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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뒷걸음질 치는 역사, 에코의 유쾌한 쓴소리

가재걸음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456쪽, 1만8000원




움베르토 에코(80)는 ‘현상’이다. 철학·미학·중세학·기호학·정보이론·인지과학·미디어 이론 등 그의 촉수는 전 학문에 뻗어 있다. 활동영역 역시 광대하다. 그는 철학자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이자 동화작가, 문학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다. 우리나라에 에코는 『장미의 이름』(1980)으로 알려졌다. 대중은 그를 중세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작가로 여길 것이나, 인문학자들은 그를 『기호학 입문』(1976)의 저자로 기억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열린 예술작품』(1962)을 통해 그를 현대미학의 저자로 처음 접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히는 움베르토 에코. 그는 “내 글에서 비판되는 것들의 상당수는 관습에 대한 것이다. 관습에 대한 비판은 가혹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 열린책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에코를 ‘포스트모더니스트 이론가’로 규정한다. 한 저자가 동시에 대중과 전문가를 자신의 독자로 확보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포스트모던의 이른바 ‘이중코드’ 전략이다. 『장미의 이름』을 예로 들어 보자. 대중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추리소설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안에서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윌리엄 오캄(중세 영국철학자)의 철학, 현대의 기호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읽어낼 것이다. 한 편의 소설로 그는 대중과 전문가를 모두 만족시킨 셈이다.



 에코는 최고의 인문학적 학식으로 저속하게 여겨졌던 대중문화의 현상을 설명한다. 한마디로 ‘로브로’(lowbrow)의 주제에 ‘하이브로’(highbrow)의 방법론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물론 대중문화 역시 이미 오래 전에 학적 연구의 대상이 돼왔다. 하지만 에코의 작업은 이른바 ‘문화연구’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는 논문이나 저술이 아니라 대중도 읽을 수 있는 ‘잡글’로 그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역시 포스트모던의 특징이다.



 가령 낙태논쟁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 사안에 개입하는 에코의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갑자기 중세로 돌아간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그는 ‘배아에는 아직 영혼이 없기에, 대(大)심판의 그날 죽은 배아들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언급을 찾아낸다. 가톨릭 신학을 세운 장본인의 견해를 들어 낙태에 반대하는 교황청의 입장이 외려 반(反)신학적이라 반박하는 셈이다. 이 얼마나 통쾌한가. 여기서 스콜라 철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동시에 대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에코가 신문에 정치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현실정치에 개입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에 번역된 『가재걸음』(2006)은 2000년에서 2005년까지 그가 몇몇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묶은 것이다. 그 시기는 국외에서는 9·11 테러로 부시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미디어 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우파연합을 통해 집권(2001)하던 시절이었다. 이 책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세계는 가재처럼 과거를 향해 뒷걸음치는가.



 신(新)중세주의자로서 에코는 그 동안 이른바 포스트모던 문화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중세를 닮았다고 지적해왔다. 『가재걸음』은 이 일반론을 정치영역에 특수화한 것이리라. 냉전(冷戰)은 과거의 열전(熱戰)으로 돌아가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는 새로이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원리주의가 창궐한다. 미국에서는 재판창조론(지적설계론)이 등장하고, 아랍에서는 포케몬이 금지된다. 괴물의 진화라는 모티브가 아이들에게 다윈의 이론을 주입한다는 것이다. 현대인가, 중세인가.



 이 책은 진보의 피로감에 지친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것을 막으려는 에코의 치열하나 유쾌한 저항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 칼럼을 쓰던 시절 이탈리아에서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미디어 재벌이 아예 공적 업무(res publica=공화국)를 집어삼키는 일이 벌어졌다. 베를루스코니는 온갖 비리와 추문으로 국제적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조롱과 경멸로 그를 ‘악마’로 만드는 전략도 그의 인기와 집권을 막지는 못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진보진영은 그를 그저 무식하고 멍청한 인물로 바라보나, 에코는 베를루스코니가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치인’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고도의 정신력과 지능적인 통제력으로 ‘빈틈없고 교묘하고 복잡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거의 매일 자극적인 약속과 언행으로 정치적, 사회적 소음을 일으켜 늘 언론의 중심에 선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상업광고의 기법을 정치에 활용하는 셈이다.



 상품의 판매원은 고객이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을 사로잡는 단 한 가지만 필요할 뿐이고, 거기에 마음이 꽂히면 다른 것은 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베를루스코니가 정치영역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현상의 새로움을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은 낡은 방식으로 그의 허구를 폭로하려 한다. 그 비판은 굳이 그 메시지가 필요 없는 자기 진영의 사람들에게만 전달될 뿐이다. 대중은 거짓말이 거짓말임을 몰라서 거짓말을 믿는 게 아니다. 믿는 사람은 없어도 광고는 효과가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기시감을 주는 것은 10여 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이 상황이 우리의 현실을 꼭 닮았기 때문이리라. ‘베를루스코니는 부자이기에 외려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대중의 환상은 부자이기에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황당한 발언을 연상시키며, 68혁명의 기법을 누구보다 잘 활용한 베를루스코니의 선거전략은 거리에 나붙은 보수당의 플래카드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거기에 대한 진보의 무력한 대응 역시 우리의 현실을 닮았다.



 에코는 수준 이하의 저급한 언행으로 외국 정상들에게 질타를 받는 베를루스코니 같은 인물을 국가의 정상으로 모신 데에 대해 정작 이탈리아인이 그리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의 의아함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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