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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소유보다 임대 가치… 일본식 주택 렌털사업 싹튼다

한 해를 마감하는 요즘 서울 삼성동 KT의 부동산 자회사 KT에스테이트 직원들은 새로운 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일본 다이와리빙과의 합작회사 KD리빙 설립 업무 때문이다. 일본·구미와는 달리 주택임대·관리 사업을 제대로 해 본 기업이 국내에 드물어 직원들이 기초부터 공부하고 있다. 서정욱 매니저는 “KT에스테이트는 새해부터 서울·부산 등 주요 대도시에 임대용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고, KD리빙은 이들 주택의 임대 및 관리를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대단위 아파트를 짓기에는 좁거나 상업시설 입지로 적당하지 않은 입지에 수익형 소형주택을 지어 임대·관리를 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새해 주택법이 개정되면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영세한 부동산 중개업소나 임대업체들과 이해가 충돌하는 곳은 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부동산 거품 붕괴 후 임대업 떠
우리관리도 최근 레오팔레스21과의 합작사인 ‘우리 레오PMC’ 출범을 계기로 대규모 임대주택의 관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최진희 브랜드개발팀장은 “입·퇴실 및 월세 관리, 하자보수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아파트단지 관리에서 쌓은 경험과 일본 선진 운영 시스템을 접목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계산이다. 이 회사는 서울 도곡동의 주상복합빌딩 ‘대림 아크로빌’을 관리하면서 자동 절전시스템을 도입해 전기료를 줄였다. 최동춘 생활관리지원실장은 “전력 수요에 따라 맞춤형 난방을 할 수 있는 ‘인버터’를 주민들에게 제안해 설치했다”며 “가구당 연간 비용이 60만원 정도 줄자 주민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새해는 국내 기업형 주택임대업의 원년이 될 것 같다. 한·일 합작사인 우리 레오PMC와 KD리빙이 사업을 개시하고 정치권과 정부의 다양한 제도적 지원책이 예고되고 있다. 주택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시세 하락으로 집값보다 은행빚이 커진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양산된 것이 좀 더 효율적인 기업형 주택 임대관리 업체의 출현 배경이다. 특히 우리은행이 시도한 ‘신탁 후 재임대(Trust and Lease back)’ 방식이 깡통주택 해결 방안으론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은행에도 주택 임대업을 허용해 부동산담보대출 부실화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내부의 스포츠센터(왼쪽)와 최첨단 난방제어시스템. 주택 임대관리 전문업체가 이 주상복합 건물의 관리를 맡고 있다. 강나현 기자
또 자산 대비 주택 비중이 70% 이상인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노후를 위해 임대 물건을 쏟아낼 경우 이를 대량, 전문적으로 소화해 줄 큰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인구 구조나 사회적 분위기 면에서 국내 주택시장은 매매보다 임대 위주로 재편되고 있기도 하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2인 가구나 노인 가구가 늘고 주택 소유 대신 이용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도 부동산 거품이 꺼진 뒤 건설업은 반 토막 났지만 주택 임대업은 되레 커졌다”고 말했다. 기업형 주택임대·관리 전문회사가 출현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 연구위원은 “미분양, 미임대 주택 문제를 고도화된 주택임대·관리 서비스가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이이재 새누리당 의원이 9월 대표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에는 ‘주택임대관리업’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그는 “전·월세대란 속에서 소형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주택건설 시장과 임대 수요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 주택건설 공급과의 김동현 사무관은 “임대주택 투자수요가 급증하지만 법적 근거가 미흡해 주택임대·관리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주택임대 사업은 우리 생활 주변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국세청에 따르면 달랑 집한 채 세 놓은 사람을 포함한 부동산 임대 사업자 수는 지난해 110만 명에 육박했다. 2007년에는 92만 명이었다. 특히 지난해 연매출(임대료) 4800만원 이하 간이과세자 중에 부동산임대사업자는 47만 명으로 1위(26.7%)를 차지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 부동산임대업이 음식·소매업을 누르고 생계형 비즈니스의 대표 주자가 된 셈이다. 그래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임대관리 기업이 등장하고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2002년부터 임대주택 1000여 가구를 관리하고 있는 라이프테크가 그런 회사다. 새해부터는 우리관리·KT에스테이트 등의 외국계 합작사를 비롯해 신영·대림I&S·한라개발 등도 주택 임대관리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임대업 논의는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문제와도 밀접하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집을 사들여 원주인에게 세를 놓는 등의 상생 방안이 그것이다. 금융권 가계 빚은 1000조원에 육박하고,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부실채권 비율도 6년 만에 최고치다. 하우스푸어가 적어도 수십만 가구인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도 돈을 굴릴 데가 마땅찮다. 금융권의 주택임대사업은 꽉 막힌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고 대출 상환에 허덕이는 가계, 그리고 대출 부실화가 걱정스러운 금융권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병덕 KB국민은행장도 한 언론 기고에서 금융권의 주택임대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하우스푸어 사태는 주택 매매가 잘되지 않는 것이 근본 문제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은행도 위험하다. 제도적으로 주택의 소유와 거주를 이원화하는 임대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미국이 금융위기 극복의 마지막 카드로 썼던 것처럼 은행의 임대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 “은행에 주택임대업 허용했으면”
우리은행이 지난달 의욕적으로 선보인 ‘신탁 후 재임대’ 상품은 신청자가 한 명에 불과할 정도로 반응이 아직은 미미하다. 김 소장은 “하우스푸어 실태가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 주택담보대출자 중에 우리은행에서 원리금과 이자를 연체한 1000여 가구에 신탁 후 재임대 제안을 했는데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대부분 제2금융권 등 다른 금융사에 빚이 있어 이 제도를 신청할 자격부터 되지 않았다. 다른 금융사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내야 하는데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신탁 후 재임대는 은행이 신탁등기로 소유권을 확보하고, 3~5년 동안 대출이자 대신 월세(연 4.15%)를 받는 제도다. 하우스푸어에게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 대출금보다 싼값에 처분되면서 다시 빚에 쪼들리는 상황보다 낫다. 주변 비슷한 집의 월세보다 낮은 임대료만 내면, 살던 집에 그대로 살면서 소유권을 되찾을 기회를 모색할 시간을 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서병호 연구위원은 “은행과 하우스푸어 모두 조금씩 양보하는 해법이다. 형평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공적 자금 지원책보다 좋다”고 말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자격 요건을 낮추는 등 제도를 보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가령 타 금융회사의 대출이 소액인 다중채무자는 대환대출을 해주는 식이다. 금융감독원도 은행권 전체에 신탁 후 재임대 프로그램을 해보도록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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