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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의 속절없는 침묵이 버거울 때

2012년을 달군 키워드로 힐링과 멘붕이 꼽힌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 특히 앞날의 전망이 캄캄해서 구세대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불태우는 젊은 세대에게 힐링의 저작물이, 멘토의 강연이, 힐링을 표방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멘붕, 즉 멘털붕괴는 도처에서 일어났다. 정 여사의 반려견 브라우니는 묵묵부답의 소통부재를 드러내고 여고생 갸루상은 동문서답뿐이다. 멘붕이다. 아마도 가장 극심하게 멘붕에 빠진 사람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8%의 유권자들일 것이다. 선거 당일 투표 마감 직전까지 승리를 장담했던 진보층은 방송 출구조사 발표 자막을 보면서 망연해했다. ‘2030 세대에 대한 50대의 응징’으로 규정되는 대선 결과는 거대한 멘붕의 침묵을 불러일으켰다. 힐링은 숱한 언어를 생산해 내지만 멘붕은 속절없는 침묵을 가져온다.

[詩人의 음악 읽기] 르네 플레밍의 모차르트 오페라 아리아 ‘달콤한 휴식’

이즈음 부쩍 자주 듣게 된 음반이 있다. 리릭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위 사진)의 ‘Mozart Arias’. 모차르트의 여러 오페라 속에 여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들은 참말 사랑스럽고 서정적이다. 음반 속에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후궁탈출’ 등에 나오는 잘 알려진 아리아들이 담겨 있지만 특히 반복해서 듣는 곡이 있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 정확히는 연극 속에 노래가 병행되는 징슈필 장르인 차이데(Zaide)의 아리아 ‘달콤한 휴식(Ruhe sanft)’이 그것이다.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잠에 빠진 노예 청년을 향해 그를 연모하는 여인은 홀로 노래한다.

‘내 사랑스러운 연인, 주무세요. 그대의 행운이 깨울 때까지. 여기 제 초상화를 당신 곁에 놓고 갑니다. 보세요, 얼마나 상냥하게 당신께 미소 짓는지…’. 모차르트 생전에 이 작품 ‘차이데’는 발표된 적이 없다. 그의 사후에 아내 콘스탄체가 흩어진 악보를 발견해 발표한 것인데 배경 줄거리가 비슷한 ‘후궁탈출’의 습작품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터키 술탄의 애첩으로 살아가는 유럽 출신의 차이데. 그녀는 역시 유럽에서 잡혀온 노예 고마츠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겁 없는 야반도주. 하지만 탈출은 실패로 끝나고 이들의 도피행각을 도와준 술탄의 신하 알라짐이 선처를 호소하는데 술탄의 복수심과 상처 입은 자존심은 누그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이쯤에서 줄거리가 끝나버리는 터라 공연에 올려지지는 않지만 ‘내 사랑스러운 연인, 주무세요’로 시작하는 아리아는 무대에 꽤 자주 오르는 걸작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 사운드트랙에도 이 곡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르네 플레밍의 ‘Mozart Arias’ 음반.
이 곡을 부른 르네 플레밍은 우리네 식으로 표현하면 미국의 국민가수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식에 조수미가 초대되어 노래 부르듯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르네 플레밍이 축가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난곡이어도 ‘쉽게’ 부른다는 그녀. 생김새도 포근하고 목소리 톤 역시 곱고도 섬세하다. 성악가로서의 커리어 역시 승승장구 일로였을뿐더러 재즈나 팝 장르에 도전한 음악적 외도도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행운과 행복과 축복을 다 받고 사는 듯한 인물. 게다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용모라니!

이쯤 해서 털어놓아야겠다. 르네 플레밍처럼 사는 인생, 달콤한 휴식 같은 나날들, 사회주류들이 모여서 예절을 지키며 품위 있게 어울리는 파티장이며 고급스러운 술잔과 담소들. 상당한 재력과 무리 없는 처신으로 인한 좋은 평판. 그런 삶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인생길… 을 왜 나는 걸을 수 없을까. 호남 출신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고 세상에 한 맺힐 것도 별로 없는 나는 어째서 새누리당에 투표할 수 없을까. 어째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잇따른 자살과 고공 철탑 위에 올라가 몇 달째 농성 중인 노동자의 모습이 더 크게 보일까. 이념에 복무한 적도 윤리도덕에 투철한 것도 지사적 열정을 갖고 있는 것도 전혀 아니건만 왜 삶의 어두운 뒤안길만 눈에 밟힐까.

문득 지금 듣고 있는 모차르트가 온통 모순덩어리의 인간형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는 침울한 까불이였고 색정적이면서 숭고의 미학을 끝간 데 없이 추구했다. 주색잡기의 와중에도 프리메이슨 회원이었고 귀족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공연금지 처분을 받은 오페라가 숱했다. 에고, 그런데, 그렇지만 감히 모차르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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