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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상한다, 하늘 가운데로 땅을 옮기는 것을 …

시리아니는 10여년 전부터 초고층 빌딩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변화하는 주거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연·이웃과의 소통을 확보할 것인가가 건축가들의 숙제”라고 말했다. [권혁재 전문기자]

대도시마다 초고층 아파트가 하늘을 찌를듯 올라간다. 5층, 10층짜리 아파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도시 속의 섬’과 같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는 주민들은 서로 마주칠 일이 없고 이웃과의 소통은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프랑스 건축가 앙리 시리아니(Henri Ciriani·76)는 2000년대 초반부터 초고층 빌딩 속 인간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세계 곳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는 데, 누가 더 효율적으로, 누가 더 높이 짓느냐에만 관심이 모아지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여겼습니다.”

 21일까지 서울 서교동 자이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높은 곳에 살다(Vivre haut)’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한국건축설계교수회·창조종합건축사무소가 마련한 전시에는 초고층 빌딩에 대한 그의 새로운 제안을 담은 건축 스케치 77점이 소개된다.

 “빌딩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화로 음식을 주문하고, 문자로 대화를 하는 등 모든 일상이 건물 안에서 이뤄지죠.”

 이런 현실 속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땅 ‘인공 대지(sol artificiel)’다. 초고층 건물과 건물의 사이를 잇는 대형 다리 같은 시설을 만들고 그 안에 ‘흙이 있는 땅’을 조성한다. 여기에 나무를 수십 그루씩 심어 고층에서도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단지 공중정원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수많은 일이 가능하죠. 주민들이 텃밭을 가꿀 수도 있고, 갤러리나 영화관 등이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건축가 앙리 시리아니의 개념도. 두 고층아파트를 잇는 공간에 자연을 닮은 쉼터를 만들었다.
 초고층 빌딩이 모여 있는 단지에는 여러 개의 인공 대지가 만들어지고, 이 공간을 연결해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스케치에는 안전문제 등을 비롯해 건축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메모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시리아니는 페루 출신으로 196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해왔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던 근대 합리주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뒤를 잇는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집단 주거’가 그의 주요 관심사다. 프랑스 정부의 신도시 계획에 참여해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비슷한 집합주택을 다수 설계한 그는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은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합주택을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충분한 공용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초고층 빌딩은 집들이 끝없이 위로 겹쳐져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땅’이 생겨난다는 것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이 세 번째 방한이라는 그는 “5년 전 왔을 때보다 아파트의 창문이 커졌다”며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했다. 아시아 국가 중 그의 구상을 밝힌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는 미래로 향하는 젊은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쇠퇴하고 있는 유럽보다 아직 에너지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구상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앙리 시리아니=1936년 페루 리마에서 출생, 페루 국립공과대학을 졸업했다. 1964년에 프랑스로 이주해 파리 제7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는 등 프랑스 건축계에서 활동해 왔다. 주요 작품으로 집합주거단지 ‘누아지 2(Noisy 2)’, ‘아를르 고대사 박물관’, ‘1차 세계대전 추념관’ 등이 있다. 프랑스 국가 건축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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