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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간계에 능한 중국 특무기관… 명나라 때 절정

1929년 여름, 베이핑(北平)을 방문하고 수도 난징(南京)으로 귀경하는 도중 태산(泰山)에 들른 장제스(앞줄 앉은 사람)와 다이리(뒷줄 왼쪽 첫째) 일행. 다이리의 특무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진 김명호]
“지난 호에 국민당 특무총책 다이리(戴笠)의 죽음에 중공도 애도를 표했다는 대목이 실린 것을 봤다”며 “중국에도 특무기관이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01>

중국인들은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 터득했다. 먼 옛날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다루고,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났다. 천하대란이 벌어질 때마다, 용병(用兵) 못지않게 간첩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손자병법은 특무요원들의 임무를 “자신을 정비하기 위한 적정(敵情) 파악”과 “적진 내부의 단결을 와해시키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역대의 특무활동은 반간계(反間計)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간질에 능한 간첩을 최고로 쳤다.

미국인들은 군통 국장 다이리를 “장제스의 예리한 비수”라고 불렀다. 태평양전쟁 시절 OSS를 방문한 중국 전구(戰區)사령관 장제스를 맞이하는 다이리.
특무기관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특무는 원래 한시적인 조직이었다. 동한(25∼220년) 말기에 똑똑한 환관들이 정치무대에 등장하면서 변질됐다. 환관들은 황제의 이목(耳目)과 몽둥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했다. 문무백관을 감시하고 불평분자들을 동물처럼 다뤘다. 측근으로 자리 잡은 환관세력은 행정·군사계통과는 동떨어진 특무왕국을 건설했다. 이후 천년간, 삼국과 위진남북조, 수·당시대를 거치면서도 환관들의 특무기관 장악은 변하지 않았다.

특무기관의 권력은 명대(1368~1644년)에 절정에 달했다. 명 왕조는 살인의 시대였다. 금의위(錦衣衛), 동창(東廠), 서창(西廠), 내행창(內行廠)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특무기관들이 연달아 출현했다.

1382년,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신변 경호부대를 금의위로 개편했다. 1500여 명이 전국을 다니며 정보를 긁어모았다. 보고는 황제 한 사람에게만 했다. 주원장은 환관들을 멀리했다. 구성원 중에 환관은 한 사람도 없었다. 금의위는 16세기, 신종(神宗) 때에 이르러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주원장의 아들 영락제(永樂帝)는 어린 조카를 내치고 즉위했다. 그 과정에서 환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북경 동안문 밖, 지금의 베이징미술관 건너편 둥창후퉁(東廠胡同)에 동창을 설립하고 환관들에게 운영을 맡겼다. 동창의 권력은 금의위를 능가했다. 법률의 구속도 받지 않았다. 잡혀온 고관대작들은 환관들에게 특이한 신고식을 거쳤다고 한다. 성기를 집중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죽어갔다.

1477년, 헌종(憲宗)이 설립한 서창도 환관들이 주재했다. 금의위에서 선발된 인원이 주축이 된 서창은 동창보다 규모가 컸다고 전해진다. 금의위와 동창을 능가하는 대형 특무기관이었지만 워낙 불법을 일삼고 행패가 심하다 보니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내행창은 무종(武宗) 시절 대태감(大太監) 유근(劉瑾)이 설립한, 특이한 특무기관이었다. 금의위와 동창, 서창을 감시했다. 특무기관 중의 특무기관이라고들 불렀지만 유근이 능지처사 당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청(淸)대에는 특별한 특무기관이 없었다. 건륭제의 아버지인 옹정제 시절에 정보정치가 횡행했다고 하지만, 정식으로 명칭을 내건 기관은 없었다. 이민족이 중원을 지배하다 보니 민심의 이반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마오쩌둥과 장제스는 토종 중국인이었다.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저우언라이가 설립한 중공특과(中共特科)와 다이리의 군통(軍統)이 소련의 게페우나 독일의 SS를 본떴다고 하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내용은 중국의 전통적인 정보기관 동·서창이나 금의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46년, 다이리가 죽자 저우언라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이리 사후 국민당은 전쟁보다 정보와 선전에서 공산당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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