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숨가빴던 18대 대선 레이스

충남도 선거관리위원회가 18일 천안·아산 지역에 무인 비행선을 띄워 제18대 대통령 선거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천안=연합뉴스]
패자조차 역대 어떤 대선 승자보다 많은 표를 얻을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이처럼 완벽한 양자구도가 형성된 적은 없었다.

 ‘박근혜의 힘 앞에 정몽준·이재오·김문수 등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문재인은 손학규 등 민주당의 다른 주자들을 꺾고 ‘최강의 제3후보’였던 안철수(무소속)의 사퇴를 이끌어냈다. 2012년 대선 레이스는 보수는 박근혜(새누리당), 진보는 문재인(민주통합당)으로 수렴되는 과정이었다.

 대선 전초전은 4·11총선이었다. 당초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여당은 100석도 힘들다’던 총선에서 박근혜는 새누리당 과반(151석)을 달성해 냈다. 대선 전초전에서의 화려한 승리였다. 여세를 몰아 그는 “국민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을 심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7월 10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세론’ 앞에 경선은 무의미했다. 대선 경선 룰 협상 과정에서 이재오·정몽준이 요구한 국민경선을 박근혜는 “선수가 룰에 맞춰야 한다”고 일축했다. 이재오·정몽준이 출전을 보이콧한 채 김문수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일도 있다”고 도전장을 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는 84%를 득표했다. 종전 최고 기록은 97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77.5% 득표였다.

 그의 대세론에 유일하게 제동을 걸 후보로 꼽히던 이가 안철수였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국면에 등장한 그의 지지도는 늘 박근혜와 호각이었거나, 이상이었다.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는 잠재 주자가 돼 있었음에도 그는 “저에 대한 (국민) 지지의 본뜻을 파악하고 있다”(5월 30일 부산대 강연)면서 결심을 선뜻 밝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야권 한쪽에서 ‘문재인’이 커가고 있었다. 올 초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5% 선이던 지지율이 15%까지 올랐지만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대안론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던 후보였다. 출마 선언(6월 17일)에서 문재인은 ‘불비불명(不飛不鳴)’을 얘기했다. 날지도 울지도 않던 새가 한번 날면 멈추지 않고 높이 날아오른다는 뜻이다. 그 말대로 그는 사실상 민주통합당의 창업자인 손학규, 야권의 다크호스로 꼽히던 김두관을 넘었다.

 2007년에 이어 다시 한번 대선 도전에 나선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히트 슬로건만 남겼고, “전문대를 졸업한 최초의 마을 이장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던 김두관의 다짐은 물거품이 됐다.

 그 사이 안철수가 출사표를 던졌다. 9월 19일. 대선을 석 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대선 구도가 박근혜-안철수-문재인의 3파전으로 정리됐다.

 안철수는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버렸다”며 중도포기론을 일축했다. 애매모호하던 입지도 “새누리당의 확장을 반대한다”며 점차 야권으로 옮겨갔다.

 3파전이 확정된 뒤 박근혜 후보는 예기치 않게 과거와 싸워야 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9월 10일)라는 말이 발단이 됐다. 결국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으로 헌법 가치가 훼손됐다”(9월 24일)고 고개를 숙이면서 과거사 국면에서 벗어났다.

 안철수와 문재인은 11월 6일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던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을 시작했다. 단일화 이외엔 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는 현실론보다 강하게 야권을 움직이는 논리는 없었다. 둘은 백범기념관에서 마주 앉아 ‘아름다운 단일화’를 강조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던 문재인의 우려대로 협상은 난항이었다.

 여론 지지율이 문재인보다 다소 높았던 안철수는 “이길 수 있는 단일화”를 강조했다. 사실상 문재인의 양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100만 명이 뽑은 후보여서 나는 양보할 수 없다”고 이미 배수의 진을 쳐둔 터였다.

 정당은 무소속보다 응집력이 강했다. 문재인은 안철수의 약점인 ‘국정 운영 능력’을 파고들며 지지율을 잠식해 갔다. 싸움은 안철수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아름다운 단일화’는 없었지만 문재인의 지지자인 배우 김여진은 트위터에 “안철수가 안 나섰다면 애당초 질 싸움이었다”고 썼다. 박근혜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던 야권의 영토를 안철수가 등장해 크게 넓혔고, 문재인은 수혜자가 됐다는 얘기다.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자 세 불리기 경쟁이 시작됐다. 진보의 결집에 자극을 받은 보수 인사들이 박근혜 주변으로 모였다. 당내 비주류 정몽준·이재오는 물론 이회창·이인제·심대평이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다.

 문재인은 불출마 선언 이후 칩거하던 안철수를 다시 달개비(12월 6일)로 불러내 손을 잡았다. 통합진보당에서 분리된 진보정의당 심상정이 후보직을 사퇴하고 지지를 선언했다.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박근혜를 떨어뜨리러 나왔다”고 했던 통합진보당 이정희까지 대선을 3일 앞둔 16일 “정권교체에 기여하겠다”며 퇴진했다.

 이렇게 박근혜와 문재인은 각 진영의 대표 주자가 됐다. 19일 이 중 한 명이 18대 대선 드라마를 완결짓는다.


[관계기사]

▶ 5060세대 80%, 2030세대 65% 이상 투표땐…
▶ 홀로 투표 마친 박근혜, 시민들 "1번 화이팅" 외치자…
▶ 부인과 투표 마친 문재인, "밤새 잘 잤느냐" 질문에…
▶ 41년 만에 '과반 대통령' 나올까…최다득표 가능성도
▶ "박빙 승부" 대통령 당선자 오후 11시쯤 윤곽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