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달의 책/12월의 주제] ‘함께했던 시간, 고마웠던 순간’

어느덧 12월입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한 ‘이달의 책’ 12월 주제는 ‘함께했던 시간, 고마웠던 순간’입니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빛나는 순간을 돌아보는 신간 두권을 추렸습니다. 각기 장르는 다르지만, 시간의 나이테에 마음이 차오르는 책들입니다.





풋익어 싱그러운 사유 『월든』의 그 사색가 일주일 쪽배 여행기



소로우의 강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윤규상 옮김, 갈라파고스

524쪽, 1만6000원




아름다운 책이다. 글도 글이지만 글에 담긴 생각이 그렇다. 초월주의라는, 19세기 미국에서 꽃핀 이상주의적 사회개혁운동의 대표자 중 한 명이 썼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대표작 『월든』에 비하면 사유보다 감상에 더 무게가 실렸다.



 그럴 만한 것이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이다. 22살 때 형과 함께 손수 만든 ‘머스케타퀴드’란 쪽배를 타고 일주일간 고향의 강과 그 주변을 여행한 기록이니 그의 사상이 채 영글기 전이어서인지 모른다.



 ‘강바닥의 물풀은 물결의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하류로 몸을 굽힌 채 아직도 씨앗이 가라앉은 곳에서 자라지만, 머지않아 그들도 죽어 물결처럼 떠내려 갈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바람도 없이 그저 빛나는 조약돌, 나뭇조각과 잡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성실히 이행하며 떠내려 오는 통나무와 나무줄기는 나에게 아주 묘한 흥미를 일으켰다.”



 그렇게 해서 1839년 8월 그는 강을 따라 흘렀다. ‘강은 이미 깨어 있었고, 신선한 물결이 해를 마중하러 나온’ 아침부터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한적한 곳의 넉넉한 밤소리’가 들리는 한밤중까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주일을 기록했다.



 글만큼 생각이 향기로운 이유다. 원제 ‘콩코드와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가 시사하듯, 그리고 번역판의 부제 ‘강에서 철학과 사색의 시간’이 보여주듯 글은 강의 서정성을 담는 데서 나아가 사유의 바다로 흘렀다.



 ‘나는 어떤 이들은 종교 울타리 밖에 있더라도 부처나 그리스도나 스베덴보리에 바짝 다가갈 수 있고, 그분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 믿는다.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의미 깊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꼭 기독교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왜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너그럽지 못하고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가.’



 ‘한가로이 공부만 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워라. 학자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일을 보고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상상력은 뛰어나나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 훨씬 음악에 가까운 진실한 글이 나을 것이다.’



 이런 구절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읽힌다.



 잘 만든 책이기도 하다. 책은 여행기 형식을 빌었지만 실은 지은이가 훗날 초월주의 잡지 ‘다이얼’에 실었던 자신의 에세이와 시를 엮은 것이다. 이에 대해 꼼꼼히 주석을 붙인 것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소로가 콩코드의 동료 시민들과 뉴잉글랜드의 한정된 독자를 위해 쓴 글이고, 출간 당시의 사회문제는 오늘날보다 훨씬 덜 까다롭고 덜 복잡했다며 이 책의 한계를 인정한 옮긴이의 겸손함이 아름답다.



 ‘마침내 낮의 마지막 자취마저 사라지고, 몇 개의 별만 반짝이는 어둠을 뚫고 집 쪽으로 천천히 노를 저으면서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형과)등을 맞대고 앉아 있던’ 지은이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사람이 참될수록 고독으로 이끌듯, 가장 뛰어난 연설은 결국 침묵으로 끝맺음 된다’고. 화려하지 않은 소로의 책이 지금도 아낌을 받는, 받아야 하는 이유지 싶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이야기꾼 인생 50년, 사람이 하늘이었다



여울물소리

황석영 지음, 자음과 모음

496쪽, 1만 5000원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고(59쪽), 작가의 이야기는 어느덧 오십 해를 떠돌았다. 황석영(69)의 장편 『여울물소리』를 손에 쥐고 읽노라면 일생을 글 감옥에서 보낸 작가의 노고가 전해진다. 스스로 작가인생 50년을 반추하는 작품이라 했듯, 근대화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어낸 소설 속 주인공은 격변하는 한반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황석영과 여러모로 닮았다.



 양반가 서얼인 주인공 이신은 과거를 보러 상경했다가 신분의 벽 앞에서 체념하고 이야기꾼으로 변신한다. 전기수(傳奇<53DF>), 글 모르는 민중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전기수는 단순 전달자가 아니었다. 1인극을 하며 관객을 웃고 울리는 ‘딴따라’였고, 언문 대중화에 기여하는 ‘지식인’이였으며, 여론을 선도하는 ‘정치인’의 면모도 갖고 있었다.



 그가 이름을 ‘이신’에서 좀더 대중친화적인 ‘이신통’으로 바꾼 것은 그런 연유였다. ‘전기수 이름은 듣자마자 마빡에 알밤 맞은드키 딱! 하고 기억나야 되는 법’(163쪽)이라며 신통방통한 새 이름을 받은 신통은 『장끼전』을 읽으면서 진짜 이야기꾼이 된다. 이 장면은 1970년 ‘탑’을 발표하면서 황수영에서 황석영으로 개명한 작가의 인생과 겹쳐진다. 그의 기(氣) 센 이름은 문학을 본업으로 삼겠다는 출사표이기도 했다.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상, 신통의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간다. 그는 시전에서 연희패·농민·말단 군인들과 어울리며 시대의 아픔을 마주한다. 19세기 말은 ‘세상 어디서나 향청이 썩어서 민고(民庫)는 수령의 판공비를 대는 돈줄’(112쪽)이었던 때였다. 소설의 후반부는 이런 부조리에 대항하며 천지도(동학을 뜻함)에 입도해 혁명에 가담하는 내용을 담았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쓰며 줄곧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신통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선언하는 천지도에 투신한 것은 이야기꾼의 역할을 보다 사회참여 지향적으로 바라 본 것이다. 지배층의 수탈과 불평등에 항거해 진실을 기록하고, 용기 있게 발언하는 게 작가의 운명임을 신통을 통해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술방식이다. 화자인 아내 연옥은 집 나간 신통의 뒤를 쫓으며, 곳곳에서 만난 지인들로부터 남편의 행적을 수집한다. 즉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산별적인 에피소드를 퍼즐처럼 늘어놓은 후 하나로 꿰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자칫 영웅으로만 그려질 수도 있는 인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못난 지아비이자 불효자도 신통의 또 다른 모습인 셈이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신통은 지인의 증언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그의 독자들이 그를 불러내는 것이다. 화자인 연옥도 남편의 가장 열렬한 독자이지 않았나. 그러니 이야기꾼의 존재는 독자와 함께 완전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신통이 『임경업전』을 읽는 대목이다.



 ‘임 장군이 김자점의 모함으로 죽게 되자 흥분한 청중들은 간신을 죽여라! 외치며 장 보고 와서 들고 있던 빗자루, 호미, 마른 생선 등속을 내키는 대로 던져서 이신통은 이마에 멍이 들기도 하였다.’(277쪽)



 이마의 멍쯤은 영광의 상처로 이고 살겠다는 황석영의 자기고백 같기도 하다.



김효은 기자



늑대와 함께한 11년, 새롭게 눈뜬 세상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론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추수밭

344쪽, 1만5000원




철학자에게 주변 사물은 모두 성찰의 대상이다. 살아있는 동물은 더할 나위 없는 사유를 제공한다. 일례로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는 닭을 키우며 느낀 단상을 『계림수필』에 풀어놓은 바 있다.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인간의 본질을 되새겨보게 한다. 그 대상이 늑대라면 어떨까.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교수인 마크 롤랜즈는 실제로 늑대와 살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11년씩이나 밥 먹고 강의하고 여행하고 친구를 만날 때 언제 어디서나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함께함의 기록이다.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라는 부제에서부터 우리의 상식에 도전한다.



11년 동안 함께 산 철학자 마크 롤랜즈와 늑대 브레닌. 늑대를 개라고 속여 어디든 함께 가기로 결심한 롤랜즈의 모험담이 로드무비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사진 추수밭]
 서양동화에서 악역은 대개 늑대가 맡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늑대는 전혀 다르다.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늑대를 훈련시킬 수 없다는 속설도 뒤집는다. 저자는 웨일스어로 왕을 뜻하는 ‘브레닌’이란 이름을 붙였다. “늑대 브레닌은 그 어떤 인간보다 의연하고, 우아했다”는 표현에서 인간과 늑대를 대립시킨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인간과 문명에 대한 실망이다.



 영장류인 인간은 과연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가. 저자는 이성·언어·자유의지·사랑·행복 등이 인간 고유의 우월한 특징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늑대와 대화를 하는 듯하다. “늑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정규 교육이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늑대 브레닌에게 배웠다”고 했다. 늑대가 인간보다 못하는 일은 속임수와 계략이라고 한다.



 늑대는 인간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할 것 같지만 그래도 절망은 아니다. “인간도 한때 늑대였다”는 책 속의 표현은 희망을 암시한다. 저자에게 늑대는 두 가지 의미다. 실제 늑대인 동시에 인간이 문명이란 이름으로 잃어버린 본성이다. 한때 우아했지만 오래 잊혀진 기억의 복원을 꿈꾸는 저자는 인권만이 아니라 동물 권리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도 설득력 있게 풀어놓고 있다.



배영대 기자



[관련기사]



[이달의 책/12월의 주제] ‘함께했던 시간, 고마웠던 순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