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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의 부인' 김영란 "남편 선거 비용은 …"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달 현직에서 물러났다.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18대 대선에 출마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첫 여성 대법관이었던 그는 진보 성향의 소수 의견을 많이 냈고 지금도 소수에 관심이 많다. 그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삼청동(三淸洞). 산과 물, 그리고 사람. 세 가지가 맑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다른 설도 많지만 가장 그럴듯한 작명이다. 김영란(56)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삼청동에 산다.

 지난달 26일 그는 권익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편 강지원(63)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18대 대통령 후보로 공식 등록한 날이었다.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터였다. 권익위원장은 반부패·청렴 정책과 행정심판을 책임지는 자리다. 남편이 대선에 출마했다고 해서 아내가 공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정무직은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함께하며 일을 해나가는 자리”라며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물러나는 게 당연했다”고 했다.

 지난 11일과 24일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대통령 선거(19일) 전과 후,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때마다 밖에선 훈풍 대신 칼날 같은 삭풍이 불었다. 칼날보다 더 매서운 권력이 삼청동에서 대이동을 준비한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은 삼청동 금융연수원 안에 들어선다. 김 전 위원장의 남편인 강 전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5만3303표를 얻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에 이어 3위였지만 득표율은 0.2%에 그쳤다.

트럭 세워놓고 노래 튼다고 표 안 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미소를 지으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 남편 선거운동은 안 했나.

 “남편이 정책선거만 하겠다고 했으니 제가 따로 할 게 없었다. 내게 정책집 한 묶음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오·탈자나 항목 순서 틀린 것만 바로잡아줬고 내용은 ‘터치’ 안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바빴던 줄 알더라. 아침에 밥이나 챙겨 먹여 보내고 그랬다.”

- 권익위원장 그만두기 전부터 도와줄 수 없다고 했나.

 “처음에 말릴 때 ‘절대 돕지 않을 거다’ 이런 식으로 말리긴 했다. 나중엔 계속 사표가 수리 안 되니까 도울 수도 없었고. 수리된 뒤엔 이미 선거 막바지였고 그때까지 안 도왔는데 이제 와서 돕기도 뭐했고…. 선거 사무실도 지나만 가봤지 들어가보진 않았다. 내가 굳이 가서 할 게 없다 싶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도 드렸어야 하는데 가기가 좀 그렇더라. 지방에서 친척들이 전화해서 ‘선거 운동 안 하느냐’고 묻곤 할 때도 ‘정책 선거 할 거다. 이미지 선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했다.”

- 이미지 선거와 정책 선거의 차이는 뭔가.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거다. 이미지는 다니면서 좋은 이미지 심어주는 것이고…. 생각해봐라. 전국에 트럭 세워놓고 노래 틀고 운동원을 동원하는 데만 수십억원 가까이 든다. 천문학적인 돈이다. 노래 틀어놓는다고 표를 주는, 우리 국민이 그런 수준인가. 그게 과연 필요한가. 법정 선거비용 한도가 최대 500억원이 넘는다. 정당에 주는 비용도 있다. 1000억원도 넘을 것 같다. 이런 선거를 계속할 것인가. 남편이 이번에 뭔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분명히 밑거름이 됐을 거다.”

 18대 대선 선거비용으로 박근혜 당선인은 480억원,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는 450억원을 지출했다. 법정 선거비용 한도 560억원엔 못 미쳤지만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썼던 34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득표율이 15%를 넘으면 공식 선거비용 전액을 국가가 보전해준다. 국민 세금으로 메워준다는 얘기다. 강 전 후보는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전혀 보전받지 못한다.

- 남편 출마로 금전적으로 얼마나 손해를 봤나.

 “금전적으로 꽤 손해가 있을 거라고 본다. 아직 정산은 못 해봤다. 몰랐는데 선거 포스터와 공보물 모두 후보자 개인 돈으로 하더라. 다른 후보처럼 (선거 공보를) 16쪽 인쇄하려면 10억원이 넘게 든다고 하더라. 남편은 한 쪽만 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한 페이지만 한다’ 이렇게 썼더라. 아이들에게 ‘너희 아빠의 피눈물 나는 돈이다’라고 했다.(웃음) 그래도 쓴 돈이 10억원은 안 넘을 것 같다.”

- 아깝지 않나.

 “(남편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배우는 것도 많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꼭 돈 들여서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바라는 것은 기왕 고생한 거니까 선거 풍토가 바뀌는 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사회가 변화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 권익위원장에서 사퇴한 것은 아쉬울 것 같다.

 “정책을 생산하는 데 있어 나로선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기가 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둬서 직원들한테 미안했다. 정도 많이 들었고.”

- 사퇴 의사를 밝히기 바로 몇 주 전 ‘김영란법’에 대한 간담회도 하지 않았나.

 “남편이 올해 6월부터 대선 출마 얘기를 하긴 했지만 설마 했다. 사람도 모으고 준비 작업도 해야 하지 않나. 그러질 않아 직전까지도 믿지 않았다. ‘설득하고 말리면 행동에 옮기지 않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내가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럼 내가 사표를 내겠다’고 얘기한 거다.”

검찰, 공수처 받아들이는 게 정답

 김 전 위원장이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처음으로 사의를 밝힌 때가 지난 9월 3일이다. 불과 보름가량 전인 8월 16일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입법예고 하겠다며 직접 기자회견을 했다. 대가가 있든 없든 금품을 받은 공직자를 엄벌하는 내용이다. ‘스폰서’와 ‘떡값’을 뿌리 뽑겠다며 만들었다. 이 법안의 별칭이 ‘김영란법’이다. 김 전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제정하고 추진해서 붙은 이름이다.

- 김영란법,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는 그럴 것으로 본다.”

- 지금 공직자윤리법도 있는데.

 “너무 추상적인 거다. 판사 시절 재판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 앞에 어마어마한 상자가 와 있었다. 그 다음날 뜯어보지도 않고 연락해서 돌려보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아나. (준 사람이) 상자를 뜯어서 내가 돈을 가져갔다고 우기면 어떻게 되나. 그러니까 하나하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법은 일종의 행동강령이다. 이제 이런 법안이 꼭 필요한 사회가 됐다.”

- 성추문 검사, 뇌물 검사 등 많은 사건이 있었다.

 “공무원 수가 많아졌고 업무도 다양해졌다. 공무원이 되는 경로도 다양해졌다. 성추문 검사, 뇌물 받은 검사 사건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 법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만 잘하면 윤리는 저절로 따라준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옛날엔 대가족과 유교, 농업공동체 사회에서 자라면서 윤리를 익혔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인들이 하나의 핵처럼 살고 있다. 개인의 자율은 중시해야 하지만 ‘여기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걸 철저히 훈련시켜야 한다. 거기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엄격한 제재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 대선 때 검찰을 겨냥한 여러 개혁안이 나왔다.

 “새누리당에서 얘기한 비리상설감시기구를 국회에 두고 상설 특검을 하겠다는 것, 합치면 그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다. 같은 얘기다. 이미 필요성을 논하는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기능과 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어떤 집단이 스스로 충실히 윤리적으로 행동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검찰을 수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경찰이 한다면 검찰이 수사 지휘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공수처를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쉬운 문제인 것 같다. 그쪽이 더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 재임 기간에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 순위는 계속 하락했다.

 “부패인식지수를 매기는 데 있어 한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비중이 크다. 정부 분야든 민간 분야든 통틀어 우리 기업인은 우리나라가 부패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여러 부문에서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참질 못한다. 순위가 낮은데 잘했다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를 청렴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데 이런 것들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순위가 확 올라갈 거다.(웃음)”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 가르치고 싶어

 화제를 바꿨다. 김 전 위원장은 사상 첫 여성 대법관으로 유명하다. 권익위원장을 맡기 전 2004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대법관 시절 진보 성향의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이홍훈·박시환·김지형·전수안 전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형제’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여전히 소수에 관심이 많다.

-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김 전 위원장도 판사로서 ‘첫 여성’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어떻게 대통령과 비교가 되겠나. 친구에게서 택시기사가 한 얘기라며 전해들은 말이 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게 신라시대 진성여왕 이래 1100여 년 만의 일이다. 이번에 못하면 다시 110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남성 대통령에겐 ‘잘하라’고 하지 1100년 얘긴 안 한다. 이것이 ‘첫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사람을 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게는 엄청나다. 대법관으로 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반을 차지하는 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모든 걸 내가 최초로 한 건 아니다. 다행히 선배들이 몇 분 계셔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여자들 시켜봤더니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 정말 열심히 했다. 어쨌든 소수자 그룹의 첫 무엇이 되면 앞으로 자기가 속한 그룹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 자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더라. 처신도 조심해야 하고. 그동안 (권력을) 누려왔던 다수자의 눈 밖에 나지도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의미도 무시할 수 없었다. 추상적인 얘긴데 90%가 남성인 사회에서 수긍과 순응까진 아니지만 방관했다고나 할까.”

-‘판사 김영란’이 아니라 ‘여자 판사’ 김영란이 아쉬웠다는 얘긴가.

 “맞다. 그게 좀 아쉬웠다. 사회에서 여자 판사가 아니라 그냥 판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게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니까. 변명하자면 동기 중에 여자는 나 혼자였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아쉬웠다.”

-‘첫 여성’이란 수식어는 언제 처음 달았나.

 “내가 부산에 간 최초의 여자 판사다. 1985년이다. 가자마자 단독 재판을 했다. ‘저 여자가 재판을 잘 해낼까’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첫 재판이 굉장히 힘들었다. 법원 직원들이 내 지시에 따르지 않더라. 나를 나쁘게 봐서가 아니라 해오던 관습대로 한 거였다. 그런데 6년 가까이 배석판사로 일해서 나름 경험이 많았다. ‘왜 시키는 대로 안 하느냐. 시킨 대로 하라’고 노골적으로 얘긴 안 했지만 ‘이러저러하게 진행하라’고 말해야 했다. 첫 재판을 끝내고 나니 내 지시를 따르기 시작했다. 부산 최초의 여자 판사로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고, 거기서 둘째를 출산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고향 바닷가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한 건 좋은 경험이었다. 광안리에서 살았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이후에도 그 힘들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5년이나 했다.

 “일 자체는 공부하는 거니까 재미있었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판사 생활을 견딘 것도 공부를 좋아해서다. 『논어』의 ‘학이(學而)’ 편에 ‘학즉불고(學則不固)’란 말이 있다. 배움이 경험의 협소한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 말이 참 좋더라. 공부는 끝없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볼 겨를 없이 잘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에 몰두해 왔다. 안타깝지만 그게 나에게 주어진 길인 것 같다.”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강의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무엇을 가르칠 생각인가.

 “쓸모없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생각이다.(웃음) 너무 쓸모가 많은 것만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가르쳐볼 거다. 단 한 명의 소수 의견일지라도 사회에 꼭 필요한 의견이 될 수 있다. 소수 의견과 다수 의견이 엇갈리는, 경계선이 있는 사건을 던져주고 스스로 길을 찾아보게 할 생각이다. 주어진 이론이나 판례를 습득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가 생각해보게 하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는데, 정말 자구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대법관이 계셨다. 대법관들이 등산을 갔는데 절에 가서 ‘세수(洗手)’라고 쓰여 있는 데서 얼굴을 씻게 됐다. 그때 동료 대법관이 이분에게 ‘손만 씻어야지 얼굴을 씻으면 어떡하느냐’며 놀렸다고 한다. 세수란 말이 얼굴도 씻는다는 뜻으로 변해 왔다. 그런 부분이 법률 해석에도 있을 수 있다. 시대정신이냐 자연법이냐의 논란처럼. 자연법이란 게 뭐냐. 불변하는 거냐. 이런 논쟁이 많이 있다. 이것을 끌어들이는 강의를 하고 싶다. 강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시행착오도 좀 겪을 것 같다.”

- 아직 학기 시작 전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아침 먹고 오전 10시쯤 정독도서관에 가서 이것저것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 가족 근황은.

 “큰아이는 외국에서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외국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는, 새로운 일을 구상 중이다. 둘째는 학교를 졸업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색하는 단계다. 얼마 전 시아버님 제사였다. 집안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우리네 가족 모두 무직 상태’라고 했다. 다들 깜짝 놀라면서 ‘정말 그러네’라고 하더라.(웃음)”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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