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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대선 패배 8년 만에 국무장관 지명

오바마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곁에 있는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을 차기 국무장관에 지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8년 전 미국 대선의 패자였던 존 케리(69) 민주당 상원의원이 유일 패권국가의 외교수장인 국무장관으로 화려하게 돌아온다.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직접 성명을 발표하고 차기 국무장관에 상원 외교위원장인 케리 의원을 지명한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케리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 역할을 했다. 앞으로 미국 외교를 이끌 완벽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엔 당사자인 케리 지명자와 부인인 테레사 하인즈 케리, 조바이든 부통령이 함께했다.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얼마 전 발생한 뇌진탕을 치료 중이어서 불참했다.

케리 지명자가 상원 인준 절차를 통과하면 내년 1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 취임과 동시에 국무장관직을 맡게 된다. 그는 민주당뿐 아니라 야당인 공화당으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상원 인준은 무난할 전망이다. 케리 지명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대선 승리 이후 집권 2기 내각 각료로 지명한 첫 케이스다.

부시 대통령에게 2.5%p로 패배
케리의 지난 8년은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의 정치적 재기 방법이 ‘대권 재도전’만은 아니란 걸 보여준 기간이었다. 국정 조력자로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2004년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섰다가 당시 공화당의 조지W 부시 대통령에게 패배할 때만 해도 워싱턴 정가에선 차기 대권에 재도전할 거란 시각이 많았다. 득표율 2.5% 포인트 차의 석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원래 자리인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으로 돌아왔고, 외교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의정 활동에 주력했다. 2008년 대선이 다가오자 오바마·힐러리와 함께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지만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신 상원 외교위원장으로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으로 날아가 분쟁 해결에 일조했다. 2009년 아프가니스탄 부정선거 사태 땐 야당의 재검표 요구를 거부하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4박5일간 설득해 결선투표 실시를 이끌어냈다. 지난해엔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이 사살된 뒤 악화된 양국관계를 풀기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인연은 끈끈하다. 그는 대선 TV토론을 앞두곤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대역을 맡아 오바마의 토론 연습을 도왔다.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했던 존 케리 대선 후보
에 대한 찬조 연설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번 대선 직후 국무장관 후보 1순위로 측근인 수전라이스 유엔 주재 대사를 지목했다.

반전의 계기는 공화당 쪽에서 나왔다. 라이스대사가 9월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피습 사건을 두고 “테러가 아니다. 무슬림 모독 미국 영화에 분노한 현지인들의 우발적 범행”이라고 한 것을 문제 삼아 반발한 것이다. 공화당은 “테러 조직에 의한 범죄”라고 주장해 왔다.

오바마의 차선책이 케리 카드다. 공화당이 케리 지명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케리는 오랜 의정활동 기간에 공화당 의원들과 두루 친분과 신뢰를 쌓았다. 특히 85년 이래 내리 5선을 하며 미 상원의 외교 분야에서 초당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외교 철학도 탄력적이다. 그는 일방주의적 외교가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지만 필요할 땐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2004년 대선 출마 당시 북한 핵 문제에 대해 6자회담은 물론 북·미 양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협상 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반면에 북한의 핵 개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초 리비아 내전 사태 당시엔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미 국방부에 리비아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베트남전 참전… 전우 매케인과 우정 돈독
케리는 1960년대 후반 해군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그의 베트남전 참전 전우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달 초 케리를 ‘미스터 국무장관’이라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다. 케리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반전 운동가로 변신하며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미국 정치권에서 대선 패배를 딛고 변신에 성공한 이는 케리 지명자 말고도 여럿이다. 민주당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맞붙어 득표율에서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아깝게 패했다. 깨끗하게 승복을 선언한 뒤엔 환경운동에 전념해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대통령과의 치열한 당내 경선 갈등을 극복하고 오바마 집권 1기 국무장관 자리를 4년간 맡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화당의 대선 패배 후보인 매케인 역시 상원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월 대선에서 패배한 밋 롬니 전 공화당 후보는 샌디에이고의 별장에 머물며 향후 계획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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