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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소득 재분배만으로 경제민주화 가능할까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왼쪽)와 마르크스 등 여러 사상가를 불러내며 세계사를 다시 썼다. [중앙포토]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477쪽, 2만6000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지적 공간에선 일본의 ‘지성’ 혹은 ‘사상’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필자가 97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번역하며 ‘일본의 지성’으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71)을 선택한 것은 그의 글에 ‘타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의 한국에 ‘타자’가 실종된 ‘우리’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80년대가 주변의 지적 상황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적었던 탓도 있었지만 냉전종식과 세계화라는 큰 물결이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면서 그런 상황은 꽤 오래 갔던 것 같다.

 그런데 ‘세계’라는 타자와 제대로 만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가라타니 고진의 내셔널리즘 비판은 긍정적으로 수용됐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는 이제 한국 문학비평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외국비평가로 자리 잡았다.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는 내셔널리즘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양심적인 일본’의 지식인으로, 그리고 칸트와 마르크스를 재해석하는 비평가로서 우리 앞에 처음 나타났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칸트나 마르크스에 대해 말하는 기존의 우회적 방식을 버리고 직접 그들과 나란히 앉아 ‘세계’에 관해 사고한다. 그리고 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를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그는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 기원전 까마득한 시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부터 월러스틴과 네그리까지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을 총동원해 그들의 사고를 수렴·비판하면서, ‘이 세계의 구조’를 이루는 자본과 국가와 네이션(국민·인민)과 종교의 관계에 관해 고찰한다.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생산양식’(토지·노동 등 생산수단과 이를 소유하는 사회관계)에 근거한 사고였고 ‘국가’의 능동성을 경시한 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생산양식 대신 ‘교환양식’을 고찰해야 세계시스템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강력한 국가주의적 전제국가로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설명한다. 그렇게 이 책은 두 가지 얼굴을 지녔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사상의 책이자 현실의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결정적 비판서이기도 하다.

 그의 대안은 ‘호수’(互酬·서로 주고 받음)의 교환양식이 이루어졌던 고대 씨족사회의 시스템을 회복하는 일이다. ‘국가=자본=네이션’을 지양하는 시스템이다. 그는 구체적 방법으로는 존 롤즈가 『정의론』에서 말한 ‘재분배’를 통한 평등 대신 ‘교환적 정의’의 실현을 제시한다. (376쪽) 진정한 사회주의란 분배적 정의, 즉 재분배에 의해 부의 격차를 줄이는 게 아니라 애당초 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331쪽).

 가라타니는 이렇게도 말한다. “국가와 국가간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있는 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고. “칸트의 영원평화는 일국만이 아닌 다수의 나라에서 교환적 정의가 실현됨으로써만 실현된다”고. (335쪽).

 그는 이런 평화가 실현된 사회로 ‘세계공화국’ 개념을 든다. 그건 각 국가들이 무기를 가진 채 주장하는 반전(反戰) 상태가 아니다. 국가간의 적대 자체가 사라진 세계다. 그는 이를 위해 모든 국가가 유엔에 군사주권을 증여할 것을 제창한다.

 물론 그의 결론에 바로 수긍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던 칸트의 모럴을 상기하는 일이 그런 이상의 실현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경계심의 제거이고, 이익을 포기하는 일일 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칸트와 마르크스의 사상을 보완한 가라타니의 자본론이자 국가론이자 정의론이다.

 그는 개인과 개인뿐 아니라 국가와 국가간의 정의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는 무엇인지, 자본과 국가와 네이션이 왜 그토록 강하게 결합돼 있는지, 일본은 왜 서양열강에 식민지화되지 않고 제국주의를 행사할 수 있었는지, 또 중국은 그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그림 그리듯 명료하게 가르쳐준다. 인간을 수단화하는 자본주의자들에게도, 국가에 의한 재분배만이 경제민주화를 이룰 것으로 생각하는 반자본주의자들에게도 이 책이 똑같이 유익해 보이는 이유다. 그가 말한 대로 환경파괴가 인간에 의한 환경착취고, 또 그게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에서 생긴다’(297쪽)는 지적에 공감한다면, 진보든 보수든 함께 국가와 자본의 지양에 나서지 않을 방도는 없다.

 이 책은 마이클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훨씬 깊고 넓게, 세계의 한가운데에 자신을 놓고 나의 문제를 세계의 문제로 사고하도록 도와준다. 대부분의 세계사 책이 ‘역사=팩트’를 나열하면서 그 팩트를 자신들의 현재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은 ‘역사의 역사’를 말하는 일로 역사의 진짜 구조를 보여준다.

 이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한때 제국으로 편입됐던 나라였고, 근대국민국가를 형성했던 식민지였고, 자유주의적 독재국가와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극단을 거쳐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라타니가 비판하는 관료제와 상비군을 유지 중인 나라다.

 그런 대한민국을 돌아본다면 경제민주화를 단순한 재분배가 아니라 교환양식의 정의로서 실천하는 가능성이 비로소 보이지 않을까. 페이지마다 담긴 빛나는 예지에는, 그 가능성을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일본어판을 수정·보완한 한국어판이 현재로서는 정본이라는 역자의 설명, 그리고 가라타니의 간결한 문체를 살리면서 꼼꼼한 주석을 붙인 번역 역시 이 책을 빛내고 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문학)

◆ 가라타니 고진(柄谷善男)=1941년생.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불린다. 역사·건축·철학 등 전방위 문예평론가다.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국가간 경제적 격차, 전쟁, 환경파괴 등을 연구해왔다. 현재 미 컬럼비아대 객원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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