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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학점은…" '교수와 女제자' 성범죄 충격실태



“내 맘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목요일이나 금요일 중 하루 저녁 대학로에서 만나자.”

[현장 속으로] 대학 성범죄 보고서
캠퍼스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 4명 중 1명이 교수
여제자에게 만남 거부당하자 “넌 학점 안 주겠다”



 “오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네가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언뜻 보면 짝사랑에 애가 탄 젊은 남자의 당당한 사랑 고백 같다. 하지만 이는 서울 소재 명문대 교수인 50대 후반의 A씨가 2009년 20대 여성인 제자 B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의 일부다. 그는 B씨가 자신과의 사적인 만남에 응하지 않자 수업시간에 이름을 거론하며 “B는 내 지도 범위를 벗어났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나와 안 좋은 일이 있어 학점을 안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딸이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한 B씨의 어머니는 조교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고, 조교의 신고를 받은 학교 성폭력상담소는 대학에 징계를 요청했다. ‘교수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학은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A씨는 지나친 처분이라며 행정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전국 대학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에는 B씨보다 더한 고통을 호소한 성범죄 피해자들이 많았다. 본지 탐사팀이 민주통합당 유기홍 의원실과 공동으로 전국 대학 249곳(4년제 148곳, 전문대 101곳)의 지난 4년간(2009년~2012년 9월) 성희롱·성폭력 상담 사례 394건을 분석한 결과 지위·나이·성별에서 약자들이 피해자가 되는 확실한 경향성을 보였다. 학생의 점수를 매기거나 논문을 심사할 수 있는 ‘권력자 교수’, 학내 기득권을 지닌 나이 많은 ‘권력자 선배’, 성 문제에 있어 여성보다 자유롭다고 여기는 ‘권력자 남성’이 갑(甲)의 위치에서 성범죄 피해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생사 여탈권 쥐고 있다고 생각



대학교수는 전체 대학생 성범죄 가해자 중 28.1%를 차지했다. 학생(5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학생에 비해 교수가 소수인 대학의 인적 구성을 감안하면 교수 가해자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온 셈이다. 대학원생(7.0%), 교직원(6.4%)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피해자는 83.9%가 학생이었고 교수는 2.4%였다.



 학생·교수 간 사건에서 교수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의 힘을 십분 활용했다. 지방 전문대 관광경영과 조교수 C씨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어 동아리 지도교수였던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동아리 활동 후 가진 회식자리에서 소속 여학생들에게 강제로 키스하거나 술을 먹이고 가슴을 만졌다. 결국 참다 못한 익명의 회원이 지난해 학교 상담소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고 C씨는 해임됐다. 동아리 회원인 신고자는 “모든 동아리 회원들이 1년 넘게 성적 굴욕감을 느꼈지만 취업과 연관된 인턴십의 결정권을 교수가 갖고 있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지방의 한 국립대 교수는 2010년 여제자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간단한 식사 후 영화나 보자며 교수가 데리고 간 곳은 모텔. 찜찜한 마음이었지만 설마 하는 심정으로 따라 갔다. 아니나 다를까 모텔에 들어간 교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돌변해 음란영상물을 틀어 놓고 성관계를 요구했다. 놀란 제자는 얼른 방에서 나와 상담소에 신고했다. 교수는 징계위원회를 거쳐 해임됐다.



 이수정 경기대 양성평등문화원장은 “손버릇 나쁜 교수들은 결혼도 하고 자녀도 있는데 자기가 대단히 성적으로 매력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생사여탈권을 틀어 쥔 교수의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을 들어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설명했다.



나이 많은 선배는 갑(甲)



학생 간 문제에서도 권력관계는 작용한다. 주로 학내 권력관계에서 우위인 선배가 후배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지난해 지방의 한 국립대 대학원에 입학한 D씨. 그는 대학원생 회식 후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던 선배가 잠깐 얘기 좀 하자는 제안에 별 의심 없이 따랐다. 하지만 선배는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D씨가 마음에 든다며 ‘사귀자’ ‘같이 자러 가자’ ‘나한테 잘하면 학교에서 모든 걸 해줄 수 있다’는 등의 애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D씨는 주요 내용을 녹음한 뒤 상담소에 제출했다. 선배는 재발 방지 각서를 쓰고 사과문을 제출했다.



 서울 시내 한 전문대 영어과 조교였던 대학원생 E(24)씨. 그는 2009년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는 같은 과 1학년 후배(19)를 불러 낸 뒤 술을 마셨다. 학교 생활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는 구실을 댔다. 이후 그는 술에 만취한 척 속이고 후배가 모텔에 자신을 데려다 주도록 한 뒤 성폭행했다.



 본지 조사에서도 나이 차에 따른 기득권을 이용한 대학생 성범죄 유형은 확인된다. 사건 당시 피해자 평균 나이는 23.1세였으나 가해자 평균 나이는 열 살 이상 많은 33.4세로 조사됐다. 교수·교직원 등 중·장년 층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학생들만 분석한 결과에서도 가해자 평균 나이는 23.7세로 피해자(21.8세)보다 두 살가량 많았다. 피해자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2009년 평균 23.4세였으나 올해는 22.9세였다.



 학생이었던 가해자 중에는 4학년 비중이 35.1%로 가장 높았다. 1학년(21.3%), 2학년(14.9%)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대학사회 특성상 가해자는 주로 선배, 피해자는 후배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보화 아주대 성폭력상담센터 전임연구원은 “교수-학생처럼 확실한 갑과 을 관계가 아닌 같은 학생 간이더라도 한두 살 나이가 많은 사람이 조직 내 기득권을 잡고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유학생 피해도 늘어



성별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는 달랐다. 피해자는 94.4%가 여성이었고 가해자는 98.7%가 남성이었다. 완력이나 성적 자유 측면에서 상대적 약자로 여겨지는 여성이 주로 피해자가 된다는 얘기다. 음주 여부는 큰 영향이 없었다. 사건 당시 음주 상태였던 피해자는 30.7%로 술을 안 마신 피해자(69.3%)가 2배 이상 많았다. 가해자도 비 음주 상태가 58.5%로 절반이 넘었다. 제 정신인 상태에서 계획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이나영 중앙대 인권센터장은 “대학 안팎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성폭력은 일시적 충동에 끌려 일어난다기보다 조직 내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이를 악용해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학 내 성범죄는 언어적 성희롱에 그치지 않는다. 전체 접수건수 10건 중 1건은 성폭행(6.4%)이거나 외상이 있는 신체 접촉(4.7%)이었다. 외상이 없는 신체 접촉은 47.4%로 가장 많았다. 사건 발생 장소는 유흥업소(15.9%) 또는 학교 외부를 포함한 기타(65.2%)가 대부분이었지만 강의실(8.2%), 학생 자치공간(5.5%), 교수·학과사무실(5.2%)에서도 흔치않게 발생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새로운 약자층의 피해도 늘고 있다. 지난해 충남대에서는 교수가 중국인 유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일어나 교수가 해임되기도 했다. 해당 교수는 학생에게 속옷을 사주겠다는 등의 제의를 하는가 하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 허리와 어깨를 만졌다. 이나영 센터장은 “기존의 지위·나이·성별 간 권력 불균형에 따른 성희롱·성폭력에 인종적 요소까지 더해지고 있는 게 최근 추세”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성범죄 유형도 다르지 않아



이 같은 권력관계를 활용한 성범죄는 국내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에서도 확인된다.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에는 지난 4년간 가장 많은 53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전국 대학 중 가장 모범적으로 상담소를 운영해 온 만큼 대학 내 구성원들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신고했다는 의미다.



 상담 사례 분석 결과 가해자 중 교수가 23.9%로 대학원생(28.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학부생은 13.0%였다. 반면 피해자는 학부생이 38.6%로 가장 많았다. 평균 연령도 가해자는 36세, 피해자는 23세로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학생 성범죄가 일부 자격 미달의 교수·학생의 일탈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유기홍 의원실 관계자는 “상담소가 활성화된 서울대니까 이 정도라도 공론화됐을 것”이라며 “상담소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신뢰가 쌓이지 않은 대학에는 신고되지 않은 사건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학 성폭력 예방지수 개발해야



대학생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대학 당국이 문제 해결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부분 대학에는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개설돼 있다. 하지만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곳은 극소수다. 이번 조사에서 상담 사례 내역을 제출한 249개 대학 중 절반이 넘는 147개(4년제 68곳, 전문대 79곳) 대학 상담소에는 지난 4년간 상담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국회 아동·여성대상성폭력대책특위 위원이었던 유기홍 의원은 “147개나 되는 대학 학생들이 4년간 단 한번도 상담소를 찾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피해를 봐도 상담소를 불신해 찾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상담소의 독립성 확보를 주문했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보직교수들이 돌아가면서 상담소장을 맡기 때문에 학교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학생들이 상담소를 믿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이나영 센터장은 “외부 전문가들을 정규직으로 영입해 상담소를 학교 내 독립기구로 위상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내 성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현재 신입생 성희롱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대학은 63.3%다. 관련 내용의 교양강좌를 개설한 대학은 21.6%에 불과하다.



 대학의 성범죄 피해발생 방지 노력을 대학평가에 반영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유 의원은 “얼마나 상담소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발생 사건에 대한 대처가 적절했는지, 대처 매뉴얼을 제대로 갖췄는지를 계량화하는 지수를 만들어 대학평가에 반영한다면 대학이 성범죄 문제 해결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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