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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레의 꿈

12월 초 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과 함께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볼쇼이극장의 12월 정기공연 ‘스파르타쿠스’의 객원 주역으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고 왔다. 1773년 창단한 볼쇼이 발레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과 함께 20세기 러시아 발레 전성기를 이끈 세계적인 발레단이다. 이번 볼쇼이발레단의 초청 공연은 그동안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50년 역사를 가진 한국 발레가 240년의 역사를 가진 러시아 발레에 이제는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나 혼자가 아닌 커플을 초청했다는 것으로 그들이 한국 발레를 그만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 전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나의 춤이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등 볼쇼이 극장에서의 공연은 이전의 공연보다 훨씬 더 떨렸고 공연 당일 아침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작은 얼굴, 금발 머리에 신체조건이 뛰어난 러시아 무용수들 사이에서 그들보다 작은 키에 검은 머리를 가진 나는 약간의 열등감마저 느낄 정도였고, 러시아 관객들에겐 생소한 동양인 무용수였다.

하지만 나는 볼쇼이 무대를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예전부터 꿈꿔왔던 무용수의 삶을 위한 발전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생소한 나의 춤이 그들에게 감동을 주고 한국 발레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나의 모든 것을 무대에 쏟아냈다.

2011년 5월 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주 팔레르모 시에 있는 테아트로 디 마시모(teatro di massimo) 극장의 발레 공연 ‘신데렐라’의 객원 주역 무용수로 초청돼 한 달여 시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고 왔다. 마시모 극장은 오래된 역사를 지닌 극장으로 대부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전에도 로마 오페라발레단에 객원 주역으로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공연을 하고 왔지만 이탈리아 공연이 이전과 다른 점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가 아닌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를 불렀고, 심지어 오프닝 무대를 비롯한 네 번의 주역으로 공연을 한 것이었다.

자하로바나 비쉬뇨바 같은 대스타만 부르는 이탈리아에서 한국의 무용수를 초청하고, 게다가 오프닝을 맡긴다는 것만으로도 주위 무용수들의 의심스러워하는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고, 난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편한 마음으로 공연에 임할 수 있었기에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잿빛 소녀가 신데렐라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2년 12월 나와 이동훈은 세계 발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볼쇼이 무대에서 깐깐한 러시아 관객들의 텃세를 뒤로 하고 결국 수많은 커튼콜과 브라보를 받고 있었다.

2002년 내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한 프랑스 무용수는 내게 “한국에도 발레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 정도로 유럽인들은 한국 발레가 생소했고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자가 많이 나오고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한국인이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이러한 발전은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내 및 해외에서의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려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내 활동 무대가 유럽이 아닌 한국일 때 외국 유수의 무용단에 객원 주역으로 초청되는 것을 항상 꿈꿔왔고 이제 그것이 실현되고 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유럽이라는 이점이 있는 데다 커넥션이 좋기 때문에 초청받기 쉽고 객원 주역으로 공연을 할 기회가 많았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활동 무대에 있을 때 유럽이나 외국의 발레단이 나를 초청해 준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발레가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의 발레 선배들과 우리 세대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무용수가 외국 발레단의 초청을 받고 있고, 이것은 또 다른 도전과 꿈을 위한 시작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훌륭한 무용수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활발한 국내외 활동을 위한 뒷받침이 잘 되어준다면 세계적인 발레단과의 공연을 넘어서 외국 무용수들이 우리나라 발레단과 함께 공연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지영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역임했다. 1999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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