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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리

김동률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우리 모두는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 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의 도입 부분이다. 청춘의 한때, 나는 사랑을 하려면 ‘두 도시 이야기’의 주인공 시드니 커튼처럼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또 그렇게 하리라 맹세하고 살았다.



 소설의 배경인 두 도시는 파리와 런던.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진 프랑스에서는 쿠데타와 전쟁이 잇따르고 정치 체제가 수시로 바뀌는 등 극도로 어지러운 시기였다. 그 시대 유럽의 중심지인 두 도시에는 산업혁명의 부산물로 새로운 시민계층인 부르주아가 태어났지만 반대로 바닥 민중은 가난의 굴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빛과 어둠이 교차되던 시대. 소설의 배경은 광란의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였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 루시 마네트를 위해 주인공이 자진해 단두대에 서는 절정의 순애보를 그렸다.



디킨스는 이 작품 집필 당시, 흠모했던 여성 엘렌 터넌에 대한 자신의 절절한 애정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고 한다. 살아오며 스스로 그러한 사랑을 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아득하지만 나는 ‘두 도시 이야기’야말로 아가페적인 사랑의 결정판이라고 믿는 로맨티스트다. 그래서 매 학기 수강생들에게 사랑에 빠지기에 앞서 반드시 ‘두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강추한다.



 디킨스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매해 연말 이맘때 회자되는 스크루지 영감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가장 유명하지만 제목이 엉뚱하게 붙은 ‘위대한 유산’도 있고 산업화 과정의 아동 착취를 다룬 ‘올리버 트위스트’도 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교훈이 된다. 화장실 가기도 힘들고 하루 열두 시간 일해 봐야 1달러는커녕 겨우 30~40센트 받는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국가의 노동하는 어린이, 게다가 열 살만 되면 온몸이 굳어지는 산업병까지 등장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더욱 그렇다. 이처럼 평생을 빈자의 편에 선 그를 두고 세계인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자들의 영원한 친구(a sympathizer to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라고 묘비에 새기며 존경해 마지않았다.



 디킨스는 전 생애를 통해 부자들의 오만과 부의 남용에 대해 분노의 칼날을 들이댄다. 특히 ‘크리스마스 캐럴’의 배경은 극심한 빈부 갈등에 반목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 많은 부분 일치하고 있다. 작품의 암울한 서사 구조는 불편할 정도로 무거운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지만 그러나 종국에는 따뜻한 구원의 마음을 인류에게 안겨준다. 스크루지 영감의 뉘우침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주제를 따뜻하게 엮어내는 디킨스의 노련함에 셰익스피어를 오히려 능가하는 작가라며 뒤늦게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삶에 지친 고단한 이 땅의 어떤 아버지들은 어쩔 수 없이 제 스스로 인색한 스크루지 영감이 되기도 한다. 삶의 고단함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통해 디킨스가 던지는 교훈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빛바래가고 있는 것이다.



 올 한 해도 끝물이다. 거리의 캐럴도 급격히 사위어간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때는 성장을 의미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소중한 것을 하나둘 잃어버린다는 의미가 돼버렸다. 어젯밤 주고받은 얘기조차 가물가물하고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침침해진다. 다음 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실체적인 이유 때문에 호기롭게 대여섯 잔을 사양 않던 폭탄주는 한두 잔에 손사래를 친다.



산타클로스를 철석같이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지금의 순간, 누구도 허전하고 쓸쓸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그래도 앞날에 남았으리”라며 브라우닝은 생의 희망을 얘기했다. 그렇다.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리(The best is yet to be).



김동률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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