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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리 특무조직, 통신망 장악해 재정·외교 손금 보듯

1946년 4월 1일, 충칭에서 군통 주재로 열린 다이리의 영결식. 다이리 사후 2개월간 전국 주요 도시에서 추도회가 열렸다. 국민당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1905년, 베이징의 오래된 사진관 주인이 유명 경극배우의 공연 모습을 촬영했다. 별 내용 없는 30분짜리였지만 중국 최초의 영화였다. 사진관 주인은 찻집[茶館]을 다니며 활동사진을 돌려댔다.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02>

1925년이 되자 상하이에만 150여 개의 영화사가 난립했다. 예쁘다는 소리 한두 번 들어본 여자애들이 배우가 되겠다며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후디에(胡蝶·호접)도 그중 하나였다. 순식간에 “연기는 완링위(阮玲玉·완영옥), 얼굴은 샤멍(夏夢·하몽) 같아야 한다”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후디에는 샤멍처럼 예쁘지 않았다. 연기력도 완링위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영화황후는 후디에 한 사람이었다. 여러 사람이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꼿꼿한 자세와 온화한 용모, 정확한 발음에 술 취한 듯한 목소리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다른 배우들보다 머리에 든 것도 많고 분수를 알았다. 사람들과 잡다한 인연을 맺지 않았다. 결혼도 평범한 상인과 했다.” 특무기관 군통(軍統)의 지휘자 다이리(戴笠·대립)만은 예외였다.

1935년 겨울,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영화계를 둘러보고 상하이에 도착한 전성기의 후디에.[사진 김명호]
다이리는 비밀경찰 대장다웠다. 모든 게 신비투성이였다. 중일전쟁 시절, 전시수도 충칭(重慶)에서 다이리와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저우언라이의 회고가 눈길을 끈다. “얼핏 보면 요인 암살이나 정적 제거와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정보의 귀재라는 별명도 어울리지 않았다. 항상 코를 훌쩍거리고, 손이 유난히 예쁜 것 외에는 특색이 없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쳤다. 그가 운영하던 특무조직은 전국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재정·외교업무를 제 손바닥 보듯이 파악하고 있었다.”

다이리는 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배출한 특수한 인물이었다. 중국 역사에 흔히 등장하는 살인광들과는 격이 달랐다. 유학(儒學)으로 무장된 경극 배우를 연상케 했다. 특무기관 안에 거대한 중국고전도서관을 짓고, 훈시할 때 고전을 자유자재로 인용했다. 여인에 대한 상상력도 풍부했다. 후디에가 출연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내 환상을 만족시킬 사람은 저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장제스가 일러준 대로 인연을 만들기 위해 기를 썼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후디에는 남편 판여우셩(潘有聲·반유성)과 홍콩 피란길에 올랐다. 피란민만 노리는 도둑들이 도처에 득실거렸다. 후디에도 보석상자 36개를 도둑맞았다. 군통이 도와주면 찾을 수 있다고 귀띔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친구 남편 중에 다이리와 군관학교 동기가 있었다.

동기생의 부탁을 받은 다이리는 쾌재를 불렀다. 도둑 조직에 침투시킨 요원들을 동원했다. 전 재산을 되찾은 후디에는 소문으로만 듣던 비밀경찰 대장을 찾아갔다.

다이리의 눈빛에 후디에는 넋을 잃었다. 손이 어찌나 예쁘던지, 내미는 손을 덜컥 잡고 놓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발, 여자는 남자의 손”을 눈여겨보던 시절이었다. 다이리가 홍콩에 올 때마다 후디에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갔다. 1939년, 딸아이가 태어났다.

1941년 12월 25일,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했다. 후디에는 전시수도 충칭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이리는 판여우셩에게 황금덩어리나 다름없는 특별통행증을 내줬다. 판여우셩은 외국과의 유일한 통로인 윈난(雲南)과 버마 국경을 멋대로 넘나들며 장사에 매달렸다. 위수지역이건 어디건 다이리가 발행한 통행증만 내밀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다이리와 후디에는 동거에 들어갔다.

전쟁이 끝나자 다이리는 후디에와 결혼을 서둘렀다. 1946년 3월 17일, 칭다오(靑島)에서 후디에의 이혼소식을 들은 다이리는 당일로 상하이행을 서둘렀다. 그날 따라 악천후였다. 난징 인근 공산당 점령구역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폭발과 추락을 놓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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