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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승복 문화, 선거 갈등 ‘힐링’ 효과 낳는다

문재인 후보가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시민캠프 해단식에 참석해 자원봉사자를 위로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 2017년 12월 20일 제19대 대통령선거일 저녁. 판세가 후보 A의 승리로 굳어질 무렵이다. 지지자들의 떠들썩한 환호성 사이로 A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상대 후보 B의 전화다.

“승리를 축하합니다. A후보, 아니, A대통령에게 행운을 빕니다.” 목소리는 담담하다. 당선인 A도 화답한다. TV엔 B의 승복 연설이 생방송된다. B는 “이제 더 이상 선거전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농담을 곁들여 가며 지지자들을 다독인다. 이 연설을 끝까지 경청한 A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승리연설에 나선다. B를 향해 “함께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되어 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선거전에선 이전투구를 벌였던 이들이지만 이젠 갈라진 민심을 모으기 위한 파트너로 거듭난다.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그려본 상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적어도 올해 대선 직후 상황을 놓고 보면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다. 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당선인에게 축하를 건넸고, 당선인은 손을 적극적으로 내밀었다.

2008년, 2000년 선거에서 각각 패했지만 인상적인 승복연설을 남긴 공화당의 존 매케인(왼쪽)과 민주당의 앨 고어. [중앙포토]
시작은 19일 밤 11시55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승복 연설이었다. 문 후보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의 실패가 아닙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국민들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명호(정치외교학) 동국대 교수는 “지금껏 우리나라에 없었던 진정한 승복 연설의 새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20일엔 박근혜 당선인이 움직였다. 오전엔 당사 기자회견에서 “저나 문 후보 모두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마음만은 같았다고 생각한다. 국정운영에서 이 마음을 늘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5시쯤 문 후보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치열하게 선거를 치렀지만 다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선택받고자 함이 아니었겠느냐”며 “앞으로 국민을 위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문 후보는 “기대가 크고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다음날 문 후보는 영등포 민주통합당사에서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저는 지금 받은 사랑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한국도 한층 더 세련돼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승패에 승복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문화 전반이 진화했다기보다는 문 후보 개인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문 후보가 패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건 맞지만 정치 경력이 짧은 데다 그의 개인적 성격을 반영했다고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링컨 “발가락 찧어 너무 아픈 아이의 마음”
작은 표 차의 패배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멋진 모습으로 연설까지 하는 건 물론 더 어렵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 대통령은 의원 시절 선거에 지고 나서 “발가락을 찧어서 너무 아픈데 울음을 터뜨리자니 창피하고 웃자니 너무 아픈 아이의 마음”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린든 존슨 전 미 대통령의 연설 담당 보좌관이었던 잭 발렌티는 “후보들은 누구나 패배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연장으로 손톱을 뽑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승복 연설은 어렵지만 중요하다. 훌륭한 승복 연설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힐링’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들(Almos t President)을 쓴 미국 작가 스콧 패리스는 패배 승복 연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회 양극화가 지금처럼 심각하고 국민이 분열돼 있을수록 사람들은 상대편의 말을 일절 믿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다. 이럴 때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의 승복 연설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훌륭한 승복 연설이 국민 통합을 위한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의 부제는 “선거엔 졌지만 나라를 바꾼 인물들”이다.

한국의 역대 대선에선 대개 그런 국민통합 노력과 거리가 멀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이후 민정 이양을 앞두고 치러진 1963년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박정희 후보에게 패배했다. 15만 표 차였다. 선거직후 윤보선은 “부정선거와 관권선거가 자행됐기 때문에 졌다”며 “내가 사실상 정신적 대통령”이란 말을 남겼다. 김형준 교수는 “선거에서 나타나는 분열을 통합하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세력으로 고착화시키고 전투 모드를 다지는 것이 과거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지금까지의 패배 인정 연설은 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가까웠다. 눈물 흘리면서 정계은퇴선언을 했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는 식이었고, 승리 후보에 대한 축하의 모습도 찾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예외적 경우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막판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40대 기수가 승리하면 신민당의 승리”라며 “김대중 후보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지지 유세를 펴겠다”고 밝혀 호평을 받았다. 박근혜 당선인이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고 “깨끗이 승복하겠습니다.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립시다”라고 외쳤던 연설은 명연설로 꼽힌다.

승복 연설에도 공식이 있다
미국 승복 연설엔 세월을 통해 다져진 공식이 있다. 판세가 굳어지면 패자가 승자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걸고 이후 지지자들 앞에서 승복 연설을 하는 것이다. 승복 연설은 대개 패배 인정→당선인 축하→통합을 위해 전진하자는 패턴을 갖춘다. 이런 공식의 시초는 18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자인 스티븐 더글러스 후보가 승자인 링컨 당선자에게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다. 이때만 해도 링컨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진 않았다. 패자가 승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한 건 1896년 승복 전보를 통해서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가 윌리엄 매킨리 당선인에게 전보를 쳐서 “미국인들의 뜻은 곧 법”이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후 1928년 선거에서 앨 스미스 후보가 허버트 당선인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한 뒤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했다. 이후 이 공식이 굳어져 미 대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승복 연설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조지 W부시와 맞붙었던 앨 고어 후보는 2000년 대선 때 5주간 승복 연설을 하지 않았다. 플로리다 주 개표 논란 문제로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선 “선거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이 바뀌었다. LA타임스는 “고어가 연방대법원의 결정에도 불복할 경우 정치적 치명상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USA투데이는 “고어가 법정 투쟁으로 플로리다주 선거에서 승리하면 대선 논란이 연장될 것이며, 국민들의 인내심이 분노로 변할 수 있다”는 사설을 썼다. 고어는 결국 “차기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할 것을 촉구한다. 도전할 땐 맹렬히 싸우지만 결과가 나오면 단결하고 화합하는 게 바로 미국”이란 골자의 승복 연설을 냈다. 지금도 회자되는 품격의 연설이다. 고어에 이어 부시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냈던 존 케리 후보 역시 “미국 선거에서 패자는 없다. 모든 후보는 다음날 아침 똑같은 미국인으로 눈을 뜨기 때문”이란 요지로 승복 연설을 했다.

패배도 잘하면 정치적 자산
훌륭한 패배 연설은 정치적 발판이 되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를 인정하면서 “나는 민주당원으로서, 상원의원으로서,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오바마 후보의 지지자로 이 자리에 섰다”고 연설해 환호를 받았고 국무장관으로 발탁됐다. 박명호 교수는 “의연하고 담담한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각인되면 정치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 아름다운 패배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44년 토머스 듀이 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선인에게 승복 전보를 보내는 걸 거부했다. 대신 라디오 인터뷰에서 패배를 시인했다. 듀이 후보의 전보를 계속 기다리던 루스벨트는 그 인터뷰를 듣곤 옆에 있던 보좌관에게 “나쁜 놈”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앞서 1916년 선거에서 패배한 찰스 에번스 휴스 후보는 2주일이나 우드로 윌슨 당선자의 애간장을 태웠다. 휴스 후보로부터 전보를 받은 윌슨 당선인은 “전보 용지가 너무 낡아서 벌레가 슬었지만 글씨는 알아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말을 남겼다.

명 승복 연설로 기억되는 고어와 케리 역시 에피소드가 있었다.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들』의 저자 패리스는 고어가 연설문에서 부시 당선인을 두고 “대통령이 된 것 (becoming)”이란 표현을 썼다는 데 주목했다. 플로리다 주 개표 논란을 염두에 두고 정정당당한 개표 결과 당선된 것(elected)이 아니란 점을 은연중에 꼬집었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2004년엔 존 케리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걸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진기자들을 불러놓고 기다렸지만 새벽 5시쯤이 돼서야 “케리 후보가 잠자리에 들었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케리 후보는 선거 다음날 오후에야 전화를 걸어 왔다. 톰 대슐 전상원의원은 뉴욕타임스(NYT)에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하지 않으면 꽁한 패배자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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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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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