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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맞대는 대신 전화로 이어진 사랑 … 세계화가 바꾼 가족 풍경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의 위험요소를 지속적으로 들춰왔다. 급변하는 지구촌의 가족상을 포괄하는 단어로 ‘세계가족’을 제시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살 수밖에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이주가 보편화된 시대에서 상대편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세계가족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경계를 넘어선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중앙포토]

가족은 ‘한 지붕 공동체’를 의미했다. 같이 살고, 같이 밥 먹고, 같은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건 옛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시대의 화두인 다문화가정을 보자. 국경을 넘어 먼 거리에서 사랑을 주고 받는 이른바 ‘롱디’(장거리·long distanced) 연인도 부쩍 늘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68)과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이들을 ‘세계가족’이라 부른다. 신간 『장거리 사랑』(새물결)에서다. 국가·종교·인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울리히 벡을 e-메일로 만났다.

-세계가족, 개념이 흥미롭다. 전통적 가족상이 무너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가족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최근 한국의 예를 들어 보겠다.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한국에서는 국제결혼이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농촌 남성이 중국 교포, 베트남, 태국 여성과 결혼하고 있고, 일본·미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국제결혼도 증가하고 있다. 다른 국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아내는 1990년에 나온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서 급증하고 있는 이혼과 재혼에 따른 삶의 다양한 형태를 살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과거의 틀에 얽매여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과거의 틀로 보았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살고,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국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 사회가 기존의 가족 틀 안으로 들어오면서 가족의 테두리가 불분명해졌다. 초국적 기업, 초국적 국가(예를 들면 유럽연합)와 마찬가지로 초국적 가족이 나타난 것이다.”

 -세계가족을 쉽게 설명한다면.

 “세계가족 하면 사람들은 세계시민, 즉 코스모폴리탄적 가족 등을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오해다. 세계가족이란 지리적으로 멀리 흩어져 있는 가족을 말한다. 가족의 구성원들이 어디 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지구의가 필요한 상황 말이다. ”

 -지금까지 통용돼온 가족의 전제가 무너진 개념 아닌가.

 “사람들은 통상적인 가족관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면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새로운 장거리 사랑과 세계화 과정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 우리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는 형태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인터넷·휴대전화 등 지리적 거리를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다양한 의사소통 매체 발전과 관계가 깊다.”

 울리히 벡은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삶의 내부에서 세계와 맞닥뜨리고 있다”며 “세계가족은 여러 국가와 대륙에 걸쳐 먼 것과 가까운 것, 평등과 불평등이 새로운 방식으로 뒤섞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거리 사랑에 내포된 위험도 있을 것 같다.

  “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1899~1974)는 ‘사랑은 지리 때문에 죽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 즉 접촉을 잃어버리고 있다.”

 -기술발전, 경제불황 등 그 요인은 복합적이다.

 “장거리 사랑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동전의 양면이다. 직업 선택 때문에 한 곳에만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해외 여행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작 『위험사회』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등에서 사회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번에는 특히 ‘결혼 이주’와 ‘가사노동 여성의 이주’에 주목했다. 결혼 이주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지역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그는 “이주 여성들은 자유롭게 선택해 떠난다기보다는 상황의 강요, 즉 변화된 세계질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떠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이주여성 등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세계가족이 세계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세계가족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화에 익숙하지도, 세계에 열려 있지도 않다. 세계가족은 다문화 교류의 개척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근본주의적인 혈연중심주의로 인해 세계 폐쇄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다.”

 울리히 벡은 “세계가족은 전 지구적인 환경과 금융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충돌하는 여러 세계 간의 대립은 어떤 식으로든 협상의 대상이 돼야 한다. 거대한 정치적 무대에서의 타협은 힘겹지만 작은 세상, 즉 세계가족 테두리에서 협상이나 합의, 그리고 평화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장거리 사랑’은 오늘날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면.

 “사랑은 일종의 세속적 종교다. 자본주의 안에 있는 일종의 공산주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황홀한 것이다. 그러나 장거리 사랑은 이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사랑이다.”

 -당신 부부는 어떤가.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엘리자베트는 노르웨이 대학에, 나는 현재 런던정경대와 하버드를 오가며 강의한다. 장거리 사랑은 겉으로는 큰 자유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매일 전화로 안부 확인하기 등 엄격한 규칙을 요구한다.”

◆울리히 벡= 뮌헨대 사회학연구소 소장 겸 런던정경대 교수.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을 정립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개인화, 생태위기 등 현대사회 속에 숨겨진 위험요소를 들춰냈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포용하는 새로운 근대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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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