. 돈을 푼다고 경제가 살아날 것 같으면 세계경제는 진작 좋아졌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유럽은 여전히 세계경제의 화약고이고, 미국과 일본 역시 살아나려면 한참 걸릴 거다. 우리도 마찬가지 신세다.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나라라고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지금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부 기업에 부실이 누적됐고, 거품이 많이 낀 게 그 증거다. 만일 몇몇 그룹이 쓰러지고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면 그 파장은 심각할 것이다.



 구조조정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군살을 빼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적당한 핑계로 오늘의 고통을 피한다고 해도 이는 미봉에 불과할 뿐, 몇 년 뒤 더 혹독한 복수로 되돌아오는 법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구조조정을 막을 일이 아니다. 실직자의 고통 앞에 그 어떤 위로도 사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고통 때문에 구조조정을 늦출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당선인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실직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더 촘촘하게 만들고 재취업 시스템의 정비를 서두르는 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희망을 얘기하는 일이다. 지금은 이토록 힘들지만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그 희망 말이다. 경제 아닌 정치의 소임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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