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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 아베, 당분간 ‘저공비행’할 듯”

아베 신조 총리(앞줄 왼쪽에서 셋째)가 26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첫 내각회의를 마친 뒤 각료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워싱턴이 안도하는 목소리가 아시아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아베 정권의 미래, 국내외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나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일본 총선과 19일 한국 대선 결과를 전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모두 보수 색채를 띠며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거론하면서다. 그러나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다. 과거사·영토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의 복잡한 방정식 때문이다. NYT 역시 “앞으로 동북아 정세는 미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핵심은 한·일 관계의 뇌관인 과거사·영토분쟁에 대한 아베 정권의 극우 성향이다. ‘일본을 되찾자’는 구호를 내건 아베 내각과 자민당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 수정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수정 ▶시마네현의 지역행사인 ‘다케시마(竹島)의 날(2월 22일)’ 국가 행사 승격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실효지배 강화를 위한 공무원 상주 추진 등 극우 성향의 공약을 쏟아냈다.

그러나 막상 정권 출범 이후엔 극우 공약을 뒤집으며 숨 고르기에 들어가고 있다. 전술적인 수정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중앙정부가 개최하는 방안과 관련해 “종합적인 외교 상황을 감안해 생각하겠다”며 유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자민당의 2인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 역시 중앙정부 개최 유보 입장을 확인했다. “일·한 관계가 악화할 경우 어디가 기뻐할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다. 이어 27일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며 공약을 뒤집었다. 아베 총리의 숙원이었던 고노 담화의 수정에 대해서도 “이 문제를 정치·외교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외부의 관점, 즉 전문가의 검토가 바람직하다”고만 밝혔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아베 총리는 현실주의자적인 면모도 갖고 있다. 중·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까지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특사를 서둘러 보낸 점에서도 한국과 접점을 찾으려는 의지가 엿보이며 이를 우리 차기 정부가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대 이원덕(일본학) 국제학부 교수=“아베 정권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안전운행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분간은 저공비행을 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우경화 공약 때문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민주당 정권의 실정(失政)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마틴 패클러 NYT 도쿄지국장은 “아베 정권이 우경화 성향인 건 맞지만 일본 국민 전체가 우경화하고 있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일본을 20년 넘게 취재해 온 스티븐 허먼 미국의 소리(VOA) 동북아지국장의 의견도 비슷하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이 잘해서 선거에서 이긴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당분간 우익 성향 공약을 적극적으로 실현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적어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아베 내각이 몸을 낮추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먼저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 민심을 잡은 뒤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 우익 성향 공약을 실행하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아베 내각 인선, 극우 예단은 조심해야
내각 인선에서도 아베 총리의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익 성향이 뚜렷한 내각이지만 아베 총리의 반대파였거나 중도 성향인 인물도 기용했다는 점에서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집권 땐 측근을 대폭 기용하면서 “친구 내각을 만드는 거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나름대로 복잡한 노림수를 둔 흔적이 엿보인다.

18명의 신임 각료 중 강성 우파로 분류되는 인물은 11명이다. 지난해 8월 울릉도 방문을 강행했던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 위안부 문제를 놓고 “부모가 딸을 파는 일이었다”는 망언을 했던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이 대표적이다. ‘아베 패밀리’ 핵심 인사이자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수차례 주장해 온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는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장관으로 발탁됐다.

아베는 자신과 자민당 총재직을 놓고 갈등했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전 총재를 법무상에,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를 농림수산상에 기용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일본연구소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아베 나름의 탕평인사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내각에 넣어 나름의 균형을 잡으려 한 것으로,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무난히 가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다니가키 법무상과 하야시 농림수산상은 비교적 중도보수 성향이며 우익적 쟁점에서 편향된 발언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국민대 이원덕 교수 역시 “한국과 대결구도로 가야 한다는 이는 현재 일본 내에서도 소수”라며 “아베 정권이라고 무조건 우리와 충돌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작 급한 불이 붙은 건 경제다. 아베 정권은 최우선 과제를 경제회생으로 부각시켰다. 다니구치 도모히코(谷口智彦) 게이오대 교수는 “아베 내각의 우선순위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며 “경기부양에 성공하기 전까지 아베 정권은 섣불리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 정권 최우선 목표는 경제 회생
아베 정권은 ▶엔화를 약세로 돌려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고 ▶물가상승률을 2%로 상향 조정하며 ▶10조 엔(약 125조원) 규모 추경예산을 편성해 경기를 부양하고 ▶도로·항만 등 토목사업에 10년간 200조 엔을 쏟아붓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양적완화를 위해 일본은행(BOJ)에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1%에서 2%로 수정하지 않으면 법 개정을 통해 중앙은행 독립성을 제한하겠다고까지 압박했다.

그래선지 엔저 현상은 뚜렷해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9월 초 달러당 78.3엔에서 지난 27일 85.555엔으로 9.25% 올랐다. 그만큼 엔화가치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전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엔화가치의 하락률이 가장 컸다. 이는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수출경쟁력 약화로 직결되는 문제다. 고려대 오정근(경제학) 교수는 “1995~97년까지 원·엔 환율이 23% 하락하며 원화가치가 상승해 경상수지 적자폭이 커진 것이 97년 외환위기 주요 원인이 됐다”며 “우리 정책 당국이 예사롭게 넘기면 안 될 부분”이라고 경고했다. 관광산업 역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성욱 연구위원은 “일본 관광객들은 비용에 상당히 민감한 경향을 보인다. 엔저 현상이 발생하면 한국 관광 수요가 줄어들어 여행수지도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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