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과학은 “불변의 객관적 진리” vs “하나의 신화 체계”

과학전쟁의 주역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학자인 자크 데리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미국 물리학자인 앨런 소칼(왼쪽부터). [중앙포토·위키피디아-Sven Klinge]
21세기 들어 학문 분야 전반에 걸쳐 융합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학제 간 연구가 활발히 전개됨에 따라 과학전쟁(science wars)이 발발할 개연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 있다’ ⑫ 과학전쟁

원효대사의 좌상화 [중앙포토]
과학전쟁이란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 분야의 이론가들이 과학 지식은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며 사회문화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 것이 빌미가 되어 과학 지식의 본질을 놓고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 사이에 전쟁을 하듯 주고받는 논쟁을 가리킨다.

20세기 중반에 과학의 본질을 비판하기 시작한 집단은 과학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이다. 미국의 토머스 쿤과 오스트리아의 폴 파이어아벤트 같은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적 지식은 사회문화적 조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과학에 객관적 방법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쿤(1922~1996)은 1962년 펴낸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과학의 진보는 누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환을 통해 혁명적으로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한 시대의 과학자 사회가 채택한 가설·법칙·이론·개념을 통틀어 패러다임이라 명명했다.

따라서 과학에 관한 지식은 본질적으로 어느 한 집단의 공통된 속성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집단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는 쿤의 상대주의를 계기로 과학철학은 합리주의와 상대주의의 두 진영으로 나뉜다. 합리주의는 과학 이론의 상대적 장점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보편적 기준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상대주의는 그러한 기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주의는 과학 이론의 우월성을 판단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이나 공동체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 판단에 따라 진리 탐구의 목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
상대주의적 과학관 허점 찌른 소칼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극단적으로 강화한 인물은 파이어아벤트(1924~1994)다. 1975년 펴낸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에 따르면 과학은 특정한 도덕적·정치적·사회적 맥락에 위치한 사회적 제도이므로 과학이 보편적인 규칙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한 가지 있을 수 있는 방법론적 규칙이 제시돼야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도 무방하다(anything goes)’는 규칙이다. 과학 연구에 있어 일반적 원리나 일정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과학은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것이다.

파이어아벤트의 과학관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 예컨대 자크 데리다(1930~2004)는 과학 언어의 해체를 통해 객관성의 기준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과학을 하나의 신화 체계로 간주했다.

이와 같이 과학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가들은 과학을 신화 또는 사회적 구성물로 여기는 문화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과학은 불변의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합리주의에 도전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의 상대주의에 대해 반격을 시도한다. 이른바 과학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계기는 1994년 미국 생물학자인 폴 그로스와 수학자인 노먼 레빗(1943~2009)이 함께 펴낸 고등 미신(Higher Superstition)에서 과학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을 싸잡아 공격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학문적 좌익(academic left)과 그들의 과학과의 싸움’이다. 사회구성주의자, 포스트모던 과학자, 페미니스트, 급진적 환경론자들을 학문적 좌익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적대적 태도를 맹공했다.

고등 미신에서 비판받은 인사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1996년 봄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술지인 ‘소셜 텍스트(Social Text)’에서 한 호를 몽땅 이들의 반론으로 채우고 처음으로 ‘과학전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특별호 제목으로 삼았다. 잡지의 맨 끝에는 미국 물리학자인 앨런 소칼의 논문이 붙어 있었다. 소칼의 글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구성주의를 지지하는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소셜 테스트’ 발간 직후 뜻밖의 사건이 터진다. 소칼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논문은 날조된 것이라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기 위해 엉터리 논문을 기고했노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소셜 텍스트’ 측이 조작된 논문인 줄 모르고 자신들과 같은 상대주의적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재할 만큼 과학에 무지몽매한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싶었다는 해명이었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인 마틴 가드너(1914~2010)의 표현처럼 ‘소칼의 유쾌한 속임수(Sokal’s hilarious hoax)’는 서구 언론에 대서특필되 어 과학전쟁에 대해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97년 10월 소칼은 여세를 몰아 프랑스어로 집필한 지적 사기(Impostures Intellectuelles)를 펴내고 1998년 12월 유행하는 난센스(Fashionable Nonsense)라는 제목으로 영어판을 내놓았다. 영어판의 부제는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과학 남용’이다. 이 책은 데리다(철학)를 비롯해 질 들뢰즈(철학), 자크 라캉(심리학), 장 보드리야르(사회학), 줄리아 크리스테바(기호언어학), 뤼스 이리가레이(페미니즘), 펠릭스 가타리(심리분석학) 등 기라성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의 글쓰기를 문제삼았기 때문에 프랑스 지성계가 발칵 뒤집혔다. 소칼은 이들이 하찮은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의미도 모르는 과학 개념을 멋대로 남용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주장을 펼쳐 학문을 우롱하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문학을 이끌고 있는 당대의 핵심 이론가들을 통틀어 사기꾼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를테면 과학에서 나온 이론과 개념을 인문사회과학에 융합하면서 뻔뻔스럽게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공격한 셈이다.

인문학자·과학기술자 논쟁 치열해지길
소칼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의 글에서 과학의 개념과 용어가 남용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막연하게밖에 모르는 과학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자연과학에서 나온 개념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도입하면서 최소한의 개념적 근거나 경험적 근거도 밝히지 않는다.

·완전히 동떨어진 맥락에서 전문 용어를 뻔뻔스럽게 남발하면서 어설픈 학식을 드러낸다. 그 의도는 뻔하다. 과학에 무지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무엇
보다도 겁을 주려는 것이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그 덫에 빠져들고 있다.

·알고 보면 무의미한 구절과 문장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일부 저자는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면서 단어에만 외곬으로 빠져드는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저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능력에 비해 턱없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발언한다.

이처럼 소칼은 문화적 상대주의의 도전으로부터 과학의 객관성을 옹호하기 위해 골리앗과 싸움을 벌인 다윗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물들에게 돌멩이를 던진 것이다.

『지적 사기』 논쟁은 국내 학계로서는 강 건너 불일는지 모른다. 인문학자와 과학기술자가 상대방의 학문에 무관심한 풍토에서는 과학전쟁이 일어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가 어설프게 인문학과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거꾸로 인문학자가 과학자의 무지를 비판하는 이른바 ‘역(逆)과학전쟁’이 발발할 소지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컨실리언스(consilience)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공격이다.

컨실리언스는 ‘(추론의 결과 등의) 부합, 일치’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그런데 미국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 펴낸 컨실리언스에서 생물학을 중심으로 모든 학문을 통합하자는 주장을 펼침에 따라 컨실리언스는 윌슨 식의 학문 통합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은 통섭이다. 번역자가 만들었다는 용어인 통섭에는 원효 스님의 사상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일부 지식인은 윌슨 식의 지식 통합을 뜻하는 고유명사인 통섭을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남용하는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도 서슴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사물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여길 때 발생하는 오류를 범주 오류라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 사상에 조예가 깊은 시인으로 알려진 김지하가 통섭을 통렬하게 비판해 역과학전쟁에 불을 붙였다.

2008년 10월 인터넷 신문에 연재한 고정칼럼에서 김지하는 통섭이 원효 스님의 사상과 무관한 용어라고 주장했다. 2009년 4월 펴낸 『촛불, 횃불, 숯불』에도 그대로 수록된 이 칼럼에서 김지하는 먼저 윌슨 식의 통합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윌슨은 과학의 최첨단이 환원주의이고 그것은 곧 자연을 자연적 구성요소들로 쪼개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환원주의는 올바른 과학인가? 그것은 과연 개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유기체의 원리들을 더 일반적·근본적 차원의 법칙과 원리로 전개시키는 심층적 과제를 담당할 수 있는가?”

이어서 김지하는 원효가 저술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인용하면서 윌슨의 통합이론과 원효의 불교 사상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칼럼의 논지에 동의하건 안 하건 김지하가 번역자에게 자신이 제기한 쟁점에 대해 답변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적지 않을 줄로 안다. 왜냐하면 동양학에 정통한 문인과 윌슨의 제자라는 번역자의 논쟁으로 한국 지식인 사회가 한결 풍성해지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통섭이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관련 학계에서는 이 논쟁의 귀추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번역자 쪽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아쉽긴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역(逆)과학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인문학과 과학기술 양쪽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결실이 맺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7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 『이인식의 멋진 과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