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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71% … 재외국민 투표 뜨거웠던 1주일

대선을 8일 앞둔 11일 정오를 끝으로 18대 대통령 재외선거 투표가 마감됐다. 미국 6개 공관 13개 투표처 중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LA 투표소에서는 유권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줄을 서서 투표하기도 했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에스더 오씨가 산소통이 달린 휠체어를 타고 와서 투표했고(아래 왼쪽 사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먼 길을 달려와 손수 한 표를 행사했다. [LA지사=백종춘 기자]

5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간)부터 11일 정오까지.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분관에서 시작한 18대 대통령 재외선거가 미국 하와이 주호놀룰루 총영사관에서 마무리됐다.

 엿새간 전 세계 164개 공관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선거인 명부에 등재된 재외국민 22만2389명 중 15만8235명이 투표했다. 71.2%의 투표율이다. 지난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45.7%)보다 훌쩍 높아진 수치다. 대통령 선거인 만큼 커진 관심과 기대가 투표율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15만8235명은 서울시 어느 구의 유권자 수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19일 치러지는 18대 대선 총 유권자는 4052만6767명. 등록된 해외 유권자 22만2389명은 전체의 0.5%를 약간 넘는 적은 숫자다. 초박빙이었다는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간의 득표 차이는 약 37만 표. 설령 22만2389명이 전부 투표를 하고, 한 후보에 몰표를 줬다 해도 결과가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재외국민의 투표는 ‘소중한 한 표’의 의미를 새삼 확인시킨다. 2000㎞를 버스로 40시간 달려 투표한 인도 벵갈루루의 유권자,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산소통을 단 휠체어를 타고 투표했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권자. 이들의 투표는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루지야 한인들은 ‘무비자’ 터키서 투표

 벨기에 브뤼셀은 선거인 수 354명의 작은 선거구다. 여기엔 룩셈부르크의 유권자 20명도 포함돼 있다. ‘추정 유권자’ 630명 중 56%가 등록했다. 전 세계 ‘추정 유권자’ 약 223만 명 중 22만2389명만 유권자로 등록한 데 비하면 벨기에의 선거인 등록률은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는 한국인 구성 비율 때문이다. 벨기에의 한국인 대부분은 주재원·유학생 같은 국외 부재자다. 국적을 제외하고는 한국과의 연이 흐릿해진 재외동포보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223만 명의 해외 유권자 중 160만 명 넘게 몰려 있는 미국·일본·중국은 이와는 반대다. 상당수가 현지 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이다 보니 유권자 등록률도 각각 5.59%, 7.80%, 11.92%로 확연히 떨어진다.

 참여율은 높지만 조그만 한인사회답게 선거는 아주 조용히 치러졌다. “대선이라 TV 뉴스와 토론까지 다 챙겨봤다” “태어나서 처음 투표를 한다”는 이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중엔 독일에서 온 유권자도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 유권자 등록을 해놓고 출장 일정상 브뤼셀에서 투표를 한 것이다.

 재외국민 선거를 하기 위해선 체류 중인 국가의 공관에 참가 신고를 해야 한다. 각 공관이 일종의 지역구·선거구가 되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자신의 주소지에서 투표하는 국내 유권자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재외선거에선 ‘지역구’ 밖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다. 한국을 제외한 어디서나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권자가 출장차 들른 일본에서 투표하거나, 프랑스 유권자가 스페인 여행길에 투표할 수 있다. 전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지역구’로 여겨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말이 안 되는’ 투표율도 등장했다. 투표 마감 결과 바레인의 투표율은 122.5%였다. 등록된 유권자는 204명인데 250명이 투표를 했다. 섬나라 바레인과 근접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교민들 때문이다. 두 나라는 다리로 연결돼 있어 육로 통행이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거주하는 교민들에겐 5시간 걸리는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나 주젯다 총영사관보다 다리 건너 한 시간이면 가는 주바레인 대사관이 훨씬 편리한 투표소였던 것이다.

 그루지야의 한인들은 터키 앙카라에서 투표를 하기도 했다. 그루지야까지 관할하는 주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 유권자 등록을 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은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 투표를 위한 입국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터키까지 20시간을 달려가 권리를 행사했다. 스위스에서도 제네바·취리히 등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폭설에도 불구하고 2시간 이상 길을 달려 수도 베른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재외국민 투표용지는 한국 내 주소가 적힌 봉투에 넣는다. 선거 마감 후 외교행낭에 담겨 가장 빠른 비행기 편으로 한국에 보낸다. 공항에서는 바로 중앙선관위·외교통상부·우정사업본부 등 관계기관과 정당 참관인 입회하에 시·군·구 선관위로 등기 발송을 한다. 투표는 공관별로 진행되지만 개표는 유권자의 한국 내 선거구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재외선거의 후보별 득표율은 공관별로 집계할 수 없다. 서울 강남구에 주소가 있는 재외국민들이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줬는지는 알 수 있어도 미국에서 어떤 후보가 표를 많이 얻었는지는 알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중국 신경보 기자 "질서 있게 진행돼 인상적”

 6개 공관에서 13개 투표소를 운영한 미국에선 총 3만7103명이 투표해 71.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광활한 면적의 미 본토에서 투표소가 태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투표율이라는 게 공통된 평가다. 공관별로는 LA(79.6%)의 선거 열기가 가장 뜨거웠다. 샌프란시스코도 78%에 달해 뉴욕(68%)·워싱턴(70.6%)·시카고(70%)·애틀랜타(69%) 등 중·동부 지역보다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에스더 오(56·여)씨도 LA에서 투표에 참여했다. 자녀들의 만류에도 끝내 투표소를 찾았다는 오씨는 “정말 투표하고 싶었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며 “내가 원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우리나라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유학생 박아현(20)씨는 마감을 3분 앞둔 오후 4시57분 투표소에 도착해 LA 투표소의 마지막 투표자로 기록됐다. 그는 “학교에서 오후 3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투표소로 향했다”며 “교통체증이 심해 조마조마했는데 생애 첫 투표를 무사히 마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에서도 2만5312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67.8%. 일본은 등록자의 절반가량이 오랜 세월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교민들이었다. 이봉남(93)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장은 “1935년 유학차 일본에 건너온 뒤 77년 만에 처음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일부 유권자는 투표가 시작된 5일 새벽부터 대사관 앞에 줄을 서 역사적인 한 표를 행사할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다행히 우려됐던 교민들 사이의 갈등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전체 투표 신고인 수 3만5674명 중 2만4330명이 투표해 68%의 투표율을 보였다. 다만 중국 전체의 한국인 유권자는 29만5220명으로 투표 신고자 비율이 12%에 그친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투표소가 공관으로 제한되다 보니 공관에서 먼 거리에 있는 유권자들의 참여가 저조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경우 유권자 거주 지역은 100곳이 넘는데 투표소가 설치된 공관은 10곳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중국 언론도 이번 선거에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투표 첫날인 5일 주중 한국대사관을 찾은 가오메이(高美) 신경보(新京報) 기자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오늘 투표 장면을 직접 지켜보니 매우 투명하고 질서 있게 진행돼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외선거의 실제 투표율이 높았던 건 무엇보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9대 총선 재외선거를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간소화한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대통령 재외선거에선 e-메일로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재외 한인사회에서는 투표 자체를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우편투표 도입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의 공정성이 지켜지는 가운데 비용과 편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조만간 마련될 것으로 본다”며 “추가 투표소 설치, 파병군인 등의 제한적 우편 투표, 귀국 투표 등의 개선 방안을 담은 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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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