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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이 나른한 대선, 어찌할 것인가

권석천
논설위원
지난 9월이었다. 트위터엔 또 한바탕 해시태그 놀이가 지나갔다. 해시태그 놀이는 주제어 앞에 해시태그(#)를 붙여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주제어는 ‘작품을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내봅시다. 되도록 슬프게’였다.



 우선 소설과 영화를 소재로 한 글이 많았다. “베르테르 늙음” “토끼 굴에 몸이 끼인 앨리스” “폭풍의 언덕 재개발됨” “수지, 건축학개론 수강 취소”. 두 번째 유형은 역사와 종교를 소재로 삼은 것이었다. “김일성 보천보 전투서 사망” “싯다르타는 궁중생활이 편하고 좋았다” “모세, 끝내 홍해가 갈라지지 않아 다시 이집트로 잡혀가다” “웅녀, 환인 내 스타일 아니다”.



 마지막 유형은 정치·현실 풍자였다. 당시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안철수(이하 경칭 생략)와 싸이가 주 대상이었다. “무릎팍도사 안철수편, 강호동 탈세 사태로 결방” “싸이, 강남스타일 유튜브 업로드하다 실패”. 그중에 신기하게도 “안철수 불출마 선언”이 있었다. 이 예언은 두 달 뒤 적중했다. 지지자들로선 최악의 ‘작품을 시작도 하기 전에…’가 된 셈이다. 그런데 허탈함은 누굴 지지하느냐를 떠나 선거판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안철수 효과도 사라지고… 이렇게 맥 빠진 대통령 선거는 처음 봅니다.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노무현, 박정희, 이명박을 자꾸 부각시킨 것도 그만큼 자극이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요”(서울 지역 대학 교수).



 “누가 되든 별 차이가 없을 거 같아요. 보세요. 당장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영업용 택시 기사).



 이 나른함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가장 큰 원인은 선거판을 이끌어 온 흥행 요소들이 사라진 데 있다. 새 정치를 내세운 안철수 카드에 선거 결과가 좌우되는 듯했던 게 사실이다. 막상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간 오락물이나 추리물처럼 여겨졌던 온갖 정치공학들이 목욕탕 물 빠지듯 수채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검찰개혁,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같은 선거 쟁점 역시 뒷설거지만 남은 분위기다. 검찰개혁은 검찰 조직이 비리와 성추문, 조직 분란으로 제풀에 무너지면서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도 이미 선거 전에 화력 대부분을 소진해 선거 이슈로서의 동력을 잃었다. 자욱했던 흙먼지들이 가라앉자 박근혜·문재인의 인간됨됨이만 남은 꼴이다.



 진영논리가 빚은 참사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진보의 분발을 촉구한다. “박정희 현상을 극복하고 싶다면 ‘독재자의 딸’과 ‘반성’을 요구하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방법으로도 경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해제). 보수 쪽은 이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TV토론 말고는 기껏해야 안철수 독자행보 움직임, 박 후보의 보좌관 빈소 방문이 뉴스거리다. 선거예측 기관에선 “투표 당일 한파가 오느냐가 유일한 변수”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대선이 이렇게 진행돼도 되는 것인가. 선거는 국정의 핸들을 잡을 대표를 뽑기 위해 국민의 열망을 결집하는 과정이다. 잘했든, 잘못했든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10년이 당신 인생의 10년을 좌우했다. 다음 대통령을 뽑으면 그의 정부가 앞으로 5년간 당신과 당신 가족의 생활을 규정할 것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유권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나는 한국 사회가 어느 쪽으로 가길 원하는가. 보수의 가치인가, 진보의 가치인가. 안정인가, 변화인가. 그 정치적 지향점에 가장 근접한 후보에게 표를 주자. 삶의 현장에서 나만의 좌표와 기준으로 결정할 문제다. 젊은이들도 안철수 따라 퇴장하지 말고 누가 나를 위해 나은 선택인지 고민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선거를 외면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한 표만큼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작품을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내봅시다. 되도록 슬프게’다. 2012년 대선을 ‘되도록 의미 있게’ 살려내는 건 이제 유권자들의 책임이 되고 있다. 쇼는 끝났고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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