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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대통령이냐, President냐

남윤호
정치부장
대통령(大統領). 한자대로 풀면 ‘백성을 다스리는 최고 우두머리’다. 왠지 전제군주 냄새가 풍기지 않나. 영어 President는 다르다. 어원을 보면 ‘다른 이보다 앞(pre)에 앉는(sidere) 사람’이란 뜻이다. 사회를 보거나,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다.

 이게 나라의 최고권력자를 가리키게 된 건 1787년 미국에서다. 당시 헌법제정회의 산하 세부검토위원회가 미합중국 행정수반을 President라 했다. 처음엔 앞에 ‘전하’라는 His Highness를 붙이려 했으나 하원의 반대로 Mr. President가 됐다.

 이를 대통령으로 옮긴 건 19세기 일본인들이다. 쇼군이 지배하는 에도시대 말기 일본엔 선거로 뽑힌 국가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처음엔 수령, 감독, 두목, 두령, 동량(棟梁) 등으로 번역됐다. 수괴(首魁)라는 말도 쓰였다. 그러다 통령이란 말로 점점 좁혀졌다. 통령이란 원래 부유층 자제 출신의 무사들을 통솔하는 관직이었다. 여기에 큰 나라 미국을 예우한다며 큰 大자를 붙였다. 이게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한 건 1853년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 번역본이다. 우리의 경우 임시정부가 이를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굳어졌다. 19세기 일본의 시대배경에서 나온 말을 우리가 21세기에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국에선 President를 국군(國君), 통령 또는 영어 발음을 따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라 했다. 우두머리 伯, 다스릴 理, 옥새 璽, 그리고 임금의 덕을 가리키는 天德을 썼으니 민주국가의 지도자보다는 제왕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지금은 중국·대만에선 총통이라 한다.

 이처럼 대통령에는 신분·지위, President엔 직책·역할의 뉘앙스가 강하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이라 하는데 말뜻으론 대통령이나 제왕이나 다를 바 없다. 실제 우리 대통령에겐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돼 있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공직자는 물론 공직자의 입김이 미치는 부문들이 다 구석구석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가치의 배분이 확확 달라진다. 승자독식, 패자전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 자리를 놓고 나라가 두 쪽 나 싸움박질이다. 여기저기서 연일 아무개 지지 선언을 하며 편을 가른다. 권력을 중심으로 사회 각층이 밀려들면서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모습이다. 50여 년 전 미국의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이 말한 ‘소용돌이의 정치’ 그대로다.

 흑색선전과 네거티브도 여전하다. 여야 구분이 없다. 네거티브를 정당방위로 인식하고 있으니 뜯어말리기도 어렵다. 더 우스운 건 갑자기 혼자 깨끗한 척하는 거다. “네거티브에 전면전을 선언한다” 또는 “끝까지 네거티브 하지 않고 정정당당한 선거를 하겠다”는 말이 그렇다. 서로 다 네거티브 공격을 해놓고 이제 와서 입을 싹 씻고 피해자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후보 본인 입으로 직접 하지 않았으면 안 한 건가. 나만 깨끗한 척하는 것, 이 역시 네거티브다.

 세력조합도 가관이다. 여당에선 검사·대법관 출신의 안대희와 댓글 조작 논란을 부른 ‘십알단’이 한 편이다. 야권에선 새 정치를 한다던 안철수와 네거티브 공장이라 할 만한 ‘나꼼수’, 여기에 종북그룹까지 같은 편이다. 이런 모순, 어떻게 봐야 하나. 권력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살을 섞는다는 유연한 실용주의일까. 사람 사는 데 상수도·하수도 다 필요하니 문제 삼을 필요도 없는 걸까. 큰 자리를 두고 대전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이 같은 자신의 이율배반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이틀만 지나면 선거다. 지금으로선 어느 한편의 압승이나 완패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겨도 간신히 이기고, 져도 아슬아슬하게 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긴 쪽은 처음부터 몸조심해야 한다. 당선인은 대통령보다 President라는 의식을 갖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 겨우 이겨 놓고 세상을 다 손아귀에 넣은 듯 나대면 진 쪽이 가만있지 않는다. 이긴 쪽에겐 대통령이겠지만, 진 쪽은 19세기 일본인처럼 두령이나 수괴로 여길 것이다. 그럴 경우 자칫 탄핵이나 촛불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대통령이냐 President냐, 이긴 쪽 하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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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