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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세상에 신세 많이 진 사람… ‘빚’ 갚으며 살아야”

조용철 기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세상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죽습니다. 공평한 사회가 되려면 승자가 자신이 경쟁 과정에서 신세를 진 수많은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동건(74사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의 말이다. 18일 서울 정동 모금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1년 중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사랑의 열매’달기로 상징되는 연말 나눔 캠페인을 시작했고, 사랑의 온도탑 제막 등 한 해 중 모금활동이 가장 달아오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설치된 나눔 온도탑의 눈금은 21일 현재 49.3도(1316억3100만원)다. 목표액 2670억원을 모아 100도로 끌어올리려면 12월 마지막 열흘의 활동이 중요하다.

그는 2010년 12월, 임기 3년의 회장에 추대됐다. 이 회장은 30여 년간 회사(부방그룹)를 경영해 온 현역 기업가이기도 하다. 모금회장은 비상근· 무보수직이지만 거의 매일 출근해 회계부터 모금 현황까지 실무를 챙긴다. 그 덕분인지 지난해 모금액은 역대 최고치(2592억원)를 기록했다.

올해는 안팎 경제 사정이 좋진 않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지난해 캠페인 모금액보다 3% 늘려 잡았는데도 가이드라인이 되는 기업 모금액이 초반에 800억원이 들어와 스타트가 좋다”며 웃었다. 이어 “어려운 형편에도 15만 6000원이 든 돼지 저금통을 들고 오는 가족, 결혼 비용에서 아낀 100만원을 기부하는 신혼부부를 보면 올해도 100도를 훌쩍 넘길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모금은 다음달 31일까지 이어진다.

-취임 2주년을 맞이했는데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공정성, 투명성, 효율성이 생명인 기관인만큼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볼 수 있는 ‘기부정보확인시스템’을 만들었고, 지원이 편중되지 않도록 보건복지부 사회통합 관리망과 연계 시스템을 갖춘 것도 보람이 있었다. 모금단체는 기부하는 사람들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투명하게 관리하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또 모금에도 적극적인 사업가의 마인드가 필요한 시기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목표액을 달성해야만 이 엄동설한에 사회 구석구석 온기를 전할 수 있다. 단순히 ‘좋은 일’이라는 점만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본부와 17개 지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2년 동안 전국 지회를 세 번씩 돌았다. 중앙과 지회의 소통이 한결 원활해진 것 같다.”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활동이 눈에 띈다.
“무턱대고 모금 이야기를 하면 부담만 주고 역효과가 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제도가 있다는 것과, 모금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슬~슬~’ 해준다. 봉사의 보람, 매력을 은근히 얘기하는 편이다. 그렇게 계속 하니까 나 없을 때 살짝 기부하고 가는 지인들이 생겼다. 참 고마운 일이다.”

-사랑의 열매는 대표적인 이웃돕기 사업이지만 젊은 세대 참여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 같다.
“그래서 어려서부터의 나눔 교육이 중요하다. 모금회에선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어린이ㆍ청소년 나눔교육에 필요한 교사용 지도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생활 속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부 프로그램도 많이 생겼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온라인으로 즉석에서 소액기부가 가능한 행복주식 거래소도 운영하고 있다. 신용카드 포인트 기부, 동전 기부, 지하철 1회용 카드 기부 등 다양한 창구가 있으니 선택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기부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선친(고 이원갑 부방그룹 창업자)이 오랜 기간 로타리클럽 활동을 하셨다. 그걸 보면서 ‘나도 저런 활동을 꼭 해보고 싶다’ ‘나도 좀 참여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시골(경북 경주 양동마을)에서 자랐는데 우리가 어릴 때엔 할머니는 손님이 오면 꼭 차비하라고 행자(行資)를 챙겼다. 특히 사정이 어려운 일가친척이면 빌려서라도 넉넉하게 챙겨주는 것이다. 제사를 지낼 때도 가족보다는 오실 손님에게 먼저 대접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배려가 그 시절에 맞는 일종의 기부와 나눔이었다. 주변을 돌보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자의든 타의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다 보면 내가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리 시대의 화두인데,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맞는 기부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이 시대에 필요한 기부 문화는.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기부가 필요하다.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지는데 복지제도가 이를 다 채우진 못하니까, 사회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하다. 풍족한 시절이지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이웃이 여전히 많다. 이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보듬는 일이 최우선이다. 또 도움이 공정하게, 제일 절실한 곳에 먼저 갈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사회단체에서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일이다.”

-개인 기부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경우 개인 기부금이 전체 기부의 70% 정도 된다. 한국은 30% 선에 불과하다. 고액 연봉자가 많은 미국의 특징을 감안해도 한국이 많이 낮은 것이다. 개인 기부를 끌어 올려야 기부의 질을 높일 수 있다. 1회성, 단발성 기부가 많아 지속성이 약하다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유산 기부, 고액 기부가 미약한 편인데, 정기 기부자를 위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유산이나 현금 이외의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 기부를 장려할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가족, 주변에서 모금회 활동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사실 내가 어릴 때는 상당히 개구쟁이인 편이었다. 옛날엔 친구들한테 심한 장난도 많이 쳤기 때문에 요즘 이런 활동을 하는 날 보고 놀리는 친구들도 있다. (웃음) 철이 드니까 사회에 대한 배려를 하고 나눔에 앞장서야 한다는 점을 많이 느낀다. 이렇게 나서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지만, 일흔 넘은 나이에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축복인 것 같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어떤 큰 벼슬을 하는 것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나도 내 인생의 기부 플랜에 대해 생각을 많이하는데, 결정을 내리기 전 가족들과 의논을 많이 할 예정이다.”

-어떤 기부 철학을 갖고 있는지.
“시인 마종기가 친구다. 그의 아버님 되시는 마해송 선생의 글을 많이 접했다. 미리 써놓은 유명한 유서에 ‘신세 많이 지고 먼저 간다’는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경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위너 (winner)와 루저(loser)가 나뉘는 세상이다. 나는 어쨌든 위너라면 위너다. 세상에 신세를 많이 진 것이다. 그러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작은 성공이라도 이룰 수 있었다면, 그건 사회의 배려가 있어 가능한 것이다. 신세를 다 갚으려고 해도 다 못 갚고 죽는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부를 절실하게 여기고, 나로 인해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동참해야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ARS 기부전화
060-70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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