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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700년 전 ‘경계인’의 외침 … 고려도, 몽골도 나의 전부

혼혈 왕, 충선왕
이승한 지음, 푸른역사
563쪽, 2만5000원


충선왕(忠宣王·1275~1325). 고려 제26대 왕이다. 이 책은 그의 생애와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세자가 된 배경, 왕위에 올라 추진한 개혁, 중국 원나라에 의해 폐위된 배경, 그리고 사연 많았던 결혼생활을 따라간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원나라 생활, 즉위와 폐위 그리고 복위라는 권력투쟁, 그리고 티베트 유배 등을 훑었다.

 충선왕.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그는 한국사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고려 말기 충렬왕과 몽골공주인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국대장공주는 칭기즈칸의 손자로 원을 건국한 쿠빌라이칸의 친딸. 그러니 충선왕은 쿠빌라이칸의 외손자인 셈이다. 그에게는 고려도, 몽골도 조국이었다. 그가 흔히 ‘혼혈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고려 왕과 원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충선왕은 매우 독특한 군주였다.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원 황실의 일원이면서 고려의 군주였던 그는 티베트로 유배를 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경계인의 일생이었다. 그림은 충선왕의 외할아버지인 원나라 초대 황제 쿠빌라이 칸(1215~95)의 사냥행차도. [사진 푸른역사]
 『고려무인 이야기』(전4권) 등을 내며 고려사 연구에 매달려온 저자는 혼혈 왕 보다는 ‘경계인’에 방점을 찍는다. ‘혼혈’이란 단어에 내포적 차별적 뉘앙스를 벗겨낸다. 부제도 ‘그 경계인의 삶과 시대’다. 국경을 넘나드는 ‘노마드(nomad·유목민)’가 부각되는 요즘, 보다 현대적인 접근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실 고려에 시집온 몽골공주는 몽골의 권위를 대변하는 존재였다. 공주의 수행원으로 고려에 온 몽골인 인후(印侯)와 회회인(回回人·위그르인) 장순룡 등은 공주를 배경으로 권세를 부렸다. 그들은 몽골공주의 위상과 파워를 대변한다.

 다음 같은 대목을 보자. “이들은 원 공주를 위한 사적인 존재이었기에 충렬왕보다 원 공주를 위해 봉사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당연히 원 제국의 이익을 우선했다. 원 조정에서는 이들을 양국 사이의 연락관이나 고려 내정에 대한 감시자로도 활용했다.”

 당시 고려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물론 수행원들도 경계인이었다. 고려에 귀화해 고려인으로 살아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후는 연안(延安) 인씨의 시조, 장순룡은 덕수(德水) 장씨의 시조가 됐다는 점이다.

 충선왕도 몽골 진왕 감마랄(쿠빌라이황제의 손자, 성종 황제의 형)의 딸인 계국대장공주와 결혼해야 했다. 이 책은 결혼식 연회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결혼 직후 또 한바탕 축하를 겸한 연회가 궁궐을 물들였다. 세자는 폐백으로 황제와 황태후, 진왕에게 각각 고려에서 가져간 백마를 81마리씩 바쳤다. 황태후는 답례로 양 700마리와 술 500독을, 또 진왕은 양 400마리와 술 300독을 내어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는 황제가 베푸는 연회가 먼저 있었고, 이어 황태후와 진왕이 따로 잇달아 베풀었다. 고려에서 가져간 유밀과(油蜜果)가 올라 인기를 끌었으며, 술이 취하면 고려에서 데리고 간 악관들이 궁중악인 감황은(感皇恩)을 연주했다.”

 고려 쪽에서 말을 선물로 바친 데에 대한 답례로 몽골 쪽에서 양떼를 선물한 점이 흥미롭다. 유목민족 몽골인의 풍속이 엿보인다. 꿀과 참기름으로 반죽한 쌀가루나 밀가루를 기름에 튀긴 다음 꿀에 담갔다가 먹는 과자가 유밀과인데 몽골인에게 인기가 있었다니 유밀과는 고려의 특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충선왕의 일생은 굴곡이 많았다. 부왕에 이어 왕에 올랐지만 왕비와 불화로 인해 퇴위하고 충렬왕이 복위했다. 부부 사이의 일을 누가 알랴. 충렬왕 세력은 충선왕의 재기를 막기 위해 계국대장공주를 이혼까지 시키려고 했다.

 원에 머물던 충선왕은 마침내 부왕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 심양(瀋陽) 지역을 지배하는 심양왕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고려왕에 복위했다. 저자는 이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재연한다. 나중에 그는 아들 충숙왕에게 고려왕을, 조카 왕고에게 심양왕을 물려준 결과 고려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또 원 황제의 교체로 티베트로 귀양가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 멀고 험한 여정을 동행하듯이 보여준다.

 충선왕은 현재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원 간섭기(지배기), 고려는 몽골제국의 일원이었기에 고려에 머물거나 귀화한 외국인이 많았다. 그 결과 혼혈인이 늘었지만 그들은 고려에 동화돼 갔다. 또 충선왕부터 혼혈인이자 경계인이었지만 그의 아들 충숙왕, 손자 공민왕을 거치면서 그는 고려인으로 거듭났다.

 엄밀히 따져 단일민족은 일종의 신화다. 요즘 국내에 거주·귀화하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고, 다문화가정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혼혈이 더 이상 특이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수용할 때 혼혈이라는 단어는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며, 경계인도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화두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700여 년 전 충선왕이 고려왕을 계승하거나, 원에서 활동하는 데 혼혈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이 책은 한국사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고려 후기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려의 원 간섭기는 부끄러운 시기로 여겨져 한국사의 암흑기처럼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는 고려가 그런 국제질서 속에서 나름 생존해가는 과정에 무게를 싣는다. 그 중심 인물로 충선왕을 제시하고 있다.

 충선왕의 분열적인 삶에는 제국의 변경으로 전락한 당시 고려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하지만 원 간섭기가 암울한 시대만은 아니었고, 지배층을 비롯해 많은 고려인이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의 우리 모습이 겹쳐지는 것도 지나친 감상이 아닐 터다.

김창현 고려대 연구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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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