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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77%가 A등급 ‘신용 못할’ 신용등급

9월 27일 한국기업평가는 웅진홀딩스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D’로 강등했다. 웅진홀딩스가 전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하루 만에 평가가 ‘채무상환능력 높음’에서 ‘채무불이행’으로 바뀐 것이다. 올해 6월까지 웅진홀딩스는 ‘A-’ 등급을 달고 세 차례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이후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들어간 고려개발·대한해운·삼환기업 등도 ‘투자적격’ 신용등급을 유지하다 갑작스레 부실사태를 맞았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회사채 신용등급 ‘A’를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신용등급을 내리진 않고 올리기만 하는 관행이 여전한 데다, 재무제표만 보는 사후적인 평가에 그치다 보니 회사채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의 회사채 등급을 보유한 370개 기업 가운데 304곳이 A등급 이상에 분포해 있다. 전체 평가기업의 82%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도 A등급 이상의 비중이 각각 79%·75%로 별반 다르지 않다. 투자적격 등급인 ‘BBB’급까지 포함하면 이 비중은 3개사 평균 90%에 달한다. 신평사가 회사채 열 중 아홉에 대해서는 투자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요즘처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는 상황에서 신용등급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과 비교하면 이들 3개 신평사의 투자적격 등급 비중은 불과 3년 새 7~10%포인트 늘어난 반면, 투자부적격 등급(BB 이하)은 그만큼 감소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0년만 해도 27.2%에 불과했던 A등급 이상 회사채의 비중은 지난해 77.3%로 거의 3배로 커졌다.

 그렇다고 기업의 재무구조가 나아진 것도 아니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A등급 기업 부채비율은 2003년(3개년 평균) 124.3%에서 2011년 169.5%로 되레 증가했다. 신한금융투자 강성부 채권분석팀장은 “신평사가 금융위기 때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의 신용등급 하향에 인색했던 탓”이라며 “반면 ‘BBB+’에서 ‘A-’로 상향된 기업은 많았는데, 이들 기업이 A등급 기업 전체의 평균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신용등급 인플레가 심해지면서 신용등급의 변별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같은 ‘A-’ 등급이라 하더라도 기업별 회사채(3년물 기준) 금리 차이가 최대 5.5%포인트나 벌어졌다. 금리가 연 3% 중반에 거래되는 회사채가 있는 반면 연 9%가 넘는 회사채도 나왔다. 금리만 놓고 보면 신용등급을 내려야 마땅하지만 신평사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다 보니 이젠 A등급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해도 이를 사려는 기관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A등급이 남발되면 진정한 A등급 회사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정보가 부족한 일반 투자자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신용등급 인플레는 신평사 수익의 대부분이 신용등급 평가를 의뢰하는 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다. 기업이 신평사를 택해 신용등급을 받는 구조라 기업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신용등급을 나쁘게 줬다가 해당 기업이 거래를 중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을 어느 정도 신경 쓰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최근 5년간 투자적격 등급의 부도율은 0.1% 정도로 신용등급의 정확성은 상당히 높다”고 해명했다.

 금융당국은 웅진 사태 이후 위축된 회사채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선 기업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는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신평사를 사전에 접촉해 유리한 신용등급을 주는 곳을 고르는 ‘신용등급 쇼핑’을 금지할 계획”이라며 “이와 함께 회사채 신용평가 정보를 공시토록 하고, 기업이 관련 자료를 제출할 때는 대표이사가 직접 확인서를 내도록 해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업신용등급

신용평가사가 국채·회사채 등을 갚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평가해 등급화한 것이다. 보통 ‘BBB’ 이상을 부도 가능성이 낮은 ‘투자적격 등급’, ‘BB’ 이하를 부도 가능성이 높은 ‘투자부적격 등급’ ‘투기 등급’으로 분류한다. 한국에서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신용평가사 중 2곳을 지정해 신용등급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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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