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신구초교 일대, 예전에 저수지 자리 강남 개발 되면서 쓰레기로 매립”

지난 5일 신사동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강남구 신사동 주민센터 옥상에 오른 유원도씨. [사진=김진원 기자]


“신사동 가로수길 은행나무를 보면 안타까워. 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간판 안 보인다고 자르고 몰래 죽이고 그랬다니깐.”

 유원도(69)씨에게 가로수길에 세워진 나무들은 남다르다. 젊은 시절, 공장 관리직을 맡았다. 1960년대 직장 때문에 김포, 인천을 돌아다니다 자신의 공장을 차려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10년 정도 타지 생활을 한 적 빼곤 한평생 신사동에 살았다. 문화 유씨 지우사공파 37대손인 그는 “30대손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말했다. 91년 지역구를 신사동으로 해 강남구의회 초대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70년대 후반 새마을협의회에서 현재 가로수길에 심을 은행나무 말구(끝동부리)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도로만 있을 뿐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이었다.

  “전주폭보다 조금 넓게 심었지. 당시엔 가로수길 주변에 집도 뜨문뜨문 있었고 아스팔트가 깔리기도 전이었어. 신사동 부녀회원을 포함해 동네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가꿨어. 주민들이 많이 고생했지.”

  시간이 지나 가로수길은 명소가 됐지만 그는 안타까움이 크다. “여기 봐. 나무가 겉이 울퉁불퉁하지. 옛날에 가게 주인들이 현수막 걸고 나무에 묶은 철사를 버리지 않아서 그런 거야. 아직 속에 철사가 박혀 있는 나무도 있어.”

  지난 5일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 가로수길을 찾은 그는 나무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말 한대로 였다. 간혹 이가 빠진 것 마냥 나무가 있어야 할 지점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가지 치기가 된 나무를 보며 혀를 차기도 했다. “지방에 있는 은행나무길들 처럼 멋지게 관리하면 좋을텐데.”

신사동엔 ‘새말’이란 자연 부락이 있었다. 이 부락은 웃말, 가운데말, 아랫말로 나뉘어 불렸다. 웃말은 현재 앙드레김 의상실~강남경찰서 신사파출소 지역이고 가운데말은 강남구립 신사어린이집이 있는 곳이다. 서울신구초등학교 못 미치는 곳이 아랫말이었다. 그의 집은 아랫말에서도 마지막 집이었다고 한다.

  “웃말은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고, 가운데말은 여러 성이 함께 살았지. 내가 살던 아랫말이 문화 유씨 집성촌이었어.”

  논현동 영동관광호텔·강남을지병원이 있는 곳은 원래 ‘마죽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70년대 강남 개발이 이뤄지며 산은 사라졌지만 그에겐 유년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쥐불놀이를 했지. 마죽산에서 시작해 잠원동까지 쳐들어 가곤 했지(웃음).”

  변한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서울신구초와 신사동 광림교회 일대는 ‘구단’이라 불린 저수지가 있었다. “저수지 둘레가 5리(약 2㎞)였어. 마을사람들이 가리(물고기 잡는 기구)로 팔뚝만한 가물치를 잡기도 했었지. 강남 개발이 되면서 이 저수지를 메우려고 시에서 쓰레기를 매립했어. 한동안 파리가 들끓어 살기 어려울 정도였지. 직접 시에 찾아가 민원을 넣고 나서야 해결됐어. 그 뒤엔 마죽산 흙으로 메운거야.”

  예전 신사동은 “가물면 땅에서 쇳소리가 날 만큼 쉽게 말랐고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려 ‘부인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사는 동네’였다”고 한다. 반면 압구정동은 배 과수원이 많았고, 물에 쉽게 잠기는 잠원동은 땅에 영양이 풍부해 무·호박 농사가 잘됐다고 한다. 주변보다 여건이 좋지 않아 ‘빈농’이 많았던 이곳이 지금은 땅값 비싼 동네가 됐다. 이런 동네 변화를 지금껏 지켜봐 왔다.

  “이제는 뭐 할게 있나. 노인분들 위해 3년 전부터 배운 섹소폰을 가지고 노인복지센터에서 연주 봉사를 매주 2회 하고 있어. 내가 살아온 동네인데 꾸준히 관심 가져야지(웃음).”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