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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어느 시장이 남긴 유산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오래 전 중국무술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소림권·당랑권·영춘권·태극권 등 여러 문파를 들락날락거렸다. 철사장(鐵砂掌)을 단련하느라 뜨거운 모래에 손을 찔러대 피부도 수없이 벗겨졌었다. 그런 나를 보고 한 중국인 관장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눈에 보이는 초식에만 집중해 있다. 중요한 건 기본이다. 참장(말뚝처럼 서 있기)으로 힘을 기르고, 이 권법 하나만 평생 수련하면 천하무적이 될 거다.” 그가 일러준 건 상대의 주먹을 걷어내고 반격하는 너무나 간단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현란한 권법과 발차기에 현혹돼 있던 내 귀에 그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현재 고수 중의 고수로 통하는 그의 조언이 옳았다는 걸 깨닫는 데 20년 넘게 걸렸다.

 옛 기억이 떠올려진 건 최근 세상을 떠난 한 인물 때문이다.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 부음란에서 미국 텍사스주 리치먼드 시장의 사망 기사를 봤다. 이름은 힐마 무어. 기사엔 92세인 그가 63년째 시장직을 맡아 왔다고 돼 있었다. 미국의 최장수 시장 기록이다. 호기심에 그에 관한 자료를 좀 더 추적해 봤다. 무어는 1949년 9월 보궐 시장을 뽑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얼떨결에 시장에 추대됐다. 그때를 시작으로 2년 임기의 시장 선거에서 32번 연속으로 승리했다. 그 비결은 뭘까.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는 60여 년간 단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선거에 나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약속하는 것,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든, 반장 선거든 화려한 공약이 난무하게 마련이지만 그는 이 두 가지 초식만 가지고 사실상 종신 시장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무어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시청 앞에 그의 전신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사망 소식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주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지도자라니 부러웠다.

 한국의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 채 열흘도 안 남았다. 이제 유권자의 밝은 눈이 필요한 때다. 그 시작은 화려한 말 잔치나 가공된 이미지 뒤에 숨겨진 본질을 꿰뚫는 데서 시작된다. 결혼 후에야 배우자의 본색을 알게 되면 얼마나 가슴 아픈가. 누가 자신이 해 온 말을 지킬 수 있을지, 정치공학을 앞세워 국민을 배신하지 않을지 따져봐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그 다음이다. 힐마 무어는 목장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시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한 번도 이권 문제로 논란을 빚은 적이 없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인구 1만2000명을 책임지는 일개 시장과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겠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리더십의 본질은 같다고 본다. 시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국민의 믿음도 얻을 수 있다. 기자 개인적으론 겉멋에 빠져 고수의 충고를 외면했던 과거의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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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