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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 타지 말고 태산준령 넘어라”

강신주가 중앙SUNDAY 서가 앞에서 빈손이 어색해 무심코 뽑아 든 폰 헤르더의 『새로운 역사철학』을 들고 서 있다. 조용철 기자
강신주(45)는 오늘의 고통을 고전 철학으로 풀어낸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발을 밟혔을 때 화낼 수 있는 상황과 화낼 수 없는 상황을 예로 들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설명하고, 중국 철학자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을 통해 운명적인 사랑이나 만남은 없다고 정리한다.

파워 차세대 ⑮ 재야 철학자 강신주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정할 때는 데리다를 불러낼 수 있다. 데리다에 따르면,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잊으려는 의지만이 선물을 선물로 만든다. 그의 글과 말을 통해, 몇 번씩 꼬여 이해하기 힘든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은 한층 가까워진다. 그리고 다시 각자가 해결해야 할 고민으로 이어진다. 죽은 철학자의 말이, 살아 있는 충고가 되어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책으로 말을 건 저자는 독자의 의문에 답할 책임이 있다”는 강신주는 강연을 많이 하는 저자로도 유명하다. 특히 독자 모임엔 규모와 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사진은 한 강연장에서 김수영의 시를 낭독하는 모습. 오른쪽은 강신주의 근작인 『김수영을 위하여』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사진 민음사]
대중과 철학을 연결하는 작업을 해 온 강신주는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다. 2004년 첫 단행본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을 시작으로 지난 9월 김수영을 위하여까지 17권을 써 내는 내공을 발휘했다. 2009년 자본주의를 키워드로 우리가 원치 않는 욕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이유를 탐구한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강신주는 출판사들이 가장 붙잡고 싶은 ‘인문학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시에 비친 현대철학을 담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2010)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2011), 56개의 주제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철학자들을 대비한 철학 vs 철학(2010), 김수영을 위하여 모두 철학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

교수나 강사라는 특정한 직함이 따라붙지 않는다는 점도 강신주의 ‘특이사항’이다. 오로지 철학만으로 먹고사는 셈인데, 이는 우리 풍토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을 강단에서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멋진 글 쓰고 싶어 철학 공부한 공대생
“이걸 넘어올 수 있겠어?” 산이 물었다. 험하고 높았다. 우회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래 저걸 넘어가자.” 그렇게 ‘386 화공학도’는 철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연세대 화공학과 졸업 후 서울대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연세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주제는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 “동양철학을 전공했지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번갈아 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여러 인문학 분야 중 철학을 택한 이유도 독특하다. “어려워 보여서”란다.

“올라올 테면 올라와 보라”고 말하는 태산준령 앞에서 도전정신 가득한 산악가의 기질이 발동한 것이다. 에베레스트를 눈앞에 둔 등반가에게 다른 산은 시시해 보였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장점이죠. 대학생활의 60~70%를 인문사회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데 썼으니까.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전공을 바꾼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이과에 간 것은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가난했던 부모님에겐 아들 취직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어디선가 ‘문과 가면 거지 된다’는 말을 듣고 학교로 찾아와 아들도 모르게 반을 바꿔 놓으셨더라고요. 그런데 전 어릴 때부터 글 쓸 때가 가장 좋았어요. 아버지 돈으로 학교 다니는데 별수 있나요. 그렇게 대학까지 간 거죠.”

70년대 초 고향인 경남 함양을 떠나 맨손으로 상경한 강신주의 부모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아들이 공대에 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던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애착은 가장 최근 출간된 김수영을 위하여의 에필로그에서도 엿보인다. 코를 너무 많이 흘려 여학생들이 옆에 앉지 않겠다고 울던 ‘국민학생 강신주’는 작문으로 서울시교육감 상을 받으면서 “글을 쓰면 사랑받을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고 한다. 글을 잘 써서 상을 탔다는 이유로 자신을 벌레 취급하던 아이들이 변하고, 미술시간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뺨을 때리던 담임선생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 철학과로 돌진했다. “가장 멋진 글은 철학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평탄치는 않았다. 자기 생각을 담은 글보다 남의 이론을 정리해 발표하는 게 우선인 풍토에 회의가 들었다. ‘튀는 발상’으로 교수들과 충돌할 때도 많았다.

대신 공부엔 치열하게 매달렸다. “철학 vs 철학을 보고 사람들이 ‘설마 그 저자들을 어떻게 직접 다 읽었겠느냐’고 해요. 근데 정말 다 읽었어요. 철학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산 파지 말고, 태산준령을 타라고 합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해야죠. 스피노자,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비트겐슈타인까지. 큰 산 여섯 개만 넘어가면 나머지는 다 그 중간중간 끼어 있는 작은 산이에요. 한 번씩 넘으면 그 다음엔 무서운 게 없어집니다. 동양철학에서도 불교, 나가르주나, 유식불교, 주자… 너무 높아서 탁 막히는 느낌을 주는 산부터 정복해야 풀어나갈 수 있어요.”

강신주는 재야 철학자다. 박사학위를 딴 이후엔 연세대, 경희대 등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흔이 되던 해, ‘보따리 강사’를 모두 정리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보낸 e-메일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냥 ‘쿨하게’ 학점이나 잘 주면 되는데, 괜히 사회비판적 이야기를 꺼내 자기 삶을 회의하게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나 혼자서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구나. 나중에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스스로 자기 고민을 할 때 읽을 만한 책을 쓰는 게 낫겠다 싶었죠.”

대학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많다. “대학 철학과에는 철학자가 없다”는 말은 사뭇 비장했다. 대부분은 철학사만을 붙잡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교가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유괴범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제의 정으로 이끌어주는 일은 지극히 드문 미담이 됐다. 교수는 정규직 임용을 위해 자기 실적을 쌓느라 학생을 가르칠 시간이 없고, 학생은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 교수는 가르치는 척하고 학생은 배우는 척할 뿐 진정한 학문적 교류는 없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철학은 당장 고통의 원인을 궁금해하는 대중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기준에서, 거친 세상을 전혀 모르는 모범생 같은 지식인이 많아진 탓도 있다. “현재를 잘 알아야, 과거가 보이기 때문에 우리 이웃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를 알아야죠. 중세엔 관심이 우주였기 때문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가 중요한 고전 텍스트였지만, 근대 이후엔 국가가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사회를 개혁하고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 처했으니까요. 사람을 많이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어, 플라톤도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겠죠.”

“텍스트보다 사람 읽기가 더 어려워”
강신주에 따르면 철학자는 “다른 사람보다 약간 비스듬히 앞서 가면서 성찰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철학자가 된 그에게 철학이란 인간을 가장 깊게 사랑하기 위한 학문이다.

철학자는 시대 고민을 자기 고민으로 반추해 고전 텍스트와 현재를 자주 오가며 의미 있는 가이드를 해낼 수 있다. 너무 선생티를 내거나 혼자 달려가면 따라오지 못한다. 특히 동시대의 살아 있는 철학자의 역할이 소중하다. 그가 강연에 애착을 갖고 공을 들이는 것도 살아 있는 저자와의 대화가 성찰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에게 강연은, 책을 낸 저자로서 일종의 애프터서비스이기도 하다. 강연장 질의응답 시간에 오고 간 질문이 모여 새 책의 주제가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도 강연장에서 받은 질의를 풀어내다 보니 완성된 책이다. 지난 한 해도 강신주는 강연장에서 2만여 명을 만났다. 하루 평균 55명꼴이다. “텍스트보다 사람 읽기가 더 어렵죠. 고통을 호소하는데, 그게 뭔지 해독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를 읽고 있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죠.”

요즘 강신주의 생활이란 오로지 집필과 강연, 등산의 반복이다. 사실 이것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일주일에 10~15건의 강연을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엔 대부분 광화문 사무실에서 집필에 매달린다. 내년에 나올 두 권의 책도 마무리 단계다.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판’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지치면 안 되죠. 옛날에는 우리 성찰 좀 하면서 살자고 아무리 청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엔 여기저기서 알아서 잔치를 벌이고 와 달라고 하니, 좋죠. 달려가야죠. 어차피 4~5년 후 사람들은 ‘강신주에 질렸다’며 절 버릴 거예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다행히 난 연예인이 아니니까. 지금 내 얘기를 들은 사람의 10% 정도만 남아 계속 성찰을 이어 간다면 내겐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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