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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또 쓰는’ 스타일 비슷…‘밀봉 인선’은 딴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지난 해 11월 14일 모습.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북 구미 생가 옆 기념공원, 선친의 추모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998년 정치권 입문 후 단 한 번도 보좌진을 교체하지 않았다. 27일 임명한 대통령직인수위원 상당수는 대선 선대위 출신이다. 대선 선대위 실무진의 상당수는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호흡을 맞췄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2004년 인연을 맺은 박 당선인에게 세 번 부름을 받았다. 당 대표 비서실장, 대선 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이다. 향후 청와대나 내각에 진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근혜·박정희 용인술 비교해보니

남덕우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4년11개월간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4년여간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곧 다시 1년 가까이 경제수석을 맡았다. 태완선 전 부총리는 대한석탄공사 사장, 건설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연이어 지냈다. 박 전 대통령은 사람을 ‘쓰고 또 쓰는’ 스타일이었다.

#박 당선인은 한국조세연구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지낸 ‘경제통’ 유일호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18대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옆자리에 앉긴 했지만 유 의원은 본래 박근혜계가 아니었고 당선인과 별 연고가 없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유 의원에게 “정책 마인드가 있지 않으냐”며 비서실장을 맡겼다.
박 전 대통령은 3선 개헌안이 통과돼 뜻대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게 된 69년 10월 김정렴 당시 상공부 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5·16 직후 통화 개혁에 참여하긴 했지만 한국은행·재무부 출신인 김 장관은 박 전 대통령과 별 연고가 없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라며 비서실장을 맡겼다. 김 비서실장은 이후 9년2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해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박 전 대통령, 수첩에 적힌 1000명 집중 관리
부전여전(父傳女傳)인가. 박 당선인의 용인술은 얼핏 보면 부친의 용인술을 닮았다.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쓰던 사람을 또 기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실무에 밝은 전문가를 선호하는 점도 부녀가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은 5·16 직후엔 군 출신을 부처 장관과 권력기관장에 배치했다. 하지만 정권이 안정되자 권력집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혁명주체를 배제하고 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을 중용했다(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

박 당선인도 유일호 의원뿐 아니라 김광두·안종범·강석훈 등 교수 출신 경제통을 가까이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향후 인선과 관련해 25일 “전문성 위주로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것도 부녀가 일치한다. 박 당선인은 2010년 “친박에는 좌장(座長)이 없다”고 선언했다. ‘좌장’으로 평가되던 김무성 전 의원을 겨냥한 말이었다. 이후 최경환 의원이 중용되기도 했지만 누구든 2인자로 올라서려는 순간 박 당선인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게 친박 내부의 정설이다.

공인된 2인자가 없다 보니 친박 인사들은 박 당선인의 인정을 받으려 경쟁한다.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놓고 서로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 것도 경쟁구도에서 나타난 풍경이다.

박 전 대통령도 특정인에게 힘을 실어 주지 않고 경합을 시켰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분리 지배)’로 불린 용인술이다. 유신 전엔 김형욱·이후락, 유신 이후엔 차지철·김재규의 경쟁구도였다. 김종필(JP) 전 총리도 한때 후계자로 불렸으나 박 전 대통령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견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 관리도 ‘4자 회담’(김형욱·이후락·김성곤·장기영) 틀로 서로 견제하게 했다. 당 재정 담당이던 김성곤은 정치자금을 국회의원들에게 보태 주며 권한을 행사하려 했지만 곧 박 전 대통령이 교체해 꿈은 무산됐다(김병문 안동대 교수, 그들이 한국의 대통령이다 참조).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와 입지를 위협할 만한 2인자의 출현을 철저히 배제했다.

박 당선인은 민주당 출신 인사들과 인혁당 사건 피해자 등을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임명하며 ‘대통합 인선’을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도 여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스타일이었다. 본래 민주당 정권 사람이던 태완선 전 부총리는 “민주당 정권에서 장관을 했기 때문에 석탄공사 사장을 시킬 때만 해도 정치적 제스처라 생각했다. 그런데 건설부 장관, 부총리까지 시키니 ‘정말 국가 건설에 필요하다고 여겨 기용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자꾸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두선을 총리로 기용한 것도 파격이었다. 한때 동아일보 사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여순사건 관련 사실을 호외로 발행할 정도로 반대쪽에 섰던 인물이어서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그런 사람을 과감히 총리에 앉혔다는 건 박정희가 여야 없이 인재 등용 폭이 넓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회고한다.

남덕우 전 총리도 교수 시절 정부에 비판적이었지만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박 전 대통령은 “남 교수,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부터 맛 좀 봐”라고 했다.

사람을 쓸 때 집요한 것도 부녀가 유사하다. 박 전 대통령은 3선 개헌 당시 개헌에 반대하던 김택수 의원을 수차례 불러 개헌 사령탑인 원내총무에 임명하는 데 성공했다. 박 당선인도 삼고초려를 마다 않는다. 인요한 인수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은 본래 박 당선인이 지난해 말 비대위원직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올해 선대위 구성 때 다시 불렀고, 인수위에도 기용했다.

부녀 모두 사람을 치밀하게 관리했다. 박 당선인은 친박 인사의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 준다. 티셔츠나 ‘계영배(술이 일정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 나가게 만든 잔)’를 선물하기도 한다. 박 당선인은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야학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피자를 돌렸다. 박 당선인은 민생현장 방문 중 마주치는 인물도 잊지 않고 기억했다 연락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내쳤던 인사도 챙겼다. 물러난 지 3개월이 지나면 전화를 하고, 또 3개월 뒤엔 측근을 보내 인사하고, 6개월 더 지나면 청와대로 불러 식사하며 촌지를 줬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을 좌천시킨 뒤 밤 12시에 불러 “임자가 쫓겨난 줄 알고 무시하는 놈들이 있으면 얘기해 봐. 내가 혼을 내줄 테니까”라고 한 적도 있다. 안동대 김병문(행정학) 교수는 “박정희는 작은 수첩에 1000명가량의 명단을 적어 놓고 수시로 어떻게 지내는지, 밥은 먹고 사는지 알아봤는데 반성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다시 발탁해 쓰기도 했다”고 전한다.

박 당선인은 부친 서거 뒤에도 박 전 대통령의 사람들을 챙겼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6억원 중 상당액은 부친을 따랐던 사람들을 챙기는 데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증 작업, 보좌진 3인방과 최외출이 핵심
부녀가 다른 점도 있다. 박 당선인은 인사 보안을 유달리 중시한다. 참모나 원로그룹에서 추천안을 받긴 하지만 검증 실무작업은 보좌진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최외출 영남대 교수 정도에게만 맡기고, 최종 결정은 본인이 직접 내리는 폐쇄적 구조다. 인물 평가도 본인이 직접 한다. 과거 해외 순방 때마다 이명박계 인사나 중립 인사를 동반한 것도 직접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권영세 전 종합상황실장이 그런 평가에서 통과된 경우다.

보안 때문에 당사자조차 인선 내용을 발표 직전 아는 경우가 많다. 한광옥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도 발표 하루 전에야 박 당선인으로부터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당사자는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려선 안 된다. 한 박근혜계 인사는 “공식 발표 전 비공개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이고 그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당선인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주변에 인선을 과감하게 맡겼다. 5·16 뒤엔 세 가지 기준(그래픽 참조)만 제시하고 유원식 당시 대령에게 사람을 찾게 했다. 정부 부처에 기획조정실이 창설될 땐 이한빈 당시 재무부 차관이 제안한 인사명단을 바로 다음 날 송요찬 내각 수반이 발표했다.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아, 박정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총리와 개각을 상의했고, 차관 이하 인선은 장관 의향에 따랐다.

이런 아버지와 달리 박 당선인이 직접 인선을 챙기는 건 ‘배신 트라우마’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부친이 측근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부친 사후 주변 사람들이 등을 돌렸던 경험 때문이란 거다. 박 당선인은 참모들이 인사를 추천하면 “믿을 만한 분인가요”부터 묻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당선인은 용의주도한 성격인 데다 청와대 시절 정보를 다루는 훈련을 받았고, 18년간 혼자 생활하며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데 익숙해졌다”며 “나홀로 판단에 대한 노하우와 자신감이 있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봤다. 그는 “비밀 인선을 하면 로비를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검증이 부족한 단점이 있는 만큼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당선인이 명문가 2, 3세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일호 비서실장은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아들이고, 윤주경 인수위 대통합위 부위원장은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다. 인요한 대통합위 부위원장은 5대째 한국에서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을 해 온 가문 출신이다. 김종인 전 행복추진위원장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이고, 김무성 전 총괄선대본부장은 민주당 민의원 원내총무와 초대 주일공사를 지낸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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