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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400년 만의 변신, 하루 만의 변심

김현기
도쿄 총국장
사방이 삐쭉삐쭉한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 아리타(有田). 일본 규슈 사가(佐賀)현에 있는 이 도시의 인구는 2만 명. 그중 60%가 도자기 관련 일에 종사한다. 그래서인지 가마터에서 나온 흙이 재사용돼 멋스러운 돌담길로 변해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에는 희고 푸른 자기 조각들이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운치가 넘쳤다.



 이 마을의 ‘신’은 이삼평이란 조선 도공. 1598년 임진왜란 회군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이곳에 끌려온 인물이다. 지난주 이곳에서 만난 이삼평의 14대손 가나가에 산베(51)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방이 산으로 막힌 이곳에 데려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뇌의 세월을 보내던 이삼평이 일본에 처음으로 백자를 선보인 건 1616년. 바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17세기 후반에는 유럽에까지 퍼져 순금과 동가로 거래될 정도였다. 한동안 ‘아리타 야키’(자기란 뜻)는 유럽 귀족의 심벌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굴뚝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연기가 나오는 곳이 거의 없는 게 아닌가. 아리타역사민속자료관의 오자키 요코 관장은 “30년 사이 매출이 6분의 1로 줄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통가마 수도 200개에서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나친 고가정책에 소비자가 등을 돌렸다. 도자기 회사 ‘사가단’의 이시카와 사장은 또 다른 원인을 꼽았다. “고질적인 ‘따로 놀기’가 문제”란다. 400년 가까이 대를 잇고 있는 ‘가키에몽’, 60명의 장인을 보유한 ‘겐에몽’, 일 왕실 납품업체인 ‘고란샤’ 등 내로라하는 도자기 제조사들은 ‘자기 것’만 고수했다. 도자기 바닥이나 그릇 뒷면에 결코 ‘아리타’를 새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가마 이름만 썼다. 공존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게다. 결과는 공멸이었다.



 그런 아리타 마을에 400년 만에 격랑이 일고 있다. 그 자존심 세던 겐에몽과 고란샤가 손잡고 아리타 자기로 만든 대중 상품을 내놓았다. 가마에서 굽기만 하고 무늬 넣기를 생략한, 싸고 멋진 디자인의 ‘뉴 아리타 야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격대는 거의 10분의 1이다. 기존 방식을 고집해 왔던 장인들에게 “섭섭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좀 더 빨리 변할걸 그랬다.”



 어찌 보면 작금의 일본 쇠퇴에는 ‘아리타 야키’처럼 ‘자기 것’과 ‘온리 원(only one)’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큰 몫을 한 듯싶다. ‘자체 기술’만 고집하다 추락한 소니, PDP TV에 올인하다 거덜난 파나소닉, ‘트리플 액셀’에 매달리다 ‘종합력’의 김연아에게 뒤처진 아사다 마오가 모두 그렇다.



 아리타의 400년 만의 뒤늦은 변신은 솔직히 답답하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 하루 만에 이랬다 저랬다 변심하고, 그의 갈지자 행보에 출렁이는 한국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거꾸로 어지럽다. 둘 다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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