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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룡 대 황룡의 결투… 곤덕 지닌 쪽이 이기리니

용들의 전쟁이 치열하다. 들판에는 유혈이 낭자하다. 검붉은 피와 노란 피가 흘러넘친다. 현룡(玄龍)과 황룡(黃龍)의 혈투다. 곤(坤:
)괘 상육(上六)에서 말한 용전우야(龍戰于野) 기혈현황(其血玄黃) 그대로다. 그 형세가 자못 아슬아슬하여 쉽사리 우열을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까. 백두옹은 곤덕(坤德)을 지닌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황룡의 승리다.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20>


현룡은 하늘, 강건함, 아버지의 성정을 지녔다. 황룡은 땅, 유순함, 어머니의 성정을 지녔다. 표상으로 보자면 현룡은 검은 깃발, 황룡은 노란 깃발이 되며 정당으로 치면 현룡이 여당, 황룡은 야당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로고는 붉은색이고 야당인 민주당의 로고는 노란색이다.

정당과 로고 색깔로만 보면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후보의 성별이다. 박근혜 후보가 남성이고 문재인 후보가 여성이었다면 황룡의 완승이다. 그런데 성별이 정반대다. 따라서 황룡의 승리가 어느 후보를 말하는 건지 분명치 않다.

결전 막바지인 9회 말, 문 후보를 애태우던 안철수 전 후보가 구원 등판했다. 특유의 타이밍을 잡아서. 그리하여 안풍(安風), 북풍(北風), 텝풍(TV토론), 이른바 삼풍 가운데 안풍이 되살아났다. 약발이 전과 같지 않다지만 분명 대선판의 변곡점이다. 안철수가 얼마나 적극적이냐에 따라 충분히 역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안의 동인(同人:

) 결성은 유효했다. 비록 천하에 떳떳한 모양새는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앞서가던 박근혜 후보를 잡아 흔들기에 충분하다. 홀로 남겨진 박 후보는 국민과 함께 짝을 짓겠다며 대통합 광폭 행보를 이어왔다. 놀라운 성과도 있었다. 그렇게 다 잡았던 승기다. 그런데 막판 뒤집기 한판으로 당할까 봐 긴장한다. 패색이 짙었던 문 후보 측은 기사회생한 양상이다. 관전자는 스릴이 넘친다.

대선 막바지 3풍, 안풍·북풍·텝풍
‘결국 보수, 진보 총력전으로 치닫는군.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가 많기 때문에 야당이 승리해야 옳겠지. 그런데 그게 불확실해. 박근혜 후보의 집권도 MB 정권으로부터의 정권교체라고 보는 유권자가 꽤 되거든. 정책도 여야가 온통 알록달록 뒤죽박죽이야. 어느 편이 이길까? 이거 원 성질 급한 놈은 숨 넘어가겠어.’

강권 교수는 혼잣말로 두런댔다. 그러다가 백두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언필칭 공자님 말씀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동동왕래(憧憧往來)면 붕종이사(朋從爾思)라 하니 천하하사하려(天下何思何慮)리요. 천하동귀이수도(天下同歸而殊塗)하며 일치이백려(一致而百慮)니 천하하사하려(天下何思何慮)리요. 동동거리며 뻔질나게 오가지만 오직 벗들만이 그대 생각을 따르리라.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천하의 만 가지 다른 길은 하나로 통하며, 온갖 생각이 하나로 귀결되니,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강 교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만 동동거리는 거야. 담담하게 지켜봐. 어느 쪽이 돼도 대동소이(大同小異)네. 여야가 오직 자기들만이 잘할 수 있다며 표를 구걸하지만 일이 되고 안 되고는 국민이 따라주느냐 안 따라주느냐에 달렸어. 어느 쪽이 집권해도 공약의 실현은 꼭 될 만큼밖에는 안 된단 말씀이야.”

강 교수는 보다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정당 소속이 아닌 정책연구자들에게 자문을 하기로 했다. 자기 진영이 이긴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는 제외했다.

함재봉 원장(아산 정책연구원)과 이철희 소장(두문 정치전략연구소)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국가리더십을 정리했다.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식민지, 해방 전후, 6·25,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고 피해를 본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대한민국호’에 승선시켜야 합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랑스러운 나라죠. 그런데 정작 우리 안에는 그걸 부정하고 전복시키려고까지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국가로 지탄 받고 있는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대한민국호가 앞으로도 성공적인 항해를 지속하려면 이 모든 사람들을 함께 태워야만 합니다. 북한까지도. 보수정권이 집권하게 되면 진보가 주장하는 복지정책을 과감하게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는 공부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재산 지키기만 하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 의식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경제 발전의 결과만 내놓고 지지해 달라는 시대는 지났어요. ” 함 원장은 석학답게 공부하는 보수를 역설했다.

“진보는 삶의 개선을 지향해야 합니다. 막연한 목표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매달릴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개량을 추구해야 합니다. 차이와 다름도 존중해야 합니다. 보수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는 관점부터 바꿔야지요.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가 말한 대로 민주주의는 누구도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시스템이니까요. 민주적 절차에 소홀하거나,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진보가 풀어야 할 숙제는 권력의 문제입니다. 권력을 바르게 쓸 의지도 있어야 하지만, 어떻게 다룰지도 알아야죠.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가 필요합니다. 권력을 잘 활용해 사회적 다수에게 유용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능한 진보의 시대를 열어야겠죠. 남북관계는 평화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되, 국민 여론을 감안해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은 피해야 할 겁니다.” 이철희 소장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으라고 주문했다.

두 전문가의 조언을 탐욕스러운 정치권이 새겨들을까? 어떻게 해서든지 정권을 잡고, 잡으면 자기들만의 잔치판을 벌여온 정치인들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누가 생각하랴. 강권 교수는 씁쓸했다.

자기를 버릴 수 없는 인물형, 안철수
같은 시간 청담동 백두옹의 집.
“할아버님, 안풍이 되살아나서 다행이에요. 문재인 후보의 얼굴이 확 폈어요. 새누리당은 우거지상이겠지만요.”

외손자며느리가 호박죽을 내오며 싱글벙글 웃는다. 눈 오는 날, 호박죽 한 사발이면 천하가 부럽지 않은 게 늙은이다. 백 살이 넘은 백두옹에게 무슨 욕심이 있고 사심이 있겠는가. 오로지 자손 걱정, 나라 걱정이다.

“안풍이 되살아나서 새누리당이 바짝 긴장해야 국민이 행복해져. 더 개혁하고 더 잘하려고 힘쓸 테니까.”
외손자가 스크린골프 하러 나가면서 툭 던진다.

“은강이는 뉴욕에서 투표했다던?”
“네, 할아버님. 누구 찍었냐니까 엉뚱하게도 강지원 후보 찍었대요. 강 후보 부부가 모두 법치국가의 지성인답게 반칙 안 하는 원칙주의자들이라서 좋다나요? 사표(死票)가 돼도 괜찮대요.”

외손자며느리가 혀를 내두른다. 백두옹은 뉴욕에서 유학 중인 외증손녀가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할아버님, 안철수의 정치생명이 어찌 될지도 흥밋거리예요. 자기집착이 강한 에고이스트가 등 떠밀려서 내키지 않은 지원유세를 다녀야 하고, 그 결과에 따른 자신의 미래도 저울질해야 하니 참….”
안됐다는 표정이다.

“안철수가 왜 에고이스트니?”
“안철수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안철수예요.”
“뭔 소리야, 도대체?”

“안철수 연구소, 안철수 재단,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의 약속! 이렇듯 자아 띄우기 행보로 일관된 사람이죠. 처음부터 자기를 버릴 수 없었던 인물형이라는 겁니다.”

과연 똑 소리가 나는 진짜 강남 스타일 아줌마였다. 이렇게 똑똑한 주부, 사업가, 학생들을 가진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토론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나부대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TV 토론에 나오게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처럼 극단적인 사람도 대통령에 출마해 동등하게 공중파를 타는 나라는 저력이 있다. 지금은 터무니없더라도 나중 남북통일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백두옹은 방으로 돌아와 괘를 뽑았다. 안철수는 곤(困:)괘 2효 동(動). 신중하게 움직여도 곤란한 처지다. 기대하는 것보다 운신의 폭이 좁다. 효사의 내용은 절묘하다. 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받느라 피곤하다. 남의 것을 제 것처럼 취한 꼴이니 좋을 리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도 점쳤다. 절(節:)괘가 나왔다. 대나무 마디와 같은 괘인데 절개나 절제를 뜻한다. 주역의 60번째 괘로 완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 시대가 매듭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날 일이다.

그 다음에 오는 61번 중부(中孚:)괘는 배의 모양이고, 62번 소과(小過:)괘는 새가 날개 편 모양, 63번 기제(旣濟:)괘, 64번 미제(未濟:)괘는 모두 건너간다는 뜻을 지녔다. 그렇다.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이상세계로 건너간다. 푸른 섬 제주도 같은 평화의 나라로.

백중세 선거판이 과열되고 있다. 아무개가 당선되면 이민 가겠다, 자살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광기의 언어 착란이다. 그런 얼치기 생쇼가 먹힐 거라고 본다면 한참 잘못 짚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박근혜·문재인 후보! 둘 다 메시아는 아니다. 드높은 국민적 기대에는 많이 못 미친다. 하지만 메시아로 비쳤던 안철수보다야 낫다. 정치적인 역량이 더 낫다는 얘기다. 태평양시대 주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를 어느 누가 감히 함부로 헐뜯겠는가. 우리 국민들부터 존중해야 세계가 존중한다.



김종록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밀리언셀러 『소설 풍수』와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바이칼』 등을 썼으며 최근에 『근대를 산책하다』를 펴냈다. 본지 객원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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