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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한국 맥주는 왜 맛이 없을까

이철호
논설위원
국산 맥주가 연일 얻어터져 만신창이 신세다.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후폭풍이다. 영국의 낡은 양조장 기계를 350만 달러에 사들인 북한에 뒤진다니 온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물론 여기엔 독일을 의식한 영국의 국수주의 냄새도 지우기 어렵다. 대동강 맥주를 맨 처음 치켜세운 쪽도 2008년 영국의 로이터통신이었다. “달콤하면서도 중후한 무게감, 입안에 감도는 쓴맛의 여운… 남한 맥주보다 훨씬 낫다.” 참고로 한국의 맥주 생산설비는 대부분 독일제다.

 그렇다고 애국주의에 젖어 영국 언론만 탓할 게 아니다. 어느새 우리 소비자 입맛부터 몰라보게 까다롭고 럭셔리해졌다. “배낭여행 때 체코의 프라하에서 맛본 ‘필스너 우르켈’을 잊지 못한다.” “중국의 칭다오, 필리핀의 산미구엘… 왜 우리 맥주는 광고 연예인밖에 기억에 없지?” 이뿐이 아니다. 가을이면 맥주 축제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 전세기까지 띄우는 게 한국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도 칭찬에 인색하다. 밍밍한 맛을 ‘악마의 오줌’이라고 빈정댄다. 영어 원어민 교사 사이트는 아예 상표까지 명시하며 비틀고 있다. “HITE is sHITE(쓰레기)-CASS is cASS(엉덩이)”라고.

 국내 맥주업체들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나라별 기호와 특성을 몰라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넉넉한 안주와 함께 먹는 우리 풍토상 하면발효(저온에서 발효시킨 뒤 효모를 가라앉힘)의 톡 쏘고 시원한 라거(Lager) 맥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라거는 쓰고 진한 맛의 영국식 에일 맥주를 누르고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타입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향·보디감(무게)·뒷맛·청량감·목넘김이라고? 우리 맥주의 맛은 딱 하나다. 바로 싼맛!”이라고 비꼰다. 만드는 쪽이 아무리 “맛있다”고 우겨도 마시는 사람이 “맛없다”면 그걸로 끝이다.

 어쩌면 한국 술의 고질병은 엉뚱한 곳에 있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국세청에 지나치게 예속돼 있는 게 문제다. 소주의 경우 국세청의 주정배급제(酒精配定制)가 남아 있다. 여전히 대한주정판매가 주정 유통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술병 뚜껑 제조까지 사실상 국세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국세청이 거느린 기술연구소는 옛 양조시험소를 이름만 살짝 바꾸었을 뿐이다. 맥주에도 국세청의 보이지 않는 규제가 수없이 얽혀 있다. 맥주용 보리는 2006년까지 정부가 일괄수매해 맥주회사에 떠안겼다. 지금도 업체들은 정부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먹기로 보리를 계약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국산 맥아(보리싹)는 동유럽산보다 값이 너무 비싸다. 농민을 의식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그 격차를 메우려면 보다 싼 수입산 보리·호프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맥주에는 물·효모·맥아·호프가 들어간다. 효모는 업체마다 생명처럼 여기는 영업비밀이다. 여기에 맥아와 호프를 얼마나 섞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효되는 40일간 녹아 들어가는 수천 가지의 비밀 노하우다. 요즘 일부에서 알코올 농도를 묽게 하는 ‘하이그래비티’ 공법을 밍밍한 맛의 원흉으로 지목하지만, 한마디로 누명이다. 세계 유명 맥주의 상당수가 이 공법을 채택하고,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공법이다. 오히려 좋은 맥주의 객관적인 판단 기준의 하나는 거품의 포지력(抱持力)이다. 거품이 금방 꺼지지 않고 힘이 있어야 향과 맛을 오래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실비실한 우리 맥주의 거품을 대놓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을까.

 이제 주세(酒稅)행정과 주류(酒類)행정을 분리해야 할 듯싶다. 세금이야 국세청이 계속 맡되 주류행정은 농림수산식품부에 넘겨야 한다. 규제가 확 사라져야 다양한 맛의 맥주가 나오고, 속된 말로 더 이상 외국 언론에 까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한국 맥주는 소주를 만나야 황금비율의 폭탄주가 된다”는 비아냥을 들을 것인가. 업체들의 “수입 맥주만큼 우리도 수출한다”는 자랑도 부끄럽다. 대부분 세법(稅法)의 틈새를 노려 일본 저급 시장에 수출하는 게 아닌가. 국산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비판,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소비자들이 단단히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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