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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무명 작가가 이야기하는 ‘거절의 기술’

소설 거절술
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톨, 200쪽
1만원


누군가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희소식만 손꼽아 기다리는 예비작가들에게 “당신의 소설은 함량 미달”이라는 잔인한 말을 전해줘야 한다. 하지만 어디 쉬운 일일까. 이 원고를 써내느라 지새운 밤이 수없이 많을 터인데. 그래서 나왔다. 『소설 거절술』이다.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을 담았다.

 ‘당신의 작품은 흥미로우나, 우리 출판사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다’라고 말하는 매우 고전적인 거절술부터 ‘선생 자신을 돌보시고 어린애 같은 행동은 그만두라’고 확인사살 하는 잔인한 방법까지 다양하다. 수많은 부탁과 청탁이 오가는 인생사, 이 같은 ‘거절의 기술’은 굳이 소설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터다.

 짓궂게도 이 책을 쓴 사람은 편집자가 아니라 소설가다. 그는 캐나다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가다. 낮엔 일을 하고 밤에 시간을 쪼개 소설을 썼다. 여러 출판사에 투고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뿐이었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 ‘나는 그 동안 내가 받은 부끄러운 거절 편지를 모두 보관해두었고, 심지어 그 편지를 특징에 따라 분류도 해놓았다’고 썼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을 위한 다짐이나, 편집자를 위한 처세술처럼 포장돼 있지만 기실 한 권의 농담에 가깝다. 공문서부터 전보·추도문·매뉴얼·전화자동응답문· 희곡·하이쿠까지 기상천외한 거절 편지 형식이 그렇다. ‘우리 가여운 독자들은 밤늦도록 책을 읽으며 섹스를 원합니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대목에선 작정하고 이들의 상업주의를 조롱하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99번의 거절마저도 저자를 주눅들게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이 편지글을 책으로 펴내지 않았는가.

 책을 읽다 보니 한국의 편집자들이 궁금해졌다. 이 책을 편집한 이수은 편집자는 “한국은 ‘저자 중심’이라 편집자의 발언권이 적은 편”이라며 “작품을 탓하며 무례하게 거절하진 못한다”고 했다. ‘편집 방향과 맞지 않다’며 사과하는 것이 대부분이란다.

 그래서 한국 편집자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한 거절방법은 ‘의욕상실’ 편이다. 그 대목은 이렇다. ‘저는 완전히 질렸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싫증났어요. 32년 동안 재능 없는 작가들이 쓴 고약한 원고와 지루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말입니다. 저는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지면 위대한 작가들을 발굴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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