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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와 승리·성취, 인간의 욕망 채워주는 팀

1923년 지어져 홈런왕 베이브 루스 등 수많은 스타들이 활약했고, 월드시리즈를 100경기나 치른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양키스타디움 전경. ‘루스가 지은 집’으로 알려진 양키스타디움은 2008년 철거됐고, 양키스는 13억 달러를 들여 맞은편에 새 구장을 지었다. [중앙포토]
“내게 승리는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숨을 쉰다면 이겨야 한다.”

‘타격 천재’ 이치로가 잔류 택한 양키스는… 

80세를 일기로 2010년 숨을 거둔 조지 스타인브레너 뉴욕 양키스 전 구단주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양키스에는 패배를 허락하지 않는 공기가 있다. 그런 팀이 날 원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지난 20일 양키스와 2년 총액 1300만 달러에 재계약한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39)가 남긴 말이다.
양키스는 승리한다. 우승한다. 감동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또 돈을 번다. 부와 승리, 그리고 성취는 양키스의 전통이고 꿈이다. ‘세계 최고’ ‘세계 최강’이 양키스 브랜드의 실체다.

스타인브레너는 “양키스를 갖는 건 모나리자를 갖는 것과 같다”는 말도 했다.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가치를 가졌다는 뜻이다. 1973년 미국 방송사 CBS로부터 1000만 달러에 양키스를 사들인 스타인브레너는 35년이 지나 건강 악화로 구단 경영을 할 수 없어진 뒤에야 막내아들에게 모나리자와 같은 유산을 물려줬다.
 
“양키스는 모나리자와 같다”
양키스를 소유하는 방법은 구단주가 되는 것뿐이지만 양키스의 일원이 되는 길은 조금 더 넓다. 최근엔 일본인 천재 타자 이치로가 그 길을 택했다. 2001년부터 10년 넘게 시애틀 매리너스의 간판이었던 그는 지난 7월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이치로는 스타 플레이어가 넘쳐나는 양키스에선 평범한 선수다. 메이저리그 역대 두 번째로 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했고, 올스타에 10번이나 뽑혔던 시절은 갔다. 마흔 살이 가까워지자 시애틀이 그를 놔줬다. 올해 1800만 달러였던 연봉이 3분의 1로 줄었지만 내년에도 그는 양키스에 남는다. 다른 구단과 계약했다면 연봉 200~300만 달러 정도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이치로는 양키스를 택했다.

이치로는 “승부의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은 이기고 싶은 열망이 있다. 양키스에는 패배를 허락하지 않는 공기가 있다. 이게 살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협상 과정에서 이치로는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찾았다. 메이저리그에서 꿈꿨던 이상이 양키스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에서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그는 양키스에서 마지막 꿈을 좇고 있다.

프로 선수는 자신의 가치를 연봉으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최고 명문팀 양키스에서라면 돈 말고도 추구할 가치가 있다.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선수들은 몸값을 조금 낮춰서라도 양키스에 가거나 남으려 한다. 선수가 양키스 브랜드를 사는 셈이다.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렸던 박찬호(39)의 은퇴 기자회견장에는 유니폼 13벌이 진열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가 속했던 팀들의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세로 줄무늬)도 있었다. 그걸 가리키며 박찬호는 “양키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상징적인 팀이다. 훌륭한 선수들을 만나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던 요기 베라를 볼 때마다 많은 질문을 했다”고 회상했다.

박찬호는 2010년 양키스에서 뛰었다. 27경기에 등판해 2승1패 평균자책점 5.60을 기록한 그는 시즌 중 방출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했다. 박찬호는 시즌 막판 2승을 추가해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124승)을 기록하고 미국을 떠났다.

박찬호가 양키스에서 받았던 연봉은 120만 달러였다. 다른 구단으로 갔다면 선발투수가 될 기회를 얻었을지 모른다. 최소한 연봉은 100만 달러 이상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간계투 역할이라도 양키스에서 하고자 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선수 말년에 한국인 최초의 양키맨이라는 이력 하나를 더 얻었다.

지난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뉴욕 양키스의 구단 가치를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고인 18억5000만 달러(약 2조원)라고 보도했다. 전체 평균보다 두 배 정도 높고, 스타인브레너가 39년 전 샀을 때보다 200배 가까이 올랐다. 다른 종목을 포함해도 양키스의 가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 2위를 다툰다.

특히 미국에서 양키스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1901년 창단한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통산 27회, 아메리칸리그 통산 40회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리그 최다 우승팀이며 다른 스포츠에서도 양키스만큼 많은 우승을 기록한 팀이 없다. 명문팀 보스턴 레드삭스나 연고지가 같은 뉴욕 메츠 등도 ‘양키스 라이벌’ 이상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 기록과 인기 모두에서 양키스를 이길 구단은 없다.

양키스의 특별함 그리고 유일함
부자 구단인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연봉 1위를 도맡아 한다. 우월한 성과를 내서 관중을 끌어모으고, 막대한 마케팅 수익과 방송 중계권료로 선수를 사들이는 데 재투자한다. 다른 구단들로부터 “돈으로 승리를 산다”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양키스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리그의 파이를 크게 키웠다. 시장 확장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 구단 역시 양키스다.

양키스는 최고의 선수를 사랑하고, 최고의 선수는 양키스를 사랑한다. 양키스를 질투한 몇몇 구단이 꽤 많은 돈을 풀기도 하지만 결코 양키스처럼 될 수 없다. 비싼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양키스는 유니폼 뒷면에 선수의 이름을 넣지 않고 등번호만 새긴다.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팀을 위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몸값이 높아도 양키스맨은 자신를 버리고 팀을 위해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2005년까지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자니 데이먼은 이듬해 양키스로 이적하며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말끔하게 밀었다. 털이 많아 ‘동굴맨’이라 불렸던 그도 양키스 조직문화를 따른 것이다. 가끔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르는 박찬호도 양키스 시절엔 얼굴이 말끔했다.

양키스는 그들의 원칙에 충실하고 항상 최고를 추구한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말도 듣지만 그게 양키스 브랜드를 만든 힘이다. 1920년대 베이브 루스 시대부터 양키스는 100년 가까이 정상에 있었다. 다른 어떤 스포츠팀이나 기업들이 누리지 못한 영광이다.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과 N과 Y를 겹쳐 만든 로고는 100년간 뉴욕과 뉴요커를 상징했다. 양키스가 곧 뉴욕이다. 10년째 양키스의 주장을 맡고 있는 데릭 지터는 ‘뉴욕의 연인’이라고도 불린다. 지터는 “양키스는 역사다. 매일 줄무늬 유니폼을 입을 때마다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특별한 것, 유일한 것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양키스는 충족시키고 있다.
스타인브레너처럼 양키스를 소유할 수 없다면, 지터나 또는 박찬호·이치로처럼 양키스맨이 되는 방법이 있다. 그것도 할 수 없다면 양키스팬이 된다. 모나리자를 갖지 못한 이들이 루브르박물관 입구에서 줄을 서듯, 양키스타디움에는 그래서 많은 팬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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