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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제 성공 비밀은 백악관 공간 정치에 있다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의 모습.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모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왜 아직도 한국의 대통령들은 집권 후 지지율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정치를 반복할까? 과연 이번에 당선될 대통령은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시민들과 소통하며 성공적 어젠다를 운영할 수 있을까? 난 다소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청와대 구중궁궐에서 시민 대통령을 꿈꾸는 것은 도심 아파트에서 생태주의 자녀 교육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이 ‘공간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백악관보다 더 첨단의 상황실 공간을 설치했지만 국민들의 상식적 생각은 이해하지 못한 이 같은 희극적 사태는 바로 공간의 저주에서 시작된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중앙포토]
 어쩌면 미국 대통령제라는 모델 속에 실패의 씨앗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미국 대통령은 ‘President’라고 부른다. 이는 글자 그대로 회의를 주재하는(preside) 사람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사실상 ‘현대의 군주’다. 즉 한편으로는 현대적으로 시민과 소통하고 반응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적 경이로움과 권위, 신비로움을 간직해야 하는 모순적 존재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구중궁궐 같은 백악관을 ‘연방 감옥의 절정’이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한국의 청와대를 방문한다면 연방 감옥의 수준을 능가하는 위압감에 경악할지도 모르겠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를 좀 더 현대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권위를 붕괴시킨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핵심은 민주와 권위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이다.

 미국은 애초부터 유럽 권위주의 왕정에 대한 저항의 촛불시위로부터 출범한 혁명가의 국가다. 그래서 백악관 건립 당시 많은 이가 민주적 스타일의 공간을 꿈꾸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시 미국 엘리트들은 마치 유서 깊은 부자 가문에 대한 졸부들의 콤플렉스처럼 유럽의 권위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건국의 시조인 조지 워싱턴은 봉건제에 대항한 혁명가의 행정 중심 공간을 유럽 귀족의 대저택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선택은 오늘날 시점에서 매우 절묘한 균형점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백악관은 비록 외관은 귀족주의 대저택이며 내부에서는 다양한 권위적 의식이 진행되지만 동시에 민주적이고 효율적 소통 구조를 가진 권위와 민주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악관의 역사는 그 수장이 군주적 성격에서 민주적 성격으로 변모해간 역사였고 이는 공간 운영에도 반영됐다. 원래 백악관의 참모는 군주적 성격의 대통령을 위한 서신 전달이나 연락 조정의 기능에 국한됐다. 하지만 현대 대통령제가 직면한 이슈들의 고도의 복잡성과 민주적 소통의 중요성, 불확실성, 시간적 제약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과 참모진은 하나의 유기적 정책 결정집단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인 힐러리 여사를 비서실장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결국 이게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법무팀 확인을 받고서야 포기했지만, 한국처럼 비서실장과 비서관이 차량을 타고 위민관에서 본관으로 들어가 비서실장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제왕적 스타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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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적 공간은 자연스럽게 민주적이고 순발력 있는 협의를 이끌어낸다. 물론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묘사하듯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서 빈번히 오고 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대통령과 비서진들은 일상적 호흡 속에서 토의를 진행한다. 같은 공간이 아니라 위민관에서 따로 근무하는 청와대와 달리 백악관은 비서실장실은 물론 비서실·자문관실·부통령실 등이 바로 같은 공간의 지척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이긴 하지만 웨스트 윙에서의 묘사처럼 내방객이 우연히 대통령을 비서실장실이나 내각 회의실 등에서 조우하고 경악하는 일들도 벌어지곤 한다.

 이 민주적 공간 활용 전략은 다시 두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긴밀한 소통 속에서 이를 중심으로 비서실이 위계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다른 하나는 보다 자유롭게 대통령과 비서진이 수시로 협의하는 구조다. 전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이 대표적이고 후자는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이 주로 그러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때 심지어 피자를 배달시켜놓고 불시에 자유로운 즉흥 토론을 벌이곤 해 언론에서 “대학생 MT 모임 같다”는 조롱을 받기까지 했다. 물론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비서진들이 대통령 앞에서 주눅이 들어 ‘시체’가 되는 한국의 청와대 궁궐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이 같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공간은 결국 시민을 대신해 심층적이고 자유로운 취재를 시도하는 언론들의 활동 영역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한국은 청와대 대변인이 실세냐, 아니냐에 따라 언론 브리핑의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반면 같은 공간에서 수시로 조우하고 회의하는 백악관 구조에서는 누가 대변인으로 선임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 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통령 집무실 혹은 바로 옆 내각 회의실 등에 의회 관계자들을 자주 불러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초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킬 때 공화당 의회 지도부를 불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심지어 밥 우드워드 회고록에 따르면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오바마의 이름을 부르며 바로 옆에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제 성공의 비밀이 백악관의 ‘공간 정치’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출입문에서 대통령 의자까지 15m라는 엄청난 거리에다 위압적인 청와대 집무실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더욱이 웨스트 윙 1층에는 의회 보좌관과 부보좌관의 공간이 배치돼 있다. 이들과 대통령 사이의 가까운 거리는 의회를 담당하는 수십 명의 직원들이 의원 하나하나의 기침 소리까지 챙기는 것과 더불어 청와대와 백악관이 군주제와 대통령제만큼이나 거리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후 청와대가 공간 리모델링과 직제 개편을 한다면 주목할 만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번에 당선될 대통령의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개혁, 그리고 각 정당의 교차투표 문화 등이 잘 결합한다면 이 공간 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의회 관계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너무나 다른 또 하나의 공간 활용 방식은 대통령 가족이 거주하는 이스트 윙 공간에서의 정치활동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거친 한국은 대통령의 정치 중립에 대한 ‘신화’가 존재한다. 대통령은 가장 정치적 직위며 정당 정치의 상징인데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허상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의 대통령들은 웨스트 윙에서 행정의 수반으로서 집무를 보면서 동시에 이스트 윙에서 선거 운동가로서 활동한다.

안병진 교수
 예를 들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선거자금 기부 전화를 요청해야 할 때마다 이스트 윙으로 투덜거리며 이동하곤 했다. 심지어 그는 이스트 윙의 링컨 침실을 고액 기부자 기부금 혜택용 숙박시설로 활용해 권위를 중시하는 언론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클린턴 전 대통령의 행태는 지나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백악관이 행정과 선거 정치를 별개의 공간에서 소화하는 데 비해 청와대는 위선적으로 혼합하거나 혹은 아예 정당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미국 백악관의 사례들은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과 정치권에 다음의 과제를 시사해준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 권위의 균형적 리더십을 가진 시민정치가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면서도 경이로움을 가진 리더십, 이를 반영한 공간과 행정 시스템 등을 구현해야 한다. 둘째로 이 같은 인식의 바탕 위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인수위에 가칭 공간과 행정위원회를 설치해 취임 전 충분한 준비를 마쳐야 한다.

 셋째로 대통령 후보와 의회는 초당적으로 청와대 리모델링에 사전 합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상대당의 대통령이 추진한 청와대 헬기 도입 계획에 적극 찬성한 통합적 리더십을 지금 우리의 시대는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부터 정치 양극화가 시작되는 게 한국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누가 당선될지 모를 남은 기간에 대통령 후보들과 정치권이 청와대 리모델링 계획과 예산 규모에 사전 합의했으면 한다. 다음 대통령은 어느 한 정당의 대통령이기 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며, 또한 반드시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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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