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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었다

1, 2년 전쯤이다. ‘박근혜의 측근’으로 불리던 C의원이 여기자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우리가 이명박에게 진 이유가 뭔지 아나. 바로 여성이어서다. 남자들이 박근혜가 여자라서 북한을 잘못 다룰 거라 생각한 건 그렇다 쳤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이상하게 여성들이 같은 여성을 안 좋아했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아본 여자가 뭐가 잘났느냐는 거다.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 맞더라.”

그의 말은 틀렸다. 적어도 2012년 대선에선 달라졌다. 물론 비밀투표니 정확한 성별득표율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방송3사의 출구조사는 성별 투표 성향을 보여줬다. 남성의 49.8%는 문재인, 49.1%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반면에 여성은 51.1%가 박근혜를 지지한 데 비해 문재인 지지는 47.9%에 그쳤다.

5년 만에 여성들이 갑자기 ‘자매애’를 발휘하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여성 대통령론’이 정말 먹힌 걸까. 대선 기간에 만난 여성들의 말에서 몇 가지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안양시에서 만난 최모(50)씨는 “원래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이번엔 박근혜를 찍겠다”고 했다. “여자도 큰일 할 때가 됐다” 는 거였다. 여성이란 이유로 뭔가를 박탈당 했던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는 듯했다. 성남시 분당의 주민 백모(33)씨는 “새누리당은 싫은데 그동안 여자라고 회사에서 차별받은 걸 생각하면 박근혜한테 마음이 간다”고 털어놨다. ‘유리 천장’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물론 대다수 2030 여성은 ‘독재자의 딸’이라며 박근혜를 불편해했다. 진보 여성계도 “부친 박정희의 후광으로 정치를 한 만큼 당선돼도 가부장적 질서를 깨는 게 아니라 그 수혜를 받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박근혜를 지지하면서도 여성을 무시하는 마초 남성들을 보면 그런 말을 딱히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분명한 건 여성은 자기보다 잘난 여성을 싫어한다는 유의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말은 없었다.

무엇보다 대선 직후 ‘여성 대통령 탄생’ 이란 글귀를 보고 아무 감흥이 없었다는 여성은 거의 보지 못했다. 여성 대통령이란 존재가 성(性)역할에 대한 사회 인식을 어느 정도는 바꿀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금융권과 문화계·언론계에선 벌써부터 여성 수장 후보군이 거론된다. 물론 각 기관들이 알아서 ‘코드 맞추기’를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 변화가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했지만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향후 5년은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말이 사라질 수 있는 기회다. 두 번째, 세번째 여성 대통령이 될 인재를 키우지 말란 법도 없다. 언론이 ‘남성 대통령’이란 말을 쓰지 않듯, 언젠가 여성 대통령이란 말도 사라질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다. 여성의 적은 남녀로 사람을 단정하는 성차별 구조와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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