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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코끼리와 집토끼

윤창희
사회부문 기자
명분과 논리 싸움은 형성된 프레임에 따라 승부가 갈릴 때가 많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대검 중수부장의 충돌도 그랬다.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는 개혁론(한상대)과 거부하는 반개혁론(최재경)의 프레임이라면 한 전 총장이 유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찰 논쟁으로 비화하면 약자가 동정을 받게 마련이다. 더구나 조직 보호 앞에서 총장도 ‘꼬리 자르기’ 대상에 불과한 검사들은 한 전 총장을 공격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 조직을 두고 ‘자리에 연연하느냐’ 아니면 ‘직을 던지느냐’는 구도 하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없다.



 선거도 그렇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2004년 미국 대선을 프레임 전쟁으로 분석했다. 대량 살상무기 보유라는 그릇된 정보를 가지고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조지 부시가 쉽게 이긴 이유는 뭘까. 존 케리 민주당 후보는 부시의 오판을 잘 파고들었다. 하지만 선거에선 졌다. 레이코프는 이렇게 본다. 공화당은 ‘대테러 전쟁을 반대하면 적이고 이적행위’라고 외쳤다. 이 ‘애국과 비애국 프레임’ 앞에서 다른 주장들은 튕겨져 나갔다. 상대편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메시지를 강화해 줄 뿐이다.



 상대편의 의제에 말릴 때 백전백패한다는 공식은 5년 전 한국 대선에도 적용된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제 살리기’와 ‘세금 폭탄’ 프레임에 정동영 후보는 무력했다. 급기야 대선 막판 정 후보는 참여정부의 상징인 종부세 완화를 약속한다.



 선거에서 상대편 프레임에 말리는 이유는 중도파 공략의 환상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에서 재미있는 조사가 이뤄졌다. ‘중도파는 중간이 아니다’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이다. ‘KTX 민영화’ 같은 사회 이슈를 던지며 찬성은 1, 반대는 5를 답하고, 찬반 정도에 따라 1~5를 선택하게 했다. 실험 결과 예상 외로 중도 성향 참가자들은 3을 택하지 않았다. 1·2나 4·5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안에 따라 중도파들도 뚜렷한 의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레이코프는 말한다. “낙태나 사형은 절반만 할 수 없다. 사회 이슈에는 중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부세 완화를 꺼낸 정동영 후보는 집 나간 토끼 잡으려다 집토끼만 놓친 격이다. 두 개의 도덕 체계를 가진 중도파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언어와 프레임으로 말해야 한다는 게 레이코프의 결론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도 프레임이 중요하다.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근혜’를 다시 등장시켰다. ‘박정희 vs 노무현’을 ‘이명박 vs 노무현’ 구도로 바꾸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 구호로는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별 재미를 못 봤다. 경제민주화를 치고 나온 박근혜 후보도 ‘기득권 대 반기득권’의 구도는 어느 정도 차단했다지만, 그렇다고 대선을 관통할 프레임을 잡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누가 과연 자신만의 언어로 설득력 있는 비전을 보여줄까. 거기서 프레임 전쟁도, 대선도 승부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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