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세상읽기] 장밋빛 공약은 싹 잊어라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내일 아침이면 앞으로 5년간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제18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될 것이다. 당선자와 캠프는 대선 승리를 자축하며 환호작약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박빙의 승부였기에 승리의 기쁨은 한층 더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 승리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잠시일 뿐, 대통령 당선자는 곧바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인 국정운영 준비에 들어가야 할 터다. 내년 2월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준비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새 대통령 임기 5년의 성패가 좌우된다. 역대 대통령의 실패는 이 준비기간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오늘 선거에서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그 앞에 놓인 5년의 임기는 축복받은 꽃길이 아니라,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공산이 크다. 경제는 무너지고 있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국내의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국민의 선택으로 위임 받은 대통령의 권력은 개인적 영화를 누리라는 면류관이 아니라 이처럼 산적한 난제를 해결하라는 무거운 짐이다. 이 짐을 지고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용기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영광이 아니라 승자의 저주로 돌변할 것이다. 이는 당선자 본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불행이다.

  새 당선자가 준비기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거기간에 내놓은 온갖 장밋빛 공약을 싹 잊는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잊으라니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들로는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을 구하고 번영된 미래로 이끌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선거기간 중에 나온 공약들은 일부 지지자의 표심을 사는 데는 유용했을지 모르나 나라 전체를 이롭게 하지는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런 공약을 국민과의 약속이란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곧이곧대로 실천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니 대선 승리를 위해 내놓은 사탕발림 공약일랑 싹 잊고, 진정 이 나라를 통합과 번영으로 이끌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새로 그리란 얘기다.

 대선 과정에서 나온 공약이 갖는 문제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급한 상황에선 먼 미래의 번영을 약속하는 공약보다는 당장 눈앞의 표심을 사로잡을 달콤한 공약에 끌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성장을 극복할 근본적인 비전은 없이 특정 계층의 표심을 의식한 자잘한 퍼주기 공약들만 경쟁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두 후보 모두 민생과 일자리를 이야기하지만 성장과 번영의 청사진 없는 대증적 처방은 약효도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 거론된 복지·일자리 공약들을 뒷받침할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131조원짜리 ‘선택적 복지’를 내걸고, 문재인 후보는 192조원이 들어가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지만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쓰겠다는 돈은 확실한데 그 돈을 구할 길은 막막하니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앞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조만간 이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세수는 갈수록 더 줄어들 것이다. 공약을 지키려 해도 그걸 뒷받침할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대선 공약이 갖는 또 다른 문제는 특정 후보를 선택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그 후보의 모든 공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A후보가 5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할 때 그가 제시한 모든 공약을 국민의 51%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 이전 공약이다. 이는 충청권 표심을 사기 위한 공약임이 분명했고, 사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의견이 과반수를 넘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공약이 대통령 당선자 공약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추진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한반도 대운하’ 구상도 마찬가지였다. 대운하 공약은 결국 집권 후 반대여론에 밀려 철회되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다행히 그만한 대형 국책사업 공약은 없었지만, 지역개발을 약속한 공약은 여전히 많았다. 이런 공약들은 전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대로 실천했다간 지역 간 이해상충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한 번 약속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명제는 옳다. 그러나 그 약속이 국익 신장과 나라의 번영이라는 대통령직에 부여된 더 큰 약속과 부딪친다면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솔직히 재선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 단임 대통령에게 대선 과정에서 내뱉은 공약을 반드시 지키도록 강제할 방법도 없다. 일단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그 전에 한 약속은 모두 헌신짝 버리듯 깡그리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공약을 실현 가능성과 우선 순위에 따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이다. 재원 부족이든, 이해상충이든 공약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되면 솔직하게 국민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된다. 국민들도 대선 공약이 가지는 문제점과 한계를 인식하고 100% 공약 실천에 대한 기대는 접을 필요가 있다.

 이왕 대선 공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면, 대선에서 패한 상대후보의 공약 가운데 일반 국민의 호응이 큰 공약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기를 권한다. 상대 후보를 지지한 절반의 유권자도 대통령이 품어야 할 이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