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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아름다움 발레를 사랑하는 게 내가 타고난 재능”

1 ‘지젤’에서 점핑하는 모습. 사진 Gene Schiavone. 2 ‘지젤’ 2막에서 솔로로 나선 서희. Rosalie O’Connor. 3 ‘라 바야데르’의 한 장면 . 사진 Rosalie O’Connor.4 ‘라 바야데르’의 한 장면. 사진 Rosalie O’Connor. 5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로베르토 볼레와 2인무를 추고 있다. 사진 Gene Schiavone. 6 올해 ‘호두까기 인형’에서 클라라 역을 맡아 코리 스턴스와 2인무를 추고 있다. 사진 Gene Schiavone.
-이번 클라라 역은 어떻게 해석했나.
“간단하다.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것을 기억하면 거기에 답이 있다. 눈 내리는 장면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눈 속의 2인무(파드 뒤)는 어린 클라라와 호두 왕자의 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성인 클라라와 왕자의 춤이 동시에 진행된다. 한 무대에서 두 커플이 같은 춤을 추다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전율이 올 때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바로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내면에는 어린아이들의 유치함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적인 사랑이 여기에서 일어난다.”

-뉴욕 타임스가 극찬했다. 소감은(이 질문은 나중에 추가했다).
dancer of the year’가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오네긴은 2012년 타티아나로 데뷔한 작품인데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2013년에 다시 춤출 때는 작품에 대한 연구를 더 하려고 한다.”

7 ‘오네긴’에서 타티아나로 열연 중인 서희. 파트너는 데이비드 홀버그. 사진 Gene Schiavone.
-ABT에서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
“18세 이하 남녀 12명으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컴퍼니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연수단원으로 입단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정식단원이 된다. ABT에는 등급이 코르드 발레(군무 발레리나), 솔리스트, 주역 세 단계밖에 없다. 그래서 매 리허설과 공연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나고 보니 그 덕분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군무진일 때 이미 주역으로 캐스팅됐는데, 첫 주역 데뷔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2009년 3월 14일 생일 다음날이라 생생하게 기억한다. 안무가인 케네스 맥밀런의 오리지널 캐스트인 조지아나 파킨슨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지도받았다. 발레 작품 지도는 대물림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파킨슨 선생님께 직접 지도받을 수 있었던 것이 내겐 엄청난 행운이었다. 선생님은 몇 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와 나의 파트너 코리가 선생님께 사사한 마지막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8 분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서희. 사진 Gene Schiavone.
-지난 7월 수석 무용수가 되었을 때 심정은.
“미리 귀띔을 해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발레단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나중에 단장님이 ‘너를 놀래주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정말 놀랐다.”

-수석이 된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공연에 매진할 수 있도록 공연장에 개인 드레싱 룸이 생기고 팀이 만들어진다. 지휘자,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가 참여하는 음악팀, 개인 드레서를 위한 의상팀, 그리고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하는 팀 등이 꾸려져 공연에 관련된 모든 것을 도와준다. 개인 리허설 스케줄, 발레단 일정도 조절할 수 있고 원하는 발레 마스터와 리허설도 가능하다.”

뉴욕타임스 선정 ‘dancer of the year’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사들고 운동하러 간다. 마스터와 같이 할 때도 있지만 혼자 하기도 한다. 얼마 전 근육강화프로그램의 일종인 자이로토닉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오전 10시15분부터 발레 클래스가 시작되고, 보통 낮 12시부터 작품 리허설이 시작된다. 리허설이 있는 날은 저녁 7시쯤 일과가 끝나는데, 보통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너무 단조로운 삶 아닌가.
“여태까지는 승급하느라, 또 승급한 후에는 내 위치에 맞는 능력과 태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내 또래에 어울리는 평범한 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빈틈을 채워가며 살고 싶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 텐데 불편하진 않은가.
“발레리나들은 항상 눈에 띈다. 게다가 나는 맨해튼 링컨센터 근처에 살아서 알아보는 팬이 많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길거리에서는 나도 한 사람의 시민이다. 편안한 차림으로 신경 쓰지 않고 다닌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가 시간에는 뭘 하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자주 찾는다. 나도 서는 무대지만 극장에 들어갈 때마다 웅장하고 사람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에도 자주 간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너무 방대해서 특별전이 열릴 때나 간다.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며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 영감은 직접적일 때보다 추상적일 때가 많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한다고 들었는데.
“폭넓은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다. 그래야 다른 시선으로 무용을 바라볼 수 있다. 어떤 예술적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무용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미국 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한다. 최근의 다양한 예술동향을 살피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ABT 후원회 명예회장은 지난 30년간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맡았고 지금은 딸 캐럴라인 케네디 여사가 맡고 있다.
“후원회 모임은 주로 리허설 이후에 있어서 그동안 자주 참석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주역 승급 이후에는 반드시 참석하고 있다. 처음엔 일이라 생각했지만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후원자 대부분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분들이기에 만나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가끔 그 분들 집에 초대되기도 한다. 의상후원회, 신작 제작 후원회, 30세 이하 도너 후원회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매 순간 꽉 차게
-당신에게 발레란 무엇인가.
“내 직업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많다. 그 많은 아름다움 중에 발레가 잔인하면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느끼고 마음을 채우며 살고 싶다. 공연이 끝나면 매번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나를 매일매일 스튜디오로 가게 하는 것 같다.”

-어떤 타입의 파트너를 선호하는가.
“다양한 파트너와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 나보다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나보다 경험이 부족한 파트너와 공연할 때에는 내가 리드를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이끌 수 있는 여지를 늘 생각한다. 그러면 둘 사이에 아주 좋은 균형감이 생겨난다.”

-세계 최정상 스타들 사이에서 느낀 점은.
“늘 실험대에 올려져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춤을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그 분들이 유명한 데에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존경한다.”

-롤 모델은.
“줄리 켄트(Julie Kent)다. 두 아이의 엄마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무용수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얼마 전 줄리가 ‘댄스매거진 어워드’에서 ‘생애 업적상’을 받은 기념으로 갈라 공연을 했는데, 나는 줄리의 부탁으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leaves are fading’을 추었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줄리의 소감을 듣고 공감했다.”

-많은 사람이 당신의 재능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지만, 사실 나는 발레리나로서 많은 것을 타고났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어려움 없이 발레 동작을 수행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춤출 때마다 모든 스텝에서 영감과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재능인 것 같다.”

-한국의 어린 발레리나에게 조언해 준다면.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남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만의 방법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지만 과정을 중요시하고 매 순간을 꽉 차게 살아야 한다.”



ABT
미국 국무부의 후원을 받아 1939년 설립됐고, 56년 ABT로 이름을 바꿨다. 1970~90년대 최고 스타였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예술감독직을 맡으면서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현재 예술감독은 케빈 매킨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나탈리아 마카로바, 니나 아나니아쉬빌리 등 최고의 스타들이 ABT 무대에 섰다. 현재에는 줄리 켄트, 파로마 헤레나, 디아나 비시네바, 다니엘 심킨 등 최정상의 스타들이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5월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즌을 오픈하고 미국 전역 및 해외 순회공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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