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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노래는 발가락도 춤추게 한다

김기택
시인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만남이 잦아지는 달이다. 술잔 기울이다 기분 좋아지면 노래방을 찾게 되는 달이다. 나도 이러저러한 모임에 나갔다가 몇 차례 노래방까지 갔다. 노래방 가자고 할 때는 어찌나 고집들이 센지 끌려가지 않을 수가 없다. 노래를 즐겨 부르는 편이 아닌데 연말이 가까워지기만 하면 노래를 자주 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노래를 즐기는 것일까. 왜 노래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말과 노래는 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무엇이 다를까. 노래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니 쓸데없이 이런 게 궁금해졌다.

 말은 듣는 사람을 향해 나가려고 하지만 노래는 입이 소리를 내보내면서 동시에 귀가 듣는다. 말은 한 방향으로 가지만 노래는 내 안에서 양방향으로 오간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면서 내 노래를 감상하는 사람이 된다. 내 입이 부르는 노래를 내 귀가 즐거워해 줘야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내 목청이 내는 소리를 내 귀가 들으면서 음량과 속도와 박자를 조절해 줘야 노래가 잘 나올 수 있다. 말은 모이면 웅성웅성이 되고 시시비비, 왈가왈부, 쑥덕쑥덕, 수군수군이 되지만, 노래는 모이면 합창이 된다. 아름다운 하모니가 된다. 많은 사람이 불러도 한 사람이 부르는 것 같은 이유는 모든 귀가 서로 노래를 들어 주기 때문이다. 소리와 소리가 서로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껴안기 때문이다.

 말은 입과 목청으로 하지만 노래는 온몸으로 한다. 노래를 하면 심장이 더 크게 울리고 피가 뜨거워지며 머리와 어깨와 엉덩이는 들썩거린다. 발가락까지 까딱거리며 노래에 참여한다. 허파와 심장은 운동을 할 때처럼 호흡이 가빠진다. 몸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바람이 드나든다. 노래를 부르면 바람이 몸을 시원하게 통풍시켜 주기 때문에 몸 어딘가 답답하게 막혀 있던 곳이 뚫리는 것 같다. 그럴 때 몸은 바람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관악기가 된다. 노래는 몸에서 퍼 올리는 소리이다. 몸의 각 기관이 많이 참여할수록 노래는 더 신이 난다. 노래는 혼자 불러도 온몸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 된다.

 말할 때는 머리로 생각하지만 노래할 때는 마음과 감정과 정서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말할 때는 생각이 나오지만 노래할 때는 오랫동안 몸에 갇혀 있던 추억과 젊음과 옛 얼굴들이 나온다. 노래에 빠지면 생각이 잠시 쉬게 된다. 그 대신 몸에서 잠자고 있던 슬픔이며, 기쁨, 울음, 신바람 등이 깨어난다. 울음 같은 기쁨과 즐거움 같은 슬픔도 맛볼 수 있다. 노래 속에서는 슬픔조차 얼마나 단가. 노래에 깊이 빠지면 머리와 몸은 없어지고 감정과 정서만 남는다. 더 깊이 빠지면 나도 없어지고 노래만 남아 노래가 스스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노래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목욕을 한 것 같고, 실컷 힘을 쓰고 나서도 푹 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말은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지만, 노래는 목적도 이유도 없다. 말할 때는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을 하지만 노래할 때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말할 때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단어를 고르고 마음에 없는 것도 꺼내지만 노래할 때는 제 목소리에만 집중한다. 말할 때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말을 부리지만 노래할 때는 노래가 사람을 이끈다. 노랫말은 듣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부탁하거나 요구하거나 명령하거나 설득하거나 욕하고 헐뜯거나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시켜서 억지로 부르거나 직업적으로 부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래는 좋아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노래는 말처럼 복잡하지 않다. 내가 좋고 듣는 사람이 즐거워하면 그게 다다.

 올해도 말을 참 많이 했다. 눈치 보는 말, 계산하는 말, 남을 누르고 나의 이익에 봉사하려는 말, 듣는 데는 인색하고 제 뜻만 밀어 넣는 말, 실컷 떠들고 나면 피곤해지는 말. 이 모든 말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시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가 말이면서도 말에서 벗어나려는 말이기 때문이다. 침묵과 여백이 말을 쉬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래도 그렇다. 노래하면 생각도 쉬고 마음도 쉬고 말도 쉬게 된다. 노래방에 가서 실컷 소리치고 싶다면 그건 말에 지쳤으니 말을 쉬게 해달라는 몸의 신호일지 모른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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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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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