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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올해의 사자성어 ‘더러운 세상’ 바로 우리가 만든 것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학교수들이 올 한 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꼽았다. 세상이 온통 흐리고 더럽다는 의미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626명에게 물어 선정했다고 한다. 2위로 꼽힌 성어는 ‘대권재민(大權在民·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 3위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 총선과 대선이 연이은 가운데 주권자인 국민이 서로 믿지 못하고 탁류 속에서 헤맨 궤적이 고스란히 짚인다.



 ‘거세개탁’을 추천한 한신대 윤평중 교수가 교수신문에 기고한 ‘추천 이유’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보수와 진보가 총동원돼 격렬하게 진행된 총선과 대선 다툼의 결과 한국 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중도적 균형자와 깨어 있는 단독자의 목소리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지식인 사회의 과도한 정치 지향성은 한국 사회에서 이름깨나 있는 교수나 문인, 사회활동가와 지식인치고 특정 대선후보 진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은 이들을 씨를 말리다시피 하는 처참한 상황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개운하지 않다. 교수사회에 대해 윤 교수처럼 통렬한 자기반성을 내놓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어서다. ‘거세개탁’은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온 세상이 흐리지만 나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지만 나 홀로 깨어 있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에서 따왔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긴 쪽, 진 쪽을 막론하고 아직도 많은 폴리페서들은 ‘거세개탁’보다는 그 뒤의 ‘아독청(我獨淸)’이 자기에게 맞는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세상을 얼마나 흐려놓았는지를 성찰하기보다는 ‘나는 아직도 맑거든!’이라는 착각과 아집을 앞세운다. 염치도 체면도 없다. 만약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올해의 네 글자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염치실종’을 들겠다.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 반성할 일이라는 전제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몇 자 늘려보면 어떨까. 우선 ‘거세개탁 아역탁(我亦濁)’이 떠오른다. 세상이 모두 탁하고 나도 탁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세상 탓만 하는 느낌은 덜하지만 왠지 책임을 회피하는 인상이다. 지식인 사회의 막중한 책임이 덜 부각돼 있다. 한문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처지라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께 도움을 청했다. 박 이사장은 “굴원은 다산 정약용이 가장 존경하던 지식인”이라며 반가워했다. 그래서 받아 든 글귀가 ‘거세개탁 오역불면(吾亦不免)’. 세상이 온통 흐린 데 대해 나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다. 정치뿐 아니라 일상생활도 ‘오역불면’의 자세로 임하면 최소한 염치는 차리고 부끄러운 줄도 알겠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평화의 크리스마스. 남을 겨냥하던 증오의 칼을 다들 내려놓았으면 한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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