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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BIz] 두바이에 도전장 낸 바레인 … FT “금융 패권 놓고 투쟁 중”

바레인 정부는 점진적 정치개혁과 신속한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올 1월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 시위대가 진압 경찰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바레인 로이터=뉴시스]

바레인의 별명은 ‘페르시아만 진주’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섬 나라다.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한국 근로자들이 사우디·쿠웨이트 등으로 갈 때 꼭 경유하던 곳이다.

 12월의 바레인은 차분했다. 이슬람 왕국 가운데 가장 세속적인 나라지만 무슬림 국가답게 크리스마스 시즌 분위기는 없었다. 기온도 영상 24도 안팎이었다. 페르시아만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과 중동 햇볕 때문에 훈훈함과 서늘함이 교차했다.

 수도 마나마 분위기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두바이와 사뭇 대조적이었다. 두바이가 19세기 말 한껏 흥청거린 미국 뉴욕이라면 바레인은 한때 잘나가다 가라앉은 요즘 일본 도쿄와 비슷해 보였다. 고유가 시대답지 않게 차분했다. 그저 야트막한 모래빛 건물과 모스크 사이에 최근 지어진 20~40층짜리 최신식 빌딩을 통해 오일 머니 흔적이 보일 뿐이었다.

 두바이와 견줘 후줄근해 보이지만 바레인은 현대 이슬람 금융의 발상지다. 이슬람 지역의 유일한 조세 피난처(Tax Haven)이었던 게 한 이유였다. 게다가 지극히 세속적인 왕국이란 점도 바레인이 금융 허브가 되는 데 한몫했다. 지금도 바레인에선 음주가 자유롭다. 심지어 매매춘마저 가능하다고 한다. 이슬람 율법의 사슬이 느슨하다는 얘기다. 그만큼 ‘돈의 자유’도 크다. 금융의 핵심인 이자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율법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바레인은 1973년 1차 오일 쇼크 이후 20여 년 동안 걸프지역 머니센터(Money Center) 구실을 했다. 갑자기 뛴 원유가 덕에 밀려든 오일 머니가 바레인에 설치된 씨티·JP모건·도이체방크·UBS 등의 지점을 통해 산유국으로 흘러들었다. 오일 머니는 다시 바레인을 거쳐 남미·동남아·동유럽 등으로 대출됐다.

 바레인 중앙은행에서 금융감독을 총괄하는 압둘라만 알베이커는 “‘수쿠크’가 7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여기에서 발행됐다”고 말했다. 수쿠크는 이슬람 금융의 상징이다. 건물 임대료 수입을 근거로 발행되는 채권이다. 요즘 돈줄이 마른 서방 국가들이 오일 머니를 유치하기 위해 앞다투어 발행하고 있는 게 바로 수쿠크다.

 이처럼 옛날은 영화로웠지만 현재 바레인은 두바이 그늘에 가려져 있다. 이렇게 된 지 하루 이틀이 아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이슬람 금융허브와 걸프지역의 경제 관문으로서 바레인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고 있다. 후발 주자인 두바이가 너무나 철저하게 바레인을 벤치마킹해서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요즘 바레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기사에서 “지역 (금융)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할 정도다. 두바이 아성에 바레인 등이 치열하게 도전하고 있어서다.

 마침 글로벌 경제 상황이 쟁탈전을 벌이기 딱 좋은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엉망이다. 몇 년째 고유가 시대 덕분에 걸프지역에 돈이 남아돌고 있다. 마침 두바이가 2009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위상이 떨어졌다.

카말 빈 아메드 바레인 교통부 장관
 요르단 출신으로 이슬람금융컨설팅의 대표로 활동하는 사미하산 호무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진행되는 경쟁에서 이기면 영국 런던-동북아 베이징·도쿄를 연결하는 ‘금융 교량’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바레인 정부는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왕세자 등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 등을 방문했다. 유치 대상도 폭넓다. 금융뿐 아니라 제조업까지 여러 종류의 기업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카말 빈 아메드 경제개발위원장 겸 교통부 장관은 “우리가 진정한 걸프지역 관문”이라며 “바레인을 통해 사우디·쿠웨이트 등 1조4000억 달러(약 1510조원)짜리 시장이 우리 뒤에 있다”고 힘줘 말했다.

 사실과 거리가 먼 얘기는 아니다. 최근 오일 달러와 아랍 민주화 덕분에 사우디 등 걸프지역 6개 왕국이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다. 단순히 건설투자를 늘리는 게 아니다. 국민 1인당 몇천 달러씩 나눠주는 등 복지 혜택을 확대하고 있다. 그만큼 걸프지역 내수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아메드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선 해외 투자자가 내국인과 합작해 법인을 세울 필요가 없다”며 “외국인 투자자가 100%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바이처럼 내국인과 손잡아야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바레인 정부는 은행 면허도 손쉽게 내준다. 바레인 현지인을 상대하지만 않는다면 영업 제한이 거의 없는 은행 면허가 나온다. 이 또한 두바이와 견줘 아주 매력적인 요소다.

 김기형 외환은행 바레인 지점장은 “두바이 정부가 은행 면허를 쉽게 내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영업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받아봐야 쓸모가 거의 없는 면허만 하루 이틀 사이에 준다”고 말했다. 그는 “폭넓게 영업할 수 있는 면허는 한 나라에 한 은행꼴로 허용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FT는 “이슬람 지역에서 바레인 금융감독 당국의 원칙과 태도가 서구적”이라고 평가했다.

 바레인이 내세우는 또 다른 장점은 ‘전통’이다. 아메드 장관은 “두바이처럼 높고 화려한 빌딩이 우리나라에선 드물다”며 “하지만 우리는 서구식 상거래를 해본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계약자유와 신의성실 원칙이 습관화돼 있다는 얘기다. 또 외국과의 무역이 생활화된 바람에 외국인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나 배타의식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바레인은 어떤 미래를 꿈꿀까.

 아메드 위원장은 “우리나라 크기는 싱가포르만 하다”며 “금융과 제조업이 조화로운 경제 구조를 원한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벤치마킹하다 어느새 능가해버린 두바이처럼 금융에만 올인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터뷰 도중 한국 제조업체들이 많이 진출해 “바레인 젊은이들에게 경영 능력을 훈련시켜 주길 바란다”고 되풀이 말했다.

 제조업은 금융과 달리 투자와 철수에 적잖은 기간이 걸린다. 그사이 바레인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바레인은 약점을 갖고 있다. 정치적 불안이 잠재돼 있다는 얘기다.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지난해 3월 일이다. 바레인 인구 120만 명 가운데 70% 정도를 차지하고도 소외된 시아파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정부와 시위대가 물리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프랑스계 은행인 크레디트아그리콜은 지점을 두바이로 이전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프라이빗뱅킹 사무실을 폐쇄했다. 실물 경제도 적잖이 타격받았다. 경제개발위원회 자모 코틀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 불행한 사건 때문에 (사우디 등으로부터) 관광객이 줄어들었다”며 “전반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1~3%포인트 정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바레인 정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사태가 진정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FT 등 외국 언론은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잠복 중이어서 불안감이 여전하다”고 보도했다. 불안감의 뿌리는 기존 리더십의 한계다. 바레인 왕정은 자국 내에서 소수(30%)인 수니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압도적 다수인 시아파는 직선에 의한 의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바레인 왕실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바레인 내부 갈등은 국제적 성격도 띠고 있다. 사우디·쿠웨이트·카타르 등이 아랍 민주화 열기가 자국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바레인 갈등에 간여하고 있다. 바레인이 아랍 왕정-민주화 세력의 최전선인 셈이다. 이는 사우디가 지난해부터 해마다 10억 달러씩 모두 100억 달러를 바레인 정부에 거저 주고 있는 이유다. 해마다 바레인 국민에게 830달러 정도를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동시에 바레인 왕실은 점진적인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왕 스스로 권한을 내각과 임명직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에 넘겨주고 있다. 또 경제개발을 서둘러 20%에 달하는 젊은이들의 실업률을 낮추려고 한다. 최근 바레인 정부의 투자유치 노력 이면에 이런 절실함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망은 그런대로 밝은 편이다. 정치적 개혁만 순조롭게 이뤄지면 페르시아만 진주가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쪽이다. 타리크 알레파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경제분석가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갈등이 부드럽게 해결되면) 바레인이 유럽의 룩셈부르크처럼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룩셈부르크는 서유럽 중개무역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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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