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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옷 기술자 자부심으로 40년 운영 … 기성복에 밀렸던 손님 다시 늘어

온양온천시장 제일의상실 이복순씨는 고객의 몸에 꼭 맞는 맞춤 옷을 제작해 주고 있다.




전통시장을 지키는 사람들 - 제일의상실 황의덕·이복순 부부

“요즘같이 유명브랜드의 기성복이 유행하기 전에는 멋쟁이들이 의상을 맞춰 입었어. 철따라 옷감을 달리해서 여름에는 모시, 겨울에는 비로드나 골덴 등으로 옷을 했지”



온양온천시장에서 제일의상실을 운영하는 황의덕(67)·이복순(62) 부부는 40년 동안 맞춤 전문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보통 기성복에는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거나 애매한 사람들, 즉 키는 큰데 마른 편이거나 배가 나오거나 비만이거나 팔이 길거나 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멋쟁이들도 맞춤옷을 찾고 있다.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과 멋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춤 옷은 입는 사람의 몸에 맞도록 재단하고 신체의 단점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편하고 옷이 몸에 붙어 스타일을 살리는 장점이 있다. 바느질도 꼼꼼해서 기성복보다 튼튼하다. 단점은 스피드를 요하는 요즘 의류와 달리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사이즈를 재고 원단을 재단하고 일차 가봉을 거쳐서 완성하기에 기성복에 비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맞춤옷의 묘미라고 황 사장은 말한다. 이들 부부는 양장 기술자로 결혼하기 전에 부인이 남편에게 의상재단을 의뢰하는 사업파트너였다. 사업상 알고 지내다 서로 호감을 느껴 연애 후 결혼했다. 결혼 후 도고에서 ‘대광양장점’이란 가게를 운영하다가 온양으로 이전, 온천시장 내에서 ‘제일의상실’ 문을 열었다. 도고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온양온천시장에서는 올해로 20년이다. 처음 의상실을 할 때는 투피스나 원피스, 블라우스 등이 주요 맞춤의상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가 호황이었다고 한다. 70년대는 맞춤이 주류를 이루었고 80년대는 교복시대였다. 단가나 이익은 맞춤양장에 비해 적지만 수량이 많고 현찰거래가 많아 수입이 짭짤했던 시기다. 그 이후는 교복도 대량생산의 기성복이 시장을 독점했고 유명브랜드나 패션아웃렛의 기성복에 밀려 의상실 경기가 침체로 빠져들어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도 가게를 운영했던 것은 소수이긴 하지만 맞춤옷을 찾는 고객과 기술자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맞춤옷의 원단은 주로 동대문에서 구입해오고 특수한 원단은 수공비가 일반원단에 비해 비싸다. 요즘같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모피의 수선과 고급 옷 리폼 의뢰가 늘어난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자는 신조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살아왔다”는 이들 부부는 “고객이 주문한 옷을 정성을 다해 완성 후 고객이 입어보고 만족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요즘 눈이 나빠져 오랫동안 바느질을 못한다면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시장 한구석 지금의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041 545 9423



글·사진=조명옥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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