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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출구 없는 ‘1억 관객 시대’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
“지금 한국 영화계는 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없다.”

 영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10일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아름다운 예술인상’을 받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올해 한국 영화계는 외형상으론 대풍년이다. ‘광해’ ‘도둑들’ 등 관객 10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2편이나 나왔다. 한국 영화 관객 1억 명 돌파, ‘피에타’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등 양적·질적 성취가 두드러진 한 해였다. 그런데도 출구가 없다는 건 무슨 곡절일까. 다시 김 감독의 발언으로 돌아가보자. “멀티플렉스 10개 관 중 1개 관이라도 대기업이 투자하지 않은 영화에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상생과 동반성장은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도 뜨거운 쟁점이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려면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라는 대기업의 자장(磁場)을 벗어나기 어렵다. 제작비 조달은 물론 극장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CJ E&M은 CGV,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와 ‘한몸’이다. CGV와 롯데시네마를 합치면 스크린 점유율이 거의 70%다. 작품성이 웬만한 경우 대기업 투자를 받은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화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상영 환경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게 얼마나 큰 특혜인지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안다. 단적인 사례가 CJ E&M이 기획·투자한 ‘광해’다. CJ E&M을 총괄하는 이미경 부회장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이 영화에 전사적 지원이 뒷받침됐다는 건 이미 영화계에 파다한 얘기다. 개봉 석 달이 다 돼가는 지금도 CGV 일부 상영관에선 ‘광해’를 상영한다. 이에 힘입어 ‘광해’는 12일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 중 같은 사극인 ‘왕의 남자’(1230만 2831명)를 앞질렀다. 자본의 힘을 빌려 기록을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듯한 밀어붙이기에 “대기업의 횡포”라는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으니 딱한 노릇이다.

 반면 대기업의 낙점을 받지 못한 영화가 걷는 길은 대조적이다. 운 좋게 멀티플렉스에 들어가도 상영시간대가 좋지 않다. 평일 오전 8시반, 자정. 손님이 올 턱이 없다. 지난달 개봉한 유준상·김지영 주연의 영화 ‘터치’는 이런 푸대접 끝에 감독 스스로 일주일 만에 종영 결정을 내렸다. 쉽게 말해 한국 영화는 태생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저소득층 출신이 본인 노력에 의해선 계층 이동을 할 수 없는 현실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영화계는, 그런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지난 7월 영화단체·대기업 등이 모여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약’을 만들었지만 실천 없는 상생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1억 관객 시대’는 양질의 흥행작이 쏟아졌기에 가능했다. 한국 영화 제작과 투자에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온 대기업의 공이 적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결정적인 동력은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창작자들에게서 나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적어도 이들이 출구 없는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공정한 생태계 질서는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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