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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한 잔보다 강렬한 책 … 산해진미 안주는 토론이죠”

서초구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들이 특별한 송년회를 했다. 흥청망청한 술자리 대신 독서에 취하는 송년회다. 각자 맡은 변론이 다르고 업무도 다르지만 책 앞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차분하면서도 왁자지껄한 그들만의 송년회를 가봤다.

글=김록환 기자 , 사진=나혜수 기자

‘북클럽’ 회원인 이국현·김보라·이소영·박승인·김상찬·이산해(왼쪽부터)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촬영협조 본커피 강남점]


술잔이 오가는 대신 토론이 오간다. 분명 송년회인데 왠지 차분하다. 아니, 종종 열띤 이야기들이 차려진 다과 사이로 오가는 것을 보면 여느 술자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테이블 가운데에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에스프레소 제조를 위해 하루 동안 가게 문을 닫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왠지 진한 커피가 자꾸 생각나네요.” 김상찬(37) 변호사가 운을 떼자 이소영(28)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커피는 맛이죠, 맛. 거대 브랜드가 다시 한 번 혁신의 계기를 맞게 된 것도 맛이라는 한계 때문이 아닐까요?”

 결코 재판 변론의 현장이 아니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북카페인 ‘본커피’의 미팅 룸 한 쪽에서는 하워드 슐츠의 경영 저서인 ‘온워드’라는 책을 두고 모두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커피의 매력, 브랜드를 만드는 열정에 대해 10여명의 변호사와 직원들이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후유증에 빠져든다. 이들은 모두 독서토론회 ‘북클럽’의 회원들이다.

 책을 ‘같이’ 읽어보면 즐겁지 않을까? 서로의 소감을 나누면 좋지 않을까? 처음 이산해(38) 변호사는 동료와 평소 읽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이것이 변호사 세 명으로 독서토론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북클럽은 지난해 6월 창단됐다. 현재는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을 번갈아 가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다. 공공부문 전문 법률가 조직인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와 일반 직원을 합쳐 총 10여명 정도가 꾸준히 참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두 달에 한 권 정도 함께 책을 정해 읽고 저녁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가볍게 시작됐다. “변호사들이 어디 보통내기인가요. 토론을 하자면 끝도 없죠.” 점차 주변 변호사들의 호응을 얻으며 올해 초에는 공개 모집을 통해 회원들을 받았고 지금은 공단에서도 인정하는 정식 동호회로 발돋움하게 됐다.

 그들이 송년회를 책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부담이 적은데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연말 연초에 내실 있게 가벼운 마음으로 모임을 진행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산해 변호사가 말한다. 토론을 위해 읽었던 책은 한 잔의 술보다 달콤하고, 쟁쟁한 동료 변호사들과 얘기를 나누며 공감을 얻는 것은 산해진미 안주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토론 통해 변론 업무에도 탄력 받아

북클럽 회원들은 두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 스크린 골프나 음주 모임, 파티에 참석하는 변호사들과는 다르다. 격월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 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40분~50분 정도 모임을 갖는다. 그 다음 달에는 함께 저녁을 먹으며 책에 대해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 공단 내 회의실에서 열리는 점심 모임의 경우에는 발제자가 미리 준비를 해 와서 20분 정도 발표하고 지정토론자들이 질문 답변을 진행한다. 반면 저녁 모임은 인근 맛집에서 열린다. 이 변호사는 “점심에 비해 더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특정 도서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개인사도 공유하죠”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후흑학’을 읽으며 얼굴 두꺼운 뻔뻔함과 속 시커먼 음흉함이 더 필요하다고 이견 없는 합의를 보기도 하며, ‘넥스트 디케이드’나 ‘HIT’를 읽으며 책 내용과 크게 관련이 없는 각자의 경제적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독서 토론 활동은 업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대화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대가 생겨 변호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한다는 것은 매일 얼굴을 대하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신변 근황, 업무, 사소한 시사 화제거리 정도로는 도저히 줄 수 없는 깊은 즐거움을 줍니다. 토론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북클럽 회원들이 책을 들고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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