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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해제된 英 기밀문건 내용이…충격

1982년 6월 영국을 국빈방문했던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왼쪽)이 영국을 떠나기 전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감사 연설을 하는 모습.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포클랜드 전쟁이 한창이던 1982년 5월 31일 밤 미국 백악관과 영국 다우닝가 총리 관저 사이의 핫라인이 울렸다. 구스그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스탠리항 결전을 앞두고 있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에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공격 중지를 제안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이 제3자가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평화협상안을 다 설명하기도 전에 대처가 단호하게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알래스카가 적에게 침공당했고, 탈환을 위해 국민이 나섰어요. 그런데 누군가 (평화협상)제안을 했다… 아마 당신도 이걸 받아들이진 않을 겁니다.”

 “아니, 물론 아니죠, 마거릿. 그런데 알래스카는 상황이 좀 다르고….”

 “대략 비슷하죠.”

 “아니, 마거릿, 아니에요. 이건 일부만 이야기한 거고, 내가 알기로는….”

 “론, 난 이 섬을 포기하지 않아요. 설마 내게 우리 젊은이들의 귀한 목숨을 잃은 뒤에 한가하게 철수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죠? 그들이 흘린 피를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이것이 민주주의고, 그 섬은 우리 영토입니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건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되는 거예요.”

 매섭게 쏘아붙이는 ‘마거릿’에게 변변하게 대꾸 한 번 못하고 말만 더듬던 ‘론’은 특유의 인간적 매력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다시 설득을 시작했다.

 “영국이 보여준 인상적인 군사작전은 외교적 선택을 좀 변화시킬 수도 있죠. 그건 그렇고, 영국군 젊은이들이 이뤄낸 성과를 축하합니다. 당신은 위험을 무릅썼고, 전 세계에 대가란 걸 똑똑히 보여줬어요.”

 “아뇨, 아직 덜 보여줬어요. 이제 절반 정도 왔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네요. 겨우 3분의 1 정도 온 것 같네요.”

 어르고 달래기에 모두 실패한 레이건은 결국 “내가 방해한 것 같다”며 설득을 포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처가 직면했던 최대의 리더십 시험대이자 ‘철의 여인’으로서 입지를 굳히게 해 줬던 포클랜드 전쟁을 둘러싼 외교 비화가 처음 소개됐다. 28일(현지시간) 영국 국가기록원이 30년 만에 기밀이 해제된 정부 문서 6000여 장을 공개하면서다.

 공개된 문건 중에는 대처가 레이건과의 통화 며칠 뒤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던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에게 보내려 했던 전문 초안도 있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당신도 군인이니 이 전쟁의 결과는 잘 알 것”이라고 시작한 대처는 “며칠 뒤면 우리 둘 다 전사자 명단을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슬픔은 이들이 자유와 정의를 지키려다 희생됐다는 사실 덕에 달랠 수 있겠지만, 당신 국민은 어떨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다”라며 항복을 압박했다.

 대처는 82년 4월 2일 시작돼 74일 만에 끝난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 됐지만, 사실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은 거의 갖지 못한 채 전쟁을 시작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한 문건에는 대처가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섬 침공을 “내 인생 최악의 순간”으로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전쟁이 끝난 뒤 열린 청문회에서도 대처는 “엄청난 병력을 투입하더라도 포클랜드섬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 말이 내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고 말했다. 또 “우리 함대가 해상으로 이동하는 사이 아르헨티나가 승기를 굳혔다면, 영국에 최악의 모욕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처는 청문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포클랜드섬 분쟁 해결을 위한 유엔 차원의 국제적 중재 노력이 성과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군부가 정면 공격이라는 위험을 무릅쓸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82년 6월 레이건의 영국 방문 때 양국이 신경전을 벌인 사실도 처음 알려졌다. 당시 미국 쪽은 레이건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말 타기에 적절한 복장 문의에서부터 스케줄 조정 요구까지 다양한 문제로 영국 실무자들과 마찰을 빚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당시는 냉전 시대로, 대처도 포클랜드 전쟁을 비롯해 많은 외교적 사안에서 레이건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때때로 그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대처와 외무장관의 전화통화 내용을 담은 한 문건에서 대처는 “레이건의 메시지가 너무 모호해 도무지 어젯밤 11시30분이란 늦은 시각에 읽을 가치를 못 느꼈다”며 그의 의사소통 방식을 비판했다. 또 다른 문건에서 대처는 “미국은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나의 분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영국 외무부는 레이건에 대해 “보기보다 훨씬 아는 것이 적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한편 올해 87세인 대처는 건강이 나빠진 뒤로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담낭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고, 성탄절도 병원에서 보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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