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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00>다이리, 명나라 동,서창 무색케 한 군통 만들다



알다가도 모를 게 세월이다. 천하가 다 알던 일을 묻어버리는가 하면, 감쪽같았던 일도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한다.

전 총통대리 리쭝런(李宗仁·이종인)과 결혼한 후여우쑹(胡友宋·호우송)의 생모가 후디에(胡蝶·호접)인지는 진작 밝혀졌다. 생부가 누구인지는 수십 년간 미궁이었다.

2008년 11월, 후여우쑹이 산둥(山東)의 암자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쭝런을 소재로 한 연속극이 인기를 끌자 호기심 많기로 세계 제일인 중국인들이 들썩거렸다. 후여우쑹의 생부에 관한 추측이 난무했다. 후디에의 남편은 부인 덕에 중국영화사에 이름을 올린 평범한 상인이다 보니 얘깃거리가 못 됐다.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을 필두로 온갖 명인들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다이리(戴笠·대립)가 등장하자 다들 뒤켠으로 밀렸다.

한동안 중국인들에게 다이리는 이름만 있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유령(幽靈)과 같은 존재였다. 태평양전쟁 시절, 중·미 특종기술합작소(中美特種技術合作所)에 근무하던 미국 정보기관원들은 다이리를 나치 독일의 빌헬름 카나리스나 하인리히 히믈러에 비유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중국인들은 콧방귀를 날렸다. “비교할 걸 해야지, 독일의 첩보부대장이나 게슈타포 대장 따위는 다이리에 비하면 어린애다. 동창(東廠), 서창(西廠)도 다이리의 군통(軍統·국민당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에 비하면 동네 파출소였다.” 동·서 양창은 명(明)나라 시절 내시들이 운영하던, 악명 높은 특무기관이었다. 일단 들어갔다 하는 날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살아서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황포군관학교 동기생 중 한 사람은 다이리를 괴물이라고 단정한 적이 있다. “흔히들 다이리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나는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일에만 취해 있었다. 뼈를 깎는 고통도 금세 까먹고,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거나 원망하는 법이 없었다. 40만에 육박하는 비밀경찰을 한손에 장악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었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표가 나지 않았다.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재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게 괴물이 아니라면 뭐가 괴물이냐.”

1946년 3월 19일 새벽, 다이리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자 거국적인 추도회가 열렸다. 생전의 적이었던 중공도 “항일전쟁 기간 특수공작에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며 애도를 표했다. 훗날 저우언라이의 평가도 인색하지 않았다. “다이리가 사망하는 바람에 공산혁명은 10년을 앞당길 수 있었다.”

1928년, 영화학원을 졸업한 후디에가 영화계에 등장할 무렵, 다이리도 혼자 정보활동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장제스의 승용차가 위병소를 통과할 때마다 달려가 서류 봉투를 전달했다. 다이리의 정보는 정확했다. 장제스는 날이 갈수록 혀를 내둘렀다. 위병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하루는 다이리에게 취미를 물었다. “없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게 있을 거 아니냐. 나도 한때는 사창가 출입을 즐겼다.” “영화를 가끔 봅니다. 매화가 피면 꽃구경도 갑니다.” 장제스는 극장 갈 때 쓰라며 돈을 쥐여줬다.

며칠 후 장제스는 다이리를 호출했다. “영화를 봤느냐.” “백운탑(白雲塔)을 봤습니다.” “무슨 내용이냐.” “매일 봤지만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배우에게 홀렸구나. 이름이 뭐냐.” 다이리는 홍당무가 됐다. “후디에라는 신인배우입니다.”

그날 밤 다이리는 장제스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맘에 들면 인연을 만들어라. 딸이 태어나면 매화를 안겨줘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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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